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금수 충남문화관광해설사회 부회장님
우리나라의 절은 대부분 산사(山寺)다. 우리나라에서 전국적으로 이름이 난 절을 생각해보면 열이면 열 산에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교세가 강한 조계종의 5대 총림을 한 번 생각해보자.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 양산 통도사, 예산 수덕사, 장성 백양사. 모두 하나 같이 산에 자리하고 있다.
* 총림: 선원, 승가대학(승가대학원), 율원, 염불원을 갖추고 방장의 지도하에 대중이 여법하게 정진하는 종합수행도량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절이 산에 있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일이지만, 동아시아 전체를 봤을 때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교토에 놀러가본 적이 있는 분들은 무슨 말인지 단번에 아실테다. 교토에 위치한 수천개의 신사, 사찰은 모두 교토 시내에 아주 근접해 있다. 예를 들면 교토 여행을 가면 꼭 들르는, 끝없이 이어진 적색 기둥으로 유명한 후시미 이나리 신사의 경우 가장 가까운 도시철도 역인 후시미 이나리역과의 거리가 650m 밖에 되지 않는다.
신사가 아닌 사찰의 경우도 비슷하다. 교토의 대표적인 사찰인 도후쿠지(동복사)의 경우 가장 가까운 도시철도 역인 도바카이도 역과의 거리가 550m 밖에 되지 않는다. 대만이나 태국 등 불교가 큰 영향을 미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절은 대개 사람들이 찾기 쉬운 시가지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산사가 주를 이룬다. 절이 산에 위치하면 승려들이 수행정진하고 공부하는 데에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테지만, 아무래도 도시에 사는 일반 사람들과 소통하고 쉽게 방문하는 곳이 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산에 위치한 수덕사의 경우 비교적 현명하게 극복해냈다. 바로 주위에 자리하고 있는 내포 신도시 덕분이다.
아까 글 초반을 주의 깊게 읽은 독자는 눈치를 챘을 수도 있다만, 수덕사는 조계종의 5대 총림 중 하나다. 5대 총림이라고 하면 쉽게 조계종의 5대 본부라고 이해하면 된다. 조계종이 우리나라의 대표 종파이니, 수덕사를 우리나라의 대표 사찰 중 하나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테다.
5대 총림 중 수덕사만큼 대규모 주거단지, 또는 신도시와 가까이 위치해 있는 절은 없다. 수덕사를 제외한 나머지 4개의 사찰은 일반인이 방문하기 위해서는 큰 마음 먹고 찾아가야 하는 곳이다. 합천 해인사와 장성 백양사의 경우 애초에 모두 인구가 4만 명 정도에 불과한 소도시에 위치해 있으며, 순천 송광사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낫지만 그래도 순천 시내에서 40분 이상 운전해 가야 한다.
하지만 수덕사는 다르다. 충남도청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주거단지인 내포 신도시에서 차로 15분 정도만 운전하면 수덕사에 다다를 수 있다. 예산, 그리고 내포 신도시를 답사하러 간 우리는 이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덕사 정도의 규모를 가진 절을 차로 15분 내로 갈 수 있는 신도시라니. 수덕사와 내포 신도시의 관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덕사는 어떤 절일까? 그리고 수덕사는 내포 사람들, 그리고 예산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그 답을 들어보기 위해 수덕사로 올라가는 길에 작은 해설사 건물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셨던 충남문화관광해설사회 하금수 부회장님을 만나뵈러 갔다.
수덕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수덕사는 백제시대 때 창건했다는 창건 설화를 가지고 있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수덕사 하면 대웅전이 아무래도 가장 유명하죠.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어 있고, 굉장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건물입니다. 백제시대 때 창건되었다는 설화를 가지고 있고, 1900년대 초에 수덕사 보수 공사를 하면서 묵서에 고려 충렬왕 때 지은 건물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때가 1300년대니까 역사가 정말 오래된 거죠.
