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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May 04. 2022

새아기로 불렸던 그 해 설

첫 번째 이야기

음력 1월 1일, 설.

결혼하고 처음 맞는 명절이었다.

명절이면 해외로, 텅 빈 도심으로 쏘다니기 바빴던 자유로웠던 날들을 기리며, 나는 결혼을 하지 말 걸 그랬나 싶었다. 달력 속 빨간색 날까지 남은 일 수를 꼽아보며 착잡해지는 날들이었다. 괜스레 가슴도 두근거렸다. 설레서는 아닐 테고, 무서워서 심박수가 빨라졌다고 보는 편이 맞을 테다. 겪어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막연한 희망, 기대 같은 것들이 어우러져 마음이 들쭉날쭉 널뛰기를 했다.


10여 년 전 나의 남자 친구, 현 남편은 자신이 무슨 지방 무슨 씨 몇 대 '종손'이라고 말했다.


"너네 집이 종갓집 같은 거야? 한옥에 살고 한복 입고 지내고 제사 지내고 이런 건가?"

"아 '그런' 종갓집은 아닌데, 장손에 장손에 장손이 나라는 거지."

"장손? 그게 뭔데, 아들? 그럼 외동아들이 연속으로 몇 명인지를 센 거야? 그런데 너 외동 아니잖아, 누나가 있는데 왜 네가 장손이니?"

남자 친구와 나는 답답한 수수께끼 같은 대화를 이어갔다.

듣자 하니, 그가 대충 그 집안의 몇 번째 장남이라는 뜻인 듯했다. 몇 번째 장남인지, 대를 거듭할 때마다 번호를 매기는 일이 꽤나 전근대적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나는 그가 대체 몇 대 종손인지 여전히 기억해내지 못한다. 물어보고도 금세 잊고 만다. 본능적으로 어떤 방어 기제라도 작동하는 걸까. 그 정확한 숫자는 머릿속에 좀처럼 새겨지지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사실 지금도 나는 모르겠다. 대체 그게 무엇인지.


어릴 적 명절이면 KBS 1 TV에서 어느 지방 종갓집의 명절 나기를 주제로 다큐 프로를 방영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멋들어진 한옥을 배경으로 하얀 한복을 입은 아낙네들이 군불을 때고 마루에 앉아 무언가를 다듬고, 갓 따위의 모자에 예스러운 한복을 입은 사내들은 어딘가를 향해 절을 하고. 이 집안은 명절에 이런 음식을 하곤 합니다, 대충 이런 그림들. 처음 그가 몇 대 종손 들먹거릴 때, 나는 그가 그런 집안의 아들인가 했다. 그리고 설사 그렇다한들, 대체 네가 몇 대 종손인지가 나와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 했다. 알고 보니 그는 TV에 비치는 명문가의 자손도 아니었고, 대단한 전통을 고수하는 집안의 아드님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더 모르겠다. 대체 그 허울 좋은 체하는 종손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남자 친구일 때의 그는, 연간 회수로 열 번에 수렴하는 제사에 참석하지도 않았고, 성묘나 벌초 따위에 나선 적도 없었다. 집안 어른을 챙긴다거나 집안의 행사에 참여한다거나 하는 일도 전무했다. 나는 '종손'의 정의를 읊어댈 수는 없었지만, 그 이름에 걸맞아 보이는 어렴풋한 의무 따위의 것을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종손이라는 사실은, 꽤 긴 연애기간 동안 나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야깃거리였다.

 

명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몇 번의 명절을 텅 빈 서울을 만끽하며 보내기도 했다. 우리 집은 '굳이' 명절에 힘들게 내려오지 말아라 주의이기도 했고, 나도 텅 비어버린 광화문이 그렇게나 좋았다.

어라, 그런데 얘 종손 어쩌고 하면서도 명절엔 안 가도 되네? 종손이라고 별 대단한 책무가 있는 건 아닌가 봐.


그래서 나는 그가 자신이 어느 지방 무슨 씨 몇 대 종손이라고 할 때마다, 그야말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었다. 그 대단한 종손님께서 제사도 안 지내고, 명절에는 여자 친구랑 희희낙락하고 있다고? 어르신들 노하실라.

우리는 우리의 관계나 질서에는 영향을 못 미치는 그 사실을 그저 농담거리로 삼곤 했다.


지나고 보니, 그가 몇 대 종손이라 불리며 성장했다는 사실에는 많은 함의가 있었다. 꽤나 보수적일 집안 문화나 전통을 사수하는 어르신들, 그리고 그 속에서 대를 이으며 예를 차리는 데 자신을 갈아 넣었을 여자, 그리고 여자들. 얄팍한 생각의 흐름대로 흘러가며 살던 나는, 그 숨은 의미들을 간과했다.

