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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May 20. 2022

새아기로 불렸던 그 해 설

두 번째 이야기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입에 오르내리는 남편의 사진 촬영 건. 아직도 내 마음속에 응어리져있어 명절이 가까워지면 으레 그 응어리를 토해내곤 한다.


그저 우리의 첫 명절을 기념하고 싶어서, 나의 앞치마 맨 모습이 귀여워서 찍었다는 설명을 납득하기에는 내 마음이 그리 넓은 품이 못된다. 물론 남편은 사진을 찍고서 이내 내가 퍼낸 밥을 나르며 '도와'주었다마는. 그것만으로 내가 느낀 모종의 굴종감같은 것을 해소해줄 수는 없었다.


이른 저녁 식사는 두세 개의 상으로 나누어 차려졌다. 시아버지와 그의 형제들, 그리고 그들의 남자 자녀들로 한 상이 꾸려졌다. 그리고 나는 당연하게도 시어머니 영희씨를 필두로 아래로 헤쳐 모여 당한 여자들의 상에 앉았다. 내가 있는 그곳이 바로 남녀유별의 장이었다.


시아버지의 둘째, 셋째쯤 되는 동생, 나의 작은아버님이 내 잔에 소주를 따르며 나에게 건배사를 주문했다. 나는 예의 수줍은 웃음을 지으며 "가족이 되어서 행복합니다." 따위의 지금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징그러운 거짓말을 내뱉었다. 어른들은 모두 흡족해했고, 나의 눈치 없는 남편도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가족이 되어서 행복하다니. 행복은커녕, 도리어 불행에 가까운 처참한 심정이었지만 절대 새아기의 얼굴에 그 티가 나서는 안됐다. 주방에서 이미 진이 빠진 탓에 입맛이 뚝 떨어졌지만, 꾸역꾸역 열심히 밥을 밀어 넣었다. 밥을 깨작거리는 새아기가 되어서는 안 됐다.


그래도 남편을 포함해 이 집 남자들 몇몇은 상 치우는 일에 손을 보탰다. 평소 식사 뒷정리나 설거지를 늘 함께 해오던 남편이었지만, 이 집에서 그의 행동은 그를 특별히 자상한 남편으로 만들어 주었다. 사람 수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그릇이 금세 설거지통에 쌓였다. 아무도 나에게 설거지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그 설거지는 마치 나의 소임인 것만 같았다.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주섬주섬 고무장갑을 집어 들던 나는 가장 어린 작은어머님에게 곧 블로킹당하고 말았다. 특별히 주방에서 할 줄 아는 것 없는, 가장 서열 낮은 두 사람이 설거지를 두고 옥신각신 하는 모양새란. 그녀나 나나 '차라리' 설거지하는 편이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보기 좋게 과일을 깎아낼 수도 없었고, 낯선 어른들 사이에 앉아 헤실거리고 있기도 싫었다. 차라리 벽을 보고 설거지를 하는 편이 나았다.


해가 지고 어둑해지면서 나는 줄곧 시계만 쳐다봤다. 내일 오전만 버티면 집에 간다. 시계 바늘은 타는 내 마음도 모르고 한 바퀴 한 바퀴 제 템포로 돌았다. 그 속도가 어찌나 느리게 느껴지던지, 당장이라도 시계 바늘을 돌려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기만을 빌다, 남편과 나는 캄캄한 시골길 산책을 나섰다. 대문을 벗어나자마자 서러움이 폭발한 나는, 예정된 수순인 마냥 남편에게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너는 왜 주방에 발끝 하나 안 들이는데? 너네 집 원래 이런 식이야? 그럼 진작에 말해주지 그랬어, 결혼 안 하게. 뒤통수 제대로 맞았네. 오기 전에 이런 상황 없을 거라 약속하고 왔잖아? 왜 모른 척이야. 팔 걷고 음식은 못할망정, 하하호호 술이 들어가? 나 어머님한테 구박 들은 건 알고 있어? 내가 주방 한편에서 쭈뼛거리고 서있는 건 안 보여?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하냐? 아버님은 내 손 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하신다 호언장담하시더니, 나 몰라라 재밌게 노시던데? 원래 이게 일상인 거야? 남자들 엉덩이는 마룻바닥에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르던데. 너야 평생을 봐 온 너네 가족이고 친척들이지만, 나는 죄다 오늘 처음 안면 튼 사람들뿐이야. 오랜만에 친척들 만나서 좋지? 게다가 와이프는 알아서 눈치 보며 봉사도 해주고. 나도 너처럼 내 친척들이랑 있고 싶어. 어쩜 너는 나를 이렇게 하나도 생각해주지 않니. 부당해. 너무 부당해 미칠 것 같은데, 나 빼고 아무도 부당하다 생각 안 하는 게 더 미칠 것 같아."