건축적인 가치도 정말 뛰어납니다. 그리고 그 안에 모셔져 있는 불상, 서까래, 아미타불 등 보존의 가치가 있는 문화재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불교가 고려시대 때 엄청난 발전을 하는데 조선시대 때 성리학의 발전으로 침체되었잖아요. 그 침체된 동안에 침체된 불교를 다시 부흥시킨 분이 수덕사의 큰 스님이었던 만공스님입니다. 만공스님도 수덕사의 자랑으로 잘 알려져 있죠.
또한 최초의 여승 선방(禪房)이 있었던 곳이 수덕사입니다. 조선 말에 궁녀들이 갈 데가 없고 많은 여인들이 머리를 깎고 비구니 스님이 되고자 절을 찾아옵니다. 그때만 해도 여자 스님을 받지 않았어요. 그러나 만공스님이 뭐랄까 조금 깨어있는 스님이라고 할 수 있죠. 전국 절 중에 여성을 최초로 받아들입니다. 수덕사에서 수련한 여승 중에 유명한 분이 “청춘을 불사르고”의 저자인 김일엽 스님이 있습니다. 또 경호 스님이라고 있습니다. 경호 스님은 1980년대 굉장히 훌륭한 스님으로 유명하셨는데요. 봉곡사라는 조그만 사찰에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수덕사에 오셔서 수행정진을 하시다가 입적을 하셔요.
수덕사의 건축적인 가치를 말씀주셨는데, 수덕사 대웅전을 감상할 때의 부회장님만의 팁을 알려주세요!
제가 또 문화재 전공자라 이런 데에 빠삭합니다 (웃음).
딱 올라가서 기단을 이제 먼저 봐야 해요. 기단을 보고 그 다음에는 기둥을 보래요. 기둥에 올려진 부재들, 즉 화반이나 창방 등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는 문을 봐야 해요. 수덕사 문이 또 특이해. 고려시대 건축물에서 흔하지 않는 빗살문을 하고 있어요. 그 다음은 기와를 봐야 합니다. 수덕사의 지붕을 보면 맞배지붕이 굉장히 시원하게 잘 들어져 있습니다. 고려시대 때 지어진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견고하고 짜임새 있게 만들어진 것이 일품이죠.
*** 화반: 주심포형식건물에서 포와 포 사이에 놓여 장혀를 받치고 있는 부재
*** 창방: 심포, 다포, 익공계 건축에서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부재
그리고 수덕사 대웅전의 하이라이트는 측면입니다. 궁궐 건축에는 보통 둥근 기둥을 쓰는데, 수덕사의 경우에는 건축의 미를 살리기 위해 네모난 기둥을 넣었어요. 그리고 건축의 면 분할이 굉장히 정확하게 잘 되어 있습니다.
또한 대들보에 금룡도가 희미하게 남아있고, 서까래가 다 보이는 형태의 천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보는 재미도 있고.
또 이런 건축물은 150년에서 200년에 한 번씩 보수 공사를 하거든요. 그 안에 옛 화관이나 그런 장식품들이 보수 공사하면서 만든 것보다 더 정교하고 세밀하고 예쁩니다. 그걸 눈으로 보실 수 있어요.
저희가 예산에 대해 답사를 하고 있는데요. 예산만의 전통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예산 사람들이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합니다. 건축물이 있고 또 그리고 또 뭐가 있냐면은 이 예산이라는 지명이 굉장히 오래됐어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명으로 알고 있어요.
1100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태조 왕건에 의해서 “예의가 바르고 산이 많다” 라는 의미로 예산이라고 이름 붙혀진 후로 계속 바뀌지 않고 지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예산하면 추사 김정희 선생님도 있고, 윤봉길 의사님도 있고… 전반적으로 전통과 유서 깊은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죠.