 



결혼하고 일 년 남짓, 일주일에 한 번, 내 퇴근시간 무렵이면 시아버지는 안부 전화를 걸어오시곤 했다. 설을 얼마 앞둔 어느 날, 어스름한 저녁에 어김없이 내 전화벨이 울렸다. 늘 그렇듯 시시콜콜한 안부를 주고받다, 자연스레 명절로 화제가 옮아갔다.


시아버지가 말씀하시길,

"걱정하지 말어라. 새아기 너 말고도 일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혀도 된다. 내가 데리고 나가줄게." 하셨다.


"아버님 정말이죠? 그럼 저는 아버님만 믿고 가벼운 마음으로 갈게요."


농담과 진담을 아슬아슬 오가는 대화는 웃음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걱정하지 말어라.', '일 할 사람이 많다.'는 말에 그림자처럼 깔린 불편한 진실들을 묻어 두었다.

걱정할만한 일이 있긴 한가 보죠?, 일 할 사람이란 건 대체 누구를 말씀하시는 걸까요?, 어떤 할 '일'이 있기에? 물음표들은 해결되지 못하고 둥둥 떠다녔다.


결혼 후 첫 명절, 누구네 집에 먼저 가겠냐는 물음은 생략되었다. 당사자인 나와 남편도 그리고 양가 어른들도 모두 우리의 목적지를 자연스레 남편의 할머니 댁으로 정했다. 남편의 친척들을 제대로 만나는 첫 번째 자리였다. 원피스에 코트를 걸쳐 입고, 구두를 신고서 몇 시간 기차를 타고 새아기가 출발했다.


우리가 향하던 그곳은 시골 할머니 댁으로 불렸지만, 정작 남편의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누워계셨다. 주인장 없는 할머니 댁에 도착해 마주한 이들은 시아버지의 다섯 동생들과 그의 아내들,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이었다. 그야말로 대가족이 한 지붕 아래 복닥거리고 있었다. 한눈에 쏙 들어오는 집이건만, 신기하게도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걸까. 시부모님과 남편이 나서서 누가 누군지, 부지런히 소개를 해주었다. 하지만 이미 그 수에 압도된 나의 뇌는 안녕하지 못했고, 입은 기계처럼 '안녕하세요'를 되뇌었다.

잠깐만. 그러니까 저 사람이 아버님의 몇 번째 동생의 몇째 딸이라고?  


소개가 끝나자 시어머니 영희씨가 말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라."


나는 어리둥절했다. 아무래도 이 집은 좌식이니 치마 말고 바지로 갈아입으라는 말인가?


"네? 편한 옷이요? 어떤... 옷? 지금도 편한데요."

"음식 해얄 거 아니야. 편한 옷 입고 해야지. 앞치마는 갖고 왔어?"


아뿔싸 내가 앞치마를 챙겨 갔을 리 없다. 영희씨는 이미 앞치마를 제 몸에 단단히 걸쳐 매고 있었다. 어느 소주 회사의 로고가 선명하게 그려진 앞치마를.

고개를 가로젓는 나를 두고, 영희씨는 어디선가 꽃분홍색 앞치마를 하나 찾아왔다.

"저 방에서 옷 갈아입고, 이 앞치마 써라."


청바지에 앞치마를 걸친 나는 어정쩡하니 부엌 입구 언저리에 서있었다. 마치 나를 어디에라도 써주십사 안절부절못하며 일자리를 구하는 모양새였다. 그 집의 좁은 부엌은 이미 남편의 다섯 작은어머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 작은어머님 제가 설거지를 할까요?"

설거지를 하던 가장 어린 작은어머니께 낯선 호칭을 붙여가며 물었다.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건 설거지뿐이었으니까.


"아니야,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있어. 내가 하면 돼."

그녀는 설거지를 사수했다.

나이로나 주방 서열로나 내 바로 위쯤 되어 보이는 그녀도 설거지를 사수해야만 하는 난감한 입장인 듯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앞치마는 꽉 조여 맨 나는 드디어 영희씨로부터 할 일을 할당받았다. 영희씨는 퉁퉁한 새송이버섯을 길쭉하고 날씬하게 찢어 소쿠리에 넣을 것을 주문했다. 우습게도 나는 뻘쭘하니 서있던 내게 할 일을 만들어 준 영희씨가 고마울 지경이었다.

 

"저, 어머님 이거 어떻게 찢어요? 칼로 해요?"

"봐봐라. 그냥 이렇게 잡고 세로로 주욱 얇게 얇게 찢어라. 국에 넣을 거다."


주방 구석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새송이버섯을 하나 움켜쥐었다. 새송이 버섯은 구워 먹을 줄이나 알았지, 찢어본 적은 처음이었던 나는 무척 어설펐다. 버섯은 생각보다 딱딱해서 결을 따라 찢어지다가도 이내 뚝뚝 끊어지고 부서졌다. 나는 영희씨가 원하는 모양대로 찢어내지 못한 버섯들을 소쿠리 밑으로 슬그머니 밀어 넣었다. 버섯은 계속 뚝뚝 끊어졌다. 힐끔 보던 영희씨의 눈에 드디어 내 망할 버섯 소쿠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유, 이걸 이렇게 뜯어놓으면 어떡해. 한 번도 안 해봤나? 이렇게, 이렇게 찢으라니까. 제일 하기 쉬운 거 줬더니. 나와봐, 내가 할게."


