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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Sep 28. 2021

처가댁과 본가에서 추석 보내기

이번 추석은 앞으로 쉬는 날이 많아서 토일은 처가댁에서 월화는 본가에서 보내기로 했다.  토요일 오전 7시쯤 차를 타고 4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처가댁으로 출발했다. 중간에 조카를 태우고 가기로 해서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기존에는 명절 당일날 처가댁을 방문했었기에 이미 완성되어있는 음식들을 먹고 마시면 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명절 전에 가게 되어서 사전에 음식 장만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아내가 장모님께 말을 해놓았었다. 그래서 오전 일찍 처가댁 도착 후 장모님이 차려주신 밥을 먹고 김치 담그기부터 시작했다.

김장 때는 자주 와서 함께 했었지만 명절날 김치 담그는 걸 도와드리기는 결혼 생활 12년 만에 처음이었다. 참 무심했었다.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했다. 김치 속에 넣을 재료들도 다듬고 자르고. 양념도 만들고. 그리고 열심히 무쳤다. 이 정도만 해도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다음은 전 부치기였다. 소고기 육전, 연근전, 동태전, 가지전을 부쳤다. 대부분 재료는 손질이 되어있었기에 내가 한 일은 재료에 튀김가루를 묻힌 후 계란물을 입혀 팬에 올려놓는 것뿐이었다. 전을 뒤집는 건 장인어른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전을 부치다 보니 목이 느끼해져서 내가 명절날 가족들과 먹기 위해 직접 담근 청주를 한 잔 마셨다. 기름의 느끼함이 전부 씻겨져 나간 듯 상쾌해졌다. 


그리고 잠시 쉬다가 저녁에 먹을 회를 사기 위해 장인어른과 함께 시장에 갔다. 시장에 사람들이 많아서 광어회, 전어회, 새우와 꽃게를 사는데 1시간 남짓 걸렸다. 그동안 장인어른과 불편하진 않지만 어색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었다. 술을 마시면 어색함 없이 대화를 잘할 수 있는데 이상하게 맨 정신엔 서로 많은 말을 나누진 않는다.


그렇게 내가 직접 몸으로 도와서 만든 음식들과 장인어른이 사주신 싱싱한 회, 그리고 내가 만든 청주와 탁주로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은 장모님이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며 1박 2일의 처가댁 명절을 마무리하였다. 집에 돌아와서 남은 주말 시간은 우리 가족끼리 먹고 놀고 자면서 푹 쉬었다.


월요일 아침은 간단하게 누룽지와 김치로 식사를 차려 아내와 아이들을 먹였다. 그리고 짐을 싸서 1시간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본가로 향했다. 가기 전 수산시장에 들러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리비를 사 가지고 갔다.


가는 도중 지인들 선물을 좀 돌렸다. 예전 같으면 선물을 주고 들어가서 차도 한잔 했을 수도 있는데 코로나와 함께하는 요즘은 밖에서 선물만 주고 바로 돌아섰다. 이제는 이런 만남이 오히려 편한 것 같기도 하다.


이번 본가에서의 메인 메뉴는 삼합이다. 홍어는 명절 전에 우리가 주문해서 양쪽 집에 미리 보내 놨었고 어머니는 수육을 해주시기로 했다. 대신 갈비나 다른 음식들은 최대한 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럼에도 이미 여러 종류의 김치를 담가 놓으셨다. 자식들이 온다니깐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기에 차려주신 건 모두 열심히 맛있게 먹었다.


다음날 오전에 우리 집 유일한 기독교 신자이신 어머님의 뜻에 맞추어 추석 예배를 드리고 아버지 산소를 갔다 오는 것으로 명절 행사는 모두 마무리가 된다.(양쪽 집 모두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점심은 간단하게 치킨과 피자를 시켜 먹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서 우리 집의 추석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본가에서의 나는 처가댁에서 한 것처럼 주방일을 하지는 않는다. 대신 나의 본가에서는 아내가 주방일을 한다(아내가 처가댁에서도 주방일을 하기는 하지만 몸보다는 입을 더 많이 움직인다). 요리는 어머니가 거의 하지만 아내가 상차림과 설거지를 한다. 나는 정말 조금 도와주는 정도에 그친다.


그렇기에 본가에서는 아내의 눈치가 보인다. 힘들게 일하지는 않을까? 눈치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그럼 직접 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묻는 분들도 꽤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예전부터 미리 협의 한 사항이 있다. 각자 집에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집에 더 신경을 써주자. 그러면 다투거나 속상한 일들이 조금은 더 줄어들 수 있을 것 같기에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요즘은 '셀프 효도'라는 말처럼 각자 부모님께는 각자 알아서 효도 하자라는 말이 많이 있긴 한데 우리 상황과 성격과는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부모님들도 좋아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는 명절날뿐만 아니라 다른 날들에도 처가댁에서는 내가 본가에서는 아내가 조금 더 신경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어느 게 맞고 틀린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맞게 서로 의논하고 협의해서 결정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일방적인 결정이나 관례라는 미명 하에 한 명에게 모든 일과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즐거운 명절을 더욱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는 남편이나 아내나 사위나 며느리나 모두 자기 집의 귀한 자식들이다라는 생각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의 가족들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그것들만 갖추고 있다면 명절이든 일상적인 만남이든 큰 상처가 될 일들은 절대 생기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추석날 찍은 거북이 구름과 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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