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좀비딸

새로운 눈

by Loche


미학 수업의 일환으로 좀비딸을 단체 관람하였다. 내가 일해서 낸 세금으로 작은 혜택을 누리는 것이지만 나라 돈으로 영화도 보다니 기분이 묘했다. 영화관 좌석은 텅 비어있었고 마치 수업 수강생들만 전세 낸 것 같았다. 이래서야 영화관 운영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심히 우려스러웠다. 세상은 멈춰있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 아니다 싶으면 바로 피봇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건너 건너 이웃집 영화관 사장님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재작년에는 극장 생존의 몸부림으로 세계적인 공연 실황 등을 영화관에서 중계하는 것도 가본 적이 있는데 현장과의 괴리가 너무 커서 그런 류의 관람은 더 안 하게 되었다.


이번 영화를 보는 목적은 관람 후에 미학적 관점에서 영화를 분석 및 토론하고 수강생들의 다양한 관점을 비교해 보는 것으로,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수업의 재료로 계속해서 사용된다. 약 두 시간가량의 영화에 대해서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는 사람마다 정말로 다양할 수 있다. 물질을 공부한 사람은 영화 장면에서 다양한 소재들의 질감과 구조 등이 눈에 먼저 들어올 것이고, 건축을 전공한 사람은 유독 건축물만 눈에 보일 것이다. 미식가들은 영화 중 보이는 음식에 집중적으로 눈이 꽂히겠지. 나는 어떤 관점으로 봤을까.


지난 고마나루 극제 기간 중에 있었던 '공연 예술 진흥을 위한 창/제작 학술 행사'에서 여러 극작가들의 창작과 제작 개발과 과제, 애로사항, 한계에 대한 상세하고도 가감 없이 솔직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극작가라는 직업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개별적으로는 의미를 찾기 어려운 흩어져 있는 사물, 공간, 인물, 역사의 장면들로부터 연극의 소재를 찾아내고 개발해서 연결된 하나의 스토리와 극으로 창조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참으로 굉장한 일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고 나도 극작가들과 같은 시야와 마인드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찾고 새로움을 발견해서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커다란 동기를 부여받았다. 이는 연극 관람 자체보다도 연극제에서 뜻하지 않게 얻어걸린 가장 큰 수확이었다.


그래서 좀비딸을 관람할 때에도 작가의 입장이 되어 작가의 시선으로 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극 F에 해당하는 나는 내 감정선을 건드리는 장면과 음악이 나올 때마다 눈물샘이 작동하는 것을 제어하기 힘들었다. 이쁜 딸이 있고 영화 중 수아가 마치 내 딸이 좀비가 된듯한 안타까움과 나를 희생해서라도 딸을 살리려는 애절함은 아빠 역할의 이정환의 마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하이라이트 씬에서는 눈물이 샘물 솟아 나오듯이 흘내렸다.


영화 관람이 끝나고 다시 강의실로 가서 설문지를 받아 몇 가지 질문에 대한 의견 작성을 하고 다른 학생분들과 소감 나눔을 하는데 참 다양한 관점들이 있구나 싶었다. 그렇게도 영화를 봤네, 그런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는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는구나. 이야~ 어떻게 그리 맥락을 다 파악했을까 대단하다.


다음날인 어제, 아이들과 다시 좀비딸을 관람하였다. 아이들과 영화를 본 지도 오래되었고, 이 좋은 영화를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고 아이들의 반응을 보고 싶기도 하였다. 영화표는 세종시닷컴에서 영화할인권을 파는 분으로부터 성인 9000원, 청소년 8500원에 구매하였다. 정기로 보면 너무 비싸기도 하다.


역시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니 작가의 시점이 더 잘 보였다. 그리고 처음 볼 때에 놓친 장면들을 좀 더 세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맥락 파악하느라 긴장을 늦추지 못해서 음봉리 자연과 바닷가의 아름다움을 그 자체로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어제는 영화 보는 종종 옆으로 고개를 돌려서 아이들의 표정을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감정이 북받칠 때 어떻게 우는지, 누구는 자세 변화 없이 티 안 나게 울고, 막내딸은 가져온 긴 옷으로 눈물을 아래쪽에서 받쳐 올리며 닦았다. 영화 도입 부분에서 첫 좀비 침투 씬이 나올 때 딸이 시끄럽고 귀가 아프다며 울길래 역시 아빠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소리에 대한 민감도는 평균적인 한국인 대비 나와 내 딸이 높다. 나 시끄러운 거 정말 못 견디는 편.


영화가 끝나고 아이들에게 소감을 물어보니 다들 잘 봤다고 한다. 여운이 깊게 남을 것 같다고 아들이 말하였다. 딸도 말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지만 감정이 크게 움직였음이 분명하였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보게 되어 좋았고 이는 내가 끌어당긴 것이다. 하나의 작은 생각의 씨앗이 그제와 어제 연달아 영화관으로 발길을 향하게 하였다. 두 번 본 영화는 몇 편 있었지만 연이틀 본 영화는 처음이었다.


변화를 원하는 나의 열망으로 인해 계속해서 새로운 일들이 벌어진다. 이번 주부터 디자인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또 다른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날들의 연속이다.


영화 엔딩 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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