나는 돌림노래 하듯 그렇고 그런 말들 사이를 돌고 또 돌았다. 하루 동안 참은 말들을 정성껏 쏟아냈다. 남편은 이렇다 할 변명 없이 미안하다는 말로만 응수했다. 나는 그 미안하다는 말이 얼마나 듣기 싫었는지 모른다. 미안하다는 말로 모든 상황을 무마하려는 것으로 느껴졌다. 말을 하면 할수록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던 나는 어두운 시골길에 서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내 울음소리에 동네 개들이 여기저기서 컹컹 짖어댔다. 나는 울면서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옆에서 말없이 따라오던 남편은, 오래 집을 비우면 부모님이 걱정하실 거라며 일단 들어가자고 했다. 그 와중에도 그는 부모님의 심기를 거스를까 걱정했다. 나는 모두가 잠들 때까지 집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 눈치만 열심히 보는 눈치 없는 남편은 부득불 같이 들어가야 한다며 나를 설득했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이 울었던 데다 눈도 퉁퉁 부어 있었다. 저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택시라도 불러서 우리집으로 가고 싶다고 소리쳤다.


남편도 나에게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미 지나간 일을 어쩌라는 거야? 당장은 해결 방법이 없잖아. 내가 미안해. 내가 더 신경 쓰겠다는데도 계속 울면 어떡하라는 거야. 일단은 들어가자. 여기 있는다고 나아지는 건 없잖아."  

대충 이런 말들 사이를 돌고 도는 그의 돌림노래가 이어졌다.


논쟁의 장은 불의를 당한 쪽이 필요로 하는 법. 기존의 질서에 편승해 편의를 누리며 호사롭게 살아온 이들에게 논쟁은 불필요하고 귀찮은 것일 뿐이다. 자신의 집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불의를 목도하고도 눈감아 버리려는 남편의 비겁함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 그는 무책임해 보였고 저 집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드는 한 무리의 중년 남성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남편과 나 둘 다 감정이 격해지며 고성이 오고 갔다. 한쪽은 울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한쪽은 그 소리에 맞서 더 크게 소리를 지르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그러는 동안 남편의 휴대전화가 여러 번 울렸다. 우리를 찾는 영희씨의 전화였다. 나는 그렇게 울며불며 남편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끔찍한 하루를 얼른 끝내버리고 싶었던 기대와는 달리, 거실 불은 환히 켜져 있었다. 스무 명 남짓되는 가족들이 겹겹이 둘러앉아 윷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영희씨는 대체 왜 이리 늦게 온 거냐며 우리를 타박했다. 그러고는 얼른 앉아 윷놀이를 하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제가 지금 엄청 울고 들어와서요, 윷놀이할 기분이 아니거든요.


둥그렇게 둘러앉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마지못해 윷을 몇 번 던지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들의 뒤편에 오도카니 앉아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만 빼고 어찌 모두들 저리 신나 보이는지. 나 하나만 입 꾹 다물고 이 집의 질서에 순응하면 별 탈 없이 행복해 보이는 저 풍경이 이어지겠구나.


