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기념일도, 생일도, 휴일도 아니었고
그저 아무 날이나 다름없는 하루였다.
그날 아침에도 평소처럼 일어났고
커피를 마셨고
출근해서 일정표를 확인했다.
그런데 그날, 생각지도 못한 일이
갑자기 내게 일어났다.
그 일이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보기엔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모든 것을 바꿔버린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내 심장은 자꾸 뛰었다.
아니,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뛰었다.
계속 숨이 찼다.
가슴을 쓸어내려도 진정되지 않았고,
심호흡을 해도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잠을 자도 쉬는 기분이 들지 않았고,
일상적인 소리에도 깜짝 놀라고,
누가 나를 갑자기 부르면
내 안에서 경보처럼 알람이 울렸다.
그전엔 한 번도
내가 ‘불안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나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몸은 기억한다는 말이 있다.
마음이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몸은 진실을 숨기지 못한다고.
나는 그걸 매일 실감했다.
별일 없이도 불안했다.
아무 일도 없는데 울컥했고 눈물이 났다.
지금은 괜찮은데도
무슨 일이 또 닥칠까 봐 겁이 났다.
그날 이후로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왜 이러지?”였다.
그리고 가장 많이 꾹 삼킨 말은
“도와줘”였다.
사람들은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응, 그냥 좀 피곤해서”라고 말했다.
“요즘 조금 예민하네”라고 넘겼다.
말하는 나도, 듣는 그들도
아무 일 없는 척 잘 해냈다.
하지만 그건
‘회복’이 아니라 ‘억제’였다.
나는 회복하고 싶었다.
이유 없이 떨리는 손을
괜히 뜨거워지는 얼굴을
가슴을 누르는 이 압박감을
정말로 멈추고 싶었다.
그런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내 감정을 부정하고 있었다.
“이 정도 일로 왜 그래.”
“그냥 잊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나만 이래?”
이런 말로 내 감정을 덮었다.
하지만 감정은 덮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꺼내지 않은 불안으로,
표현하지 못한 공포로
몸속 어딘가에 그대로 쌓여 있다.
그래서 그날 이후
나는 하나씩 질문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 심장이 왜 이렇게 뛰지?
내가 힘들다고 느끼는 건 정확히 뭐지?
질문은 답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질문을 시작하는 순간,
나는 내 감정을 회피하지 않기로 한 사람이 됐다.
그게 첫걸음이었다.
지금도 나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때로는 사소한 일에도 긴장이 올라오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다시 가슴이 답답해진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건
이제는 그 감정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예전 같았으면
“나 왜 이렇게 약하지?”
“이런 걸로 흔들리다니 한심해.”
이렇게 몰아붙였을 것이다.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그날 이후의 나는,
이제 예전의 나와는 다르니까.”
“지금의 나를 지켜주는 방식도 달라져야 하니까.”
감정은 사건보다 오래간다.
기억은 잊힐 수 있어도
그때의 떨림, 두려움, 당황함은
내 몸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다.
나는 그걸
없애려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나 혼자 품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