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수생 Aug 05. 2021

고기만먹을꺼야?야채도 다 먹어!

밥상머리 잔소리


"말할 때 소리 좀 지르지 마. 조용히 좀 말해. 귀에 피나겠다"

"동생한테 좋은 말 좀 해주면 안 되냐. 아침부터 그렇게 혼내야 돼? 좀 같이 놀아주라? 꼭 그렇게 울려야 돼?'

"이건 왜 안 먹어? 아빠가 아침부터 땀 흘리며 만들었는데. 다 먹어라"

"오늘 방학 시간표가 어떻게 돼? 어제 문제집은 다 풀었어?"

"밥 먹고 바로 이 닦고 교정기 껴.  이 교정하는데 들어간 돈이 얼만데? 열심히 좀 껴봐"

"방 청소했어. 니 방이 제일 더러워. 좀 치워라"


오늘 아침 내가 밥 먹으면서 딸에게 한 말들이다. 그 순간에는 그냥 밥상머리 교육이랍시고 가르친다 생각하고 했던 말들인데, 이렇게 글로 적어서 보니 단 하나도 듣기 좋은 말을 해준 게 없다. 원래 잔소리는 내 영역이 아니었다. 휴직 전에는 애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아침과 저녁 먹는 시간이 대부분이기에 아내가 잔소리를 하거나 딸과 싸우거나 막둥이가 울거나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차분하게 중재하는 역할이 내 포지션이었다.


그런데 휴직을 하고 집안일을 하게 되고 방학과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과 하루 종일 붙어있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아지게 되고 잔소리도 그와 비례해서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그런 중에 날씨까지 더우니 괜히 혼자 짜증 나서 잔소리가 더 심해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말하는데 신경 쓰고 조심을 해야 하는데 잘 되질 않는다.


잔소리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언제 내가 잔소리를 많이 하는지 그 상황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첫 번째공부

우리 딸 스스로 새운 방학 시간표가 그렇게 빡빡해 보이지는 않는다.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피아노와 플루트 연습, 줄넘기, 그리고 영어와 수학 문제지 풀기가 전부이다. 쉬는 시간이  꽤나 많이 있다. 우선 학원을 보내지 않기에 거의 집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잔소리가 나오는 건 바로 영어와 수학 공부이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이를 테스트하는 것과 수학 문제지를 풀고 틀린 걸 잡아주는걸 내가 하고 있다. 자기 자식은 직접 가르치면 안 된다는데 이 걸 내가 하고 있다. 잔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왜 이걸 모르지?'라는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데도 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소리가 커지고 무섭게 가르치는 것 같다. 그래서 딸이 더더욱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나를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근데 안 쓰던 머릴 써가며 가르치는 나도 힘들다. 그 힘듬이 날카로운 말로 나오고 있다.


두 번째는 편식

아이들은 편식을 한다. 특히, 당근, 버섯, 나물 종류들 그리고 호박을 먹질 않으려 한다. 아내가 살림을 할 때는 아내가 아이들에게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할 때, 난 "먹기 싫다는데 그냥 둬. 뭐든 배부르게만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다. 근데, 내가 밥상을 차리기 시작하니 그 말을 했던 내 입을 꼬메고 싶다. 야채를 먹질 않으면 마땅히 해줄 반찬이 없다. 매일 고기, 햄, 소시지만 먹일 순 없으니깐 말이다. 그리고 맛을 떠나 내 노동력을 갈아 넣어 만들어낸 음식들을 맛있게 먹어주질 않으면 기분이 상한다. 그거 가지고 삐치는 모습을 보일 순 없으니 잔소리라는 걸로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동생

딸과 남자 동생은 나이차가 6살이다. 딸은 초5, 막둥이는 유치원 2년 차. 당연히 같이 놀기가 어렵다는 걸 안다. 같이 노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자세히 보면 누나가 놀아주는 것이지 함께 논다고 보긴 힘들다. 당연히 고생하고 있고 잘 놀아주는 딸이 기특하고 고맙다. 그런데도 한 번씩은 더 놀아줬으면  하는 이기심이 든다. 내가 놀아주면 될 텐데 나도 힘드니깐 딸에게 자꾸 떠 넘긴다.

"동생 울잖아. 좀 놀아주면 안 돼?"

"아빠가 놀아주면 안 돼?"

"아빠 방금까지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기 돌려놓고 이제 커피 한잔 하려고 하는데 그것도 못 마시게 하냐? 넌 지금 아무것도 안 하잖아?"

"아니거든. 나도 할거 많거든. 그럼 놀아줄 테니 숙제 빼주던가."

"됐다. 됐어. 커피는 무슨. 아빠가 볼게. 넌 숙제나 해"


네 번째는 그냥 나 때문이다.

밖을 잘 안 나가서 그런가 자꾸 소심해지고 쪼잔해져가고 있다. 난 원래 화도 잘 안 내고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이다. 근데 가시 돋친 말과 쓸데없는 잔소리가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 후회도 되는데 잠깐뿐 다시 반복이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게 다 날씨 탓이다. 이게 다 코로나 탓이다.  내 탓 아니다.라고 하고 싶다. 그렇지만 다 내 탓이겠지.


- 옆집 아저씨에게 -

잔소리와 조언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제 생각엔 내가 하면 조언 내가 들으면 잔소리인 것 같아요.

이전 14화 엄마가 외출하는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