욕실은 거실에 단 하나뿐이었는데, 윷놀이를 끝낸 이들은 눈치껏 차례로 씻으러 들어갔다. 샤워는 요원한 일 같아 보였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 모두들 대충 머리만 감거나 세수만 하고 나오는 듯했다. 나는 너무 난처했다. 서열 최하위인 내가 씻을 차례는 한참이 지나야 올 것 같았고, 설상가상으로 나는 생리 중이었던 터라 하루 온종일 겨우 찝찝함을 참던 차였다. 욕심을 내서 샤워를 하고 나온다한들 곤란할 것 같았다. 이미 욕실 바로 앞까지 이불이 빽빽하게 깔려 있었는데, 먼저 씻은 어른들은 이미 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많으니 거실에 이불을 펴고 모두 함께 자는 모양이었다. 거실 바닥에는 발붙일 틈 없이 이불이 깔렸다. 먼저 씻고 나온 사람들이 하나, 둘 남녀불문 저마다 하나씩 아무 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다. 전쟁통 같았다고 하면 과장일까. 1970년대쯤 되는 드라마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정녕 21세기의 명절 풍경인가, 아득했다.


어른들이 모두 씻고 더 이상 욕실로 드나드는 이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잽싸게 욕실로 들어갔다. 이미 몇몇은 잠든, 고요하고 캄캄한 거실에 생리대 떼내는 소리나 생리대 봉지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릴까봐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샤워는커녕 머리도 감지 못했다. 머리를 감았다가는 드라이기를 켜는 게 곤혹스러울 것 같았다. 욕실 안에서 나는 끔찍하게 집에 가고 싶었다. 우리집으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사람들이 횡으로 오밀조밀 누워있는 거실에서 자지 않아도 됐다. 영희씨는 나를 위한다고 거실에 접해 있는 미닫이 문이 달린 방에 이부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날 밤 나는 영희씨, 작은어머님들, 남편과 함께 밤을 보내게 됐다. 대충 씻고 들어와서 컴컴한 천장을 보고 누워있자니 자꾸 눈물이 났다. 그만 이 악몽을 끝내고 우리 집에 가고 싶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새벽 5시였나, 동도 트지 않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부스럭 대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살짝 떠보니 영희씨가 일어나 있었다. 그녀는 곧 주방으로 나섰다. 나는 누운 채로 한숨을 쉬었다. 지금 일어나야 하는 건가.

잠이 순식간에 달아나버려 눈알만 굴리고 있었는데, 잠시 후 옆에 있던 작은어머님마저 일어났다. 아, 정녕 일어나야 하는 걸까. 여전히 코를 골고 있는 남편의 옆구리를 찔렀다.


"일어나봐. 주방 가서 일해야 되나봐. 나도 가야 되지?"

"몇 신데 벌써 일어나? 캄캄한데. 됐어, 그냥 더 자."

"아냐, 두 분 이미 나가셨어. 너도 일어나서 도와."


무거운 몸을 일으켜 나와 거실을 힐끗 보니, 몇몇 자리의 이불이 들추어져 있었다. 환하게 불이 켜진 주방에는 그 이부자리의 주인인 듯한 서너 명의 실루엣이 보였다. 세수를 마치고 주방으로 들어가 아침인사를 했다.


"깼네. 더 자지 그랬어."

그렇게 말하는 영희씨의 손은 자연스럽게 소쿠리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날 새벽 내가 만지고 다듬은 소쿠리 안의 채소가 무엇이었는지 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눈 뜨자마자 부엌에서 음식 준비에 손을 보태고 있었다. 내 기억 속 그 장면에 남편이 없었던 걸 보니, 그는 나와 함께 일어나 주방을 기웃거리다 할 일이 없어 보여 나갔던가 했던 모양이다. 엉성한 실력으로 일손을 돕고 있자니, 하나 둘 일어나 욕실로 차례차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모양이 보였다.


동이 트고 나자 영희씨는 내게 한복으로 갈아입으라고 명했다. 아, 한복! 결혼 준비를 하던 무렵, 명절에 꼭 입어야 한다는 영희씨의 성화에 하나 맞추었던 나의 그 한복. 아, 그때 나는 결혼 준비를 멈추었어야 했나. 명절에 한복을 입는다는 힌트까지 줬는데, 눈치코치 없던 과거의 나를 탓해본다. 끼리끼리는 과학이라는데, 남편 눈치 없다고 핀잔 줄 일이 아니다. 내 눈치부터 챙겼어야 했다.


