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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Nov 27. 2021

아쉬움을 기억하는 법

남편의 암 진단을 들은 후 가장 힘들었던 건 ‘병원을 더 일찍 가볼 걸’하는 후회였다. 암은 살면서 걸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징후들을 민감하게 캐치하지 못하고, 건강검진을 미루었던 것이 내내 속상했다. 남편은 국가에서 하는 건강검진은 매년 받았지만, 종합검진은 받은 지 5년 정도가 가까워지고 있어서 연초부터 올해는 꼭 건강검진을 해보자고 다짐했다. 다짐은 육아와 일상에 파묻혀 자꾸만 후순위로 밀려났다. 무엇보다 남편은 괜찮다고, 스스로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그놈의 알아서 하겠다는 말. 이제는 믿지 않기로 했다.  

    

잠깐 짬을 내서 하루 다녀오면 되는데 그 시간을 낼 여유조차 없이 살았다니. 브레이크를 밟지 못한 삶에 강제로 브레이크가 걸렸다. 며칠 동안 후회가 거듭되면서 괴로웠지만 더 이상 후회의 늪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남겨두고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기로 했다. 






진단은 됐으니 이제는 치료할 일만 남았다. 아이들도 어리고 해서 항암치료를 강릉에서 할까 했지만 주위에서 하는 이야기들에 마음이 흔들렸다. 지인은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을 때 더 빨리 큰 병원으로 옮기지 못했던 것이 후회된다며, 후회하지 않게 서울로 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앞서 후회의 결과가 얼마나 뼈아픈지를 경험했기에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고 싶다는 것에 공감했다.


의사인 지인은 국립암센터에서 레지던트를 했는데 ‘좀 더 일찍 큰 병원으로 올 걸’ 후회하는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났다며 무조건 서울로 가라고 조언했다. 남편을 설득하려면 나부터 확신이 서는 게 중요한데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림프종 관련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동이 틀 때까지 밤새 정보들을 찾아보면서 마음을 결정했다. 서울로 병원을 다니기로.      


림프종은 아형(subtype)도 많고 항암 약이 맞지 않을 경우 신약 임상 등에 참여해야 하는데, 지방에선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치료가 까다로워질 경우를 대비해 처음부터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 받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은 유난스러울 정도로 가장 유명한 의사를 알아보고 애써도 하나도 아까운 게 아니라며 다른 일할 시간에 필요한 것들을 얼른 알아보라고 했다. 간호사인 언니도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내가 결심이 선 후에는 남편을 설득하는 일이 남았다. 


나는 먼저 여러 병원들을 알아본 후 단호한 표정으로 남편에게 말했다. “나 이제부터 당신 말 듣지 않을 거야. 내가 하자고 하는 대로 제발 따라와줘.” 먼저 선전포고를 하니 남편은 알겠다고 수긍했다. 그리고 주위 전문가들과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덧붙이며 서울에 있는 병원을 알아보자고 했더니 남편도 알겠다고 했다. 남편도 주위에 알아보면서 림프종 명의 중에 한 명이라는 삼성서울병원 의사에게 진료를 예약했다. 림프종만 전문으로 보는 의사라서 다행히 예약을 빨리 잡을 수 있었다. 암을 발견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발견한 후에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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