그리고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게 있는데… 바로 봉산면에 있는 화전리 사면석불입니다. 그 유명한 서산의 마애삼존불보다 역사가 오래되었어요. 그게 일반인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안타깝게도 많이 훼손이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승격은 됐는데, 국보로 선정되지는 못했어요.
그렇다면 예산의 사면석불을 국보로 승격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걸까요?
사실 너무 지체되고 있어요. 학생들이 한 번 알려져 있지 않은 사면석불을 잘 홍보해주세요. 조금 훼손이 되기는 했지만 그 가치는 충분히 인정받아 마땅하거든요. 매거진에 기사도 나가고, 푸시를 해주면 너무 좋지. 유명한 건 이미 잘 알려져 있으니까. 잘 알려져있지 않은 걸 발굴해서 알리는 것도 참 의미가 있지 싶어요.
사면석불 말고도 예산의 역사과 정체성에 대해 더 말씀해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예산하면 백제를 빼놓을 수 없죠. 대표적으로 임존성이 있어요. 임존성은 백제 부흥 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어요. 내가 석사 학위 받은 게 백제 부흥 운동 관련 주제였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임존성이 정말 안타까운 게 이것도 보존이 잘 안 되어 있어요. 그 시대에는 참… 어쩔 수 없었지. 우리나라가 1962년에 문화재법이 제대로 생기는데요. 그러다보니 그 전에 이뤄진 공사들 경우에는 보수가 제대로 안 되어 있습니다. 사적지로 지정되긴 했는데, 성벽을 옛날 것을 그대로 보존한 게 아니라 석재로 툭툭 쌓아 올렸어요. 안타깝죠.
오 그렇군요. 백제부흥운동과 예산의 관계에 대해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패했지만 몇 개의 성만 함락됐지 다 함락한 건 아니었어요. 그래서 부흥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그런 역사적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이 바로 예산이죠. 예산군 대흥면에 495m짜리 높은 산에 성벽을 쌓고 부흥운동을 한 터가 남아 있어요. 그 흔적이 잘 남아있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이제는 과거의 역사 말고 현재의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내포 신도시 사람들이 수덕사에 가족끼리 휴식 취하는 장소, 데이트 코스 등으로 많이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네 가족끼리 정말 많이 와요. 연인들이나 젊은 사람들도 많이 오고. 내포 신도시의 영향도 분명히 있겠죠. 내포 신도시와 수덕사는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것 같아요. 내포 신도시 사람들이 수덕사를 쉼의 공간으로서 많이 이용하고. 수덕사 주위에 조성된 소나무 숲 등으로 많이 치유도 받고. 신도시하면 보통 삭막하다는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는데 내포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인구가 그렇게까지 많지 않아서인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굉장히 가족적인 분위기예요. 큰 범죄나 사건 사고도 없고. 자연재해도 많이 없고.
저희가 이제 수덕사를 알게 된 게, 수덕사가 이번에 한국관광100선에 선정되었잖아요. 이게 수덕사나 내포 신도시의 미래에 어떤 긍정적인 의미가 있을까요?
관광적인 의미에서는 일단은 굉장히 좋은 거죠. 많은 사람들이 예산군을 찾으니까. 예산 상인들의 경제적인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또 요새는 백종원 대표님이 예산군에 많이 신경을 써줘서. 예산 시장도 그렇고. 예산에 애정을 가지고 이렇게 해주면 예산군민 입장에서는 아주 고맙지. 요새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게 해준다는 게 참 얼마나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불교 문화, 그리고 이런 사찰. 굉장히 고즈넉하고 소박하고 예쁘잖아요. 이런 사찰 문화, 우리의 전통 문화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유능한 해설사들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고. 지금 활동하고 있는 해설사들도 점점 고령화되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고, 자원봉사라 조금 열악한 면이 있어요.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들어와서 좋은 문화재들이 잘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글: <local.kit in 예산> 류호균 에디터, 사진: <local.kit in 예산> 이다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