웨딩촬영 날 한 번 입고 고이 봉해져 있던 나의 한복. 나름 어제 하루 겪어봤다고, 나는 '일'하기에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속치마는 과감히 빼고 속바지를 택했다. 한복을 입을 때 봉긋한 치마 모양을 내려면 속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어쨌든 주섬주섬 속바지만 입은 채 내 마음처럼 축 쳐진 치마 모양새를 하고서, 미처 감지 못한 머리를 대충 아래로 묶어냈다. 새색시 한복을 입은 새아기는 다시 여기저기로 그릇을 나르며 분주히 움직였다.


어제 술상 앞에서 요지부동이던 남성분들께서, 오늘은 제법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법을 따르는 성스럽고 성스러운 차례는 제 손으로 지내야 해서인가. 그럼, 중요하지 차례인지 제사인지 어쨌든 그 고귀한 손으로 상을 차려야지. 과일은 여기 놓고, 고기는 저기 놓고. 자신들이 먹을 밥에는 손 하나 까딱 안 하면서, 조상님들 드실 밥은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이 우스웠다고 말하면 실례일까.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슨 목적인지. 이 많은 사람들을 갈아 넣어 차린 그 차례상 앞에서 나는 어떤 정당성이나 이유 따위를 전혀 찾지 못했다. 불가해한 세계를 마주친 이의 황망함을 느꼈다.


차례가 시작되고 여자들 중 대표 격으로 영희씨가 '무언가'를 하러 상 앞으로 나섰다. 그 '무언가'를 칭하는 단어가 무엇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마는, 제사상 앞에 나가서 술을 따르고 향을 피워 꽂고 절을 하는 그런 거였나 보다. 영희씨는 시아버지의 손짓에 착실히 임무를 수행했다.


뒤에서 텅 빈 눈을 하고 멀뚱히 서있던 나를 어른들이 불렀다.

"질부 나와야지." "새아기 이리로 와라."

"네? 저요?"

"그래, 새아기가 종부니까. 저기 향 피우고 술은 이렇게 따르고."

"종부요?"


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종손 아내면 종부라는 이름이 생기는 거로군요. 제 손에 들려 있는 이 술과 향은 누구에게 바치는 겁니까. 남편의 조상님이 지금 앞에 앉아 계신 걸까요. 아, 저는 이런 거 싫어요.

그러나 그 복잡한 마음이 티가 나서는 안됐다. 다소곳한 자세의 새아기가 되어 시아버지가 옆에서 시키는 대로, 기계처럼 술을 따르고 향을 피웠다. 주변에서 어떤 절을 몇 번 하라고도 했는데, 이런 경우가 생전 처음이었던 나는 눈치를 보며 대충 마무리 지었다. 무념무상으로 이 모든 과정을 거쳤다. 그러고 속으로는 남편의 조상님에게 온갖 민원을 제기했다.


조상님들! 지금 제 앞에서 술 드시고 밥 드시고 계신가요. 아버님은 당신들께 잘하면 덕이 온다고 그러시던데. 또 어떤 이들은 조상 덕 보는 사람들은 제사 안 지내고 명절 안 쇤다고도 하고요. 누구 말이 맞나요. 저희가 지금 조상님의 은혜를 입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게다가 저는 이 명절이 끝나면 귀하신 종손님과 갈라서든지 담판을 봐얄 것 같은데, 그것도 종손을 향한 조상님의 깊은 사랑일까요?


나의 편협한 사고방식으로는 영원히 불가해할 이 일련의 행위들.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시키는대로 몸을 움직이고 있는 나의 모습. 모든 것이 괴로웠다.  


심란한 차례를 마치고 나자 물밀듯이 손님들이 쳐들어왔고, 그들 모두는 나에게 소개의 대상이었다.

누구네 어른이시다. 누구네 몇 촌 아무개다. 어디 사는 몇 촌의 아들......

입으로는 '안녕하세요?'를 남발하면서, 들리지 않을 비명을 동시에 질렀다.

'대체 다들 누구세요. 전 안녕하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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