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더위

by Loche


7월 중순이다. 여름은 절반 가량 지났고 이제 한 달 정도 지나면 아침이 선선해지기 시작하겠지. 지금은 꽤 덥지만 연중 더운 동남아 국가나 인도와는 달리 한국의 여름은 길지 않기에 견딜만하다.


더웠던 기억을 끄집어내 보자면 베트남 여행 갔을 때가 떠오른다. 길거리를 오래 걸어다니지 못하고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콩카페에 들어가서 코코넛스무디 커피를 사마시곤 했다. 카페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한두시간에 한 번씩은 꼭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하롱베이의 불쾌한 끈끈함과 고온, 다낭 옆의 호이안도 어찌나 뜨겁던지 한낮에는 직사광을 맞으면서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카페로, 식당으로 박물관으로 피해 다니다가 저녁 무렵에야 관광을 하곤 했다.


열탕 사우나 안에 있는 것 같았던 한여름 일본 도쿄의 기억은 정말로 끔찍했다. 아부다비는 습하지는 않았지만 내리쬐는 뜨거운 열기가 기억난다. 굉장한 더위.


더운 것보다는 추운 것이 낫다. 한국이 일 년 내내 더운 것이 아니니 다행이다. 곧 지나갈 테니 조금 기다리면 되지.


예년과 달리 올해는 여행을 안 가니 삶이 매우 심플하다. 집, 직장, 장 보러 가기, 교육과 세미나 참석. 아이들 병원 진료, 가끔 아이들과 외식.


연초부터 지금까지 6개월 반가량이 지났지만 일상의 변화가 거의 없다. 매일 책 보는 것이 주된 일과. 책을 보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주말에 특히 그렇다. 이 집에 이사 온 지 어느덧 13년 째이다. 지금은 이사 간 맞은편 쪽 이웃 할머니가 "주택에 살면 10년 금방 지나가요"라고 말해주었는데 역시나 훌쩍 십 년을 넘겼다. 맞은편 술장사꾼집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느 순간 안 보였고, 큰 길가 쪽 의사집은 새집 짓고 산지 몇 년 안되서 부인과 이혼을 했는지 아이들 셋과 부인이 사라졌고 새로운 여자가 들어와 같이 산다. 이사 올 당시만 해도 부자로 보였던 유명 영화관 사장집은 국내 영화산업의 쇠퇴기를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궁금하다. 옆집의 은퇴한 교수님 부부는 이사 올 당시에 비해서 완연하게 노인이 되어서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걸음걸이도 느리게 터벅터벅.


내가 무엇을 하든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작년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연초에 굳은 다짐을 한 이후로 계속해서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계속되는 혼자만의 시간. 집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조용하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성장에 도움 안 되는 그저 그런 인간관계를 다 끊고 혼자서 지내는 것이 아주 만족스럽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결정이다. 하지만 나의 지식과 지혜의 확장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에는 활짝 열려있다.


매일 책을 보다 보면 어느새 가을이 오고 겨울도 곧 뒤따라 올 것이다. 그리고 내년 1월이 되면 올해보다는 더 큰 성장을 하고 내면의 그릇을 더 키우겠다는 다짐을 새로 하게 되겠지.


사십개 국 넘게 해외여행과 거주를 해봤지만 한국은 참 살기 좋은 곳이다. 사계절이 있고 수돗물로 식수를 마실 수 있고 산도 있고 바다도 있다. 공기의 질도 좋고. 그리고 참 안전한 나라. 다른 나라에 비해서 소매치기와 강도 없고 도둑 걱정 안 해도 되는 나라. 이렇게 골고루 살기 좋은 조건을 가진 나라는 참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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