나무라는 소리를 들으니, 버섯 하나 원하는 모양대로 못 찢어내는 내가 한심했다. 옆으로 밀려난 나는 영희 씨가 야무진 손으로 버섯을 찢어내는 모양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눈을 돌려 남편을 찾았다.


같은 시간, 남편은 3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작은아버지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거실 바닥 가운데에 조그만 술상 하나를 두고 시아버지를 좌장으로 한, 남자들만의 회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얘, 남편아 여기 좀 봐. 네가 웃고 먹고 마시고 떠드는 데 나는 버섯 못 찢어서 네 엄마한테 혼나고 있단다.'

간절한 눈빛으로 구조요청을 해보지만, 눈치 없고 엉덩이 무거운 녀석은 뭐가 그리 즐거운 지 연거푸 잔을 들이켰다.


나는 유일하게 하나 얻은 내 몫의 일을 해내지 못하고 처참한 심정으로 주방 바닥에 앉아 있었다. 오랜 세월 함께 명절을 지내온 그 주방의 여인들은 나름의 임무가 있었다. 그 좁은 주방에서 그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였다. 누구는 국을 끓이고, 누구는 다듬고, 누구는 부치고, 누구는 설거지를 하면서.


커다란 팬에 생선 몇 개를 올려 굽는 영희씨를 옆에서 돕고 있자니, 그녀가 자랑스레 말했다.


"사실은 오늘 일 많이 안 시키려고, 지난 주말에 미리 전 좀 부쳤다. 누구네 누구네랑 같이."

그 누구, 누구는 남편의 사촌 동생들의 이름이었다. 나는 내심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도 했지만, 이내 고맙다는 말을 삼켰다. 고맙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고맙다고 하는 순간 그 일이 곧 내 일이라고 인정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내 일을 '대신' 해 준 그녀에게 감사하는 꼴이 될 것만 같았다. 애초에 그 일은 내 일이 아니기에.


"네, 힘드셨겠어요."

나는 어정쩡한 말을 골라 대충 내뱉었다.


"그렇게 미리 준비해놔도, 입이 이렇게 많으니 한 끼 해 먹으려면 밥 차리는 일만 해도 장난 아니야."

"아, 그럼 지금 하는 이 음식들이 차례용이 아니고, 한 끼 밥해먹으려는 거..."


하기야 한 지붕 아래 대충 합해봐도 스무 명은 족히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제사 지낼 음식만 생각한 내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다. 그렇다. 이 집은 명절마다 사이좋게 모여 밥을 해 먹고 치우고 해 먹고 치우고, 거기에 조상님 밥까지 예를 다해왔다. 그리고 그 몫은 저기 거실에 앉아 소란 떠는 아들들 말고, 여기 주방에서 복닥대는 그 아내들이 도맡고 있었다.


나는 내가 마주한 현실이 새삼 생경했고, 저기 몇 걸음이면 닿을 곳에서 웃고 떠드는 남편의 모습도 생경했다. 주방 바닥에 앉아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내 모습이 처량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뜨거운 기운이 목 울대를 넘어올 때마다 삼켜내느라 애를 썼다.


'엄마, 아빠가 열심히 소중히 키워냈는데. 겨우 이렇게 살라고 그 고생을 하며 나를 공부시킨 게 아닌데.'


지금에야 부끄럽고 우습기도 하지만, 그날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딱 저랬다.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 좋다는 대학 들어가 남들 좋다는 직업을 가진 게 그렇게나 서글펐다. 그리고 그 뒷바라지를 해 준 부모님이 생각나 자주 울컥했다. 남편이나 나나 살아온 궤적이나 사회적 지위는 고만고만한데. 왜 지금 그는 저기, 나는 여기 있나 무척 억울했기 때문이리라.


나와 동등한 선상에 존재하는 줄로만 알던 이가 어느 순간 계급 상승이라도 한 냥 저기에 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수저를 나르고 그릇을 나르며 종종걸음으로 오늘 처음 인사를 나눈 이들의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너무 부당하지만 그 누구도 내 편을 들어줄 리 없어 보였다. 그들의 질서에 파문을 일으킬만한 담력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도 결국 이렇게 살게 되었구나, 자괴감과 상실감이 덮쳐왔다.


그리고 그날 남편은 저녁 상에서 밥을 푸고 있는 나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었다. 앞치마가 잘 어울린다나 뭐라나. 나는 속으로 있는 힘껏 상스러운 욕을 하며, 부지런히 밥을 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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