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사진: 튀르키예 북동부 해안도시 Trabzon 산비탈의 에어비앤비 주택에서 바라본 흑해
부동산에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는데 내가 살고 있는 집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주말에 집을 보여주겠다고 약속을 잡았다. 마당은 이미 밖에서 봤고 실내가 궁금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른 주택들도 몇 개 봤는데 내 집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말하였다. 막상 집을 팔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니 갑자기 집에 대한 추억과 아쉬움이 밀려들어왔다. 부동산 중개인에게 매도 하한선을 이야기했는데 요즘 주택 경기가 안 좋아서 제 값에 팔기는 힘들 것 같고 다들 싸게 내놓았다고 한다.
아파트에서 지금 주택으로 이사 올 때의 심정, 그리고 이 집에서의 추억들, 특히 마당에서의 추억이 많다. 대형 풀장에 물을 받아놓고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고 바베큐를 하고 캠핑과 불놀이도 하였다. 어두컴컴한 늦은 저녁에는 속옷 바람으로 나가서 골프 빈 스윙도 하는 자유로움도 누렸다. 모기가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기 전인 5월 초까지 마당에서 은은하게 캠핑 등을 켜놓고 지인을 초대해서 먹고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즐거움도 아파트에서는 누릴 수 없는 호사였다.
주택은 아파트처럼 위아래층의 이웃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쿵쿵 걸어도 되고 밤늦게 악기 연주를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또한 이웃 소음없이 조용하게 고즈넉함을 즐길 수 있는 주택의 장점.
위에 열거한 장점들을 다 포기하고 다시 아파트로 갈 생각을 하니 이게 과연 잘하는 결정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아파트로 간다고 해도 언젠가는 다시 주택으로 돌아가고 싶다. 마당 있는 주택의 여유로움과 자유, 그리고 호젓함이 좋다. 창문을 열면 바로 코로 들어오는 나무 냄새, 풀향기, 그리고 새들의 아름다운 소리를 지척에서 들으며 책을 보는 맛은 아파트에서의 독서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크다. 현관문을 나서면 바로 밟을 수 있는 흙의 질감도 장점이다.
팔까 말까... 거래가 성사돼도 고민일 듯하다. 안돼도 별로 아쉽지 않을 것 같고. 투자로 굴릴 돈은 더 생기겠지만 지금 투자한 금액만으로도 적지 않은 멀티플을 기대할 수 있다. 나는 이 집이 참 좋은데... 매번 주차전쟁을 해야 하는 아파트와는 달리 언제 어느 때나 주차할 수 있는 전용 공간도 확보되어 있고 서울행 고속버스 정류장도 걸어가는 거리에 있어서 아주 편하다. 이런 모든 장점들을 고려해서 이 집을 샀었는데... 삶이란 내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일단 주말에 약속이 잡혔으니 이번 주 내내 집 청소를 열심히 하게 될 것 같다. 그동안 미뤘던 주방등도 설치하고. 아파트와는 달리 주택은 궁합이라는 것이 있다. 살 사람이 정해져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이들일까.
난 주택의 고요함이 좋고 시끄러운 건 질색하는 편이다. 음악도 큰 볼륨보다는 적당하게 약간 작게 듣는 것을 선호한다. 귀 기울여 듣는 스타일. 작년 남미 여행에서 브라질과 우루과이를 거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마지막 숙박을 했던 아파트가 시설을 좋았지만 대로변에 있어서 하루 종일 어찌나 소음이 심하던지 내 몸이 아주 많이 힘들었다. 여기저기 많이 살아본 결과 나는 주택이 좋다. 남은 여생도 가급적이면 주택에서 살고 싶고 생의 마감도 주택에서 하고 싶다.
금융자산이 많이 불어나면 일 년에 몇 달씩은 외국의 경치 좋고 조용한 지역의 주택을 임대해서 살아볼 생각이다. 꿈은 크게 매일 시각화하면서 성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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