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거부할 수 없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명료하게 알기에 아주 오랜만에 저녁 회식에 참석하였다.
더덕구이가 무한리필되는 솥뚜껑삼겹살 식당이다. 내가 합류한 팀은 새로 급조된 신설팀이고 팀장 포함해서 전부 세 명. 나를 제외한 다른 두 명은 타지에서 왔다. 나는 기존 팀에서 떨려나간 외톨이 아웃사이더. 셋 다 같은 대학 출신이고 나이는 한두 살 차이이고 내가 제일 연장자이다. 과제 회의에 참석한 외부 협력기관 사람들에게 과제 PI이자 팀장이 회식 초반에 말하기를 다른 팀에 비해서 우리 팀의 차별성은 팀 평균연령이 탑일 거라는 농담 아닌 농담. 팀 구성도 어설프기 짝이 없다. 애초부터 팀장이 주도적으로 팀을 만든 것이 아니라 탑다운으로 만들어진 그리고 셋의 전문성과 업무범위도 공통점보다는 이질적인 면이 많다.
약 5년 전 내가 참석한 마지막 저녁 회식이 일인당 3만 원 한도일 때였는데 요즘은 5만 원이다. 팀장이 ChatGPT에 물어봐서 나온 식당 세 개 중에서 고른 곳이라고 하는데 먹거리가 아주 맘에 든다. 더덕도 훌륭하고 삼겹살의 질도 좋다. 원래 저녁을 안 먹는 패턴이고 요즘 특히나 체중 감량 중이라 부담이 많이 되지만 그래도 눈앞에 먹거리가 펼쳐지니 어쩔 수 없이 계속 먹게 된다.
팀의 첫 회식이다 보니 사람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팀장은 상당히 남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이다. 말이 많고 술을 좋아하고 회식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랑은 참 안 어울리는 스타일이라 무척 부담스럽다. 같은 대학 출신이 아니라면 언제까지 나를 품고 갈지 모르겠다. 첫 회식임에도 불구하고 시간 지나면 팀이 폭파될 수도 있다는 진담스러운 농담도 던진다. 팀장이 생각해도 이렇게 목적 지향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팀이 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내 전문 분야 일부가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이날 회의에 참석한 외부 기관에서도 내 업무가 도움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적극적으로 잘해주면 된다.
올해부터 술을 끊었지만 회식 자리에는 맥주와 소주가 빠지지 않았다. 나는 운전 핑계로 음료수만 먹었다. 거의 일 분에 한 번 꼴로 다 같이 술잔을 마주치는 분위기가 매우 불편하였다. "그냥 각자 알아서 마시면 되지 뭘 이리도 자주 술잔을 마주칠까. 하... 나 참... 이렇게 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니..? 이런 회식이 그렇게 좋아? 난 너무 싫거든? 내가 가장 연장자이긴 하지만 겉보기 모습은 너네들이 나보다 훨씬 늙어 보여. 나는 과제비로 회식하는 것도 싫고 사람 써봤자 힘들기만 하고 얼마 안 되는 인센티브 받고 스트레스받느니 과제 안 하고 말지. 너 팀장 이렇게 회식 좋아하는 것 보니 그래 넌 과제할 만하다."
고기 먹고 또 시키고 팀장이 고기 자르고 부산하게 채소 뒤집는데 나도 가만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이번에는 내가 가위 잡고 고기 자르고 계속 손을 움직였다. 다 먹은 반찬 그릇도 리필해서 나르고. 볶음밥도 해 먹고 라면도 시키고 푸짐하게 먹었다. 회식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는 내가 좋아하는 지적인 사색과는 무관한 그냥 웃고 떠들고 사람 파악하는 정도.
1차에서 끝내고 가면 좋으련만 다른 참석자들도 가볍게 커피나 마시고 싶어 했으나 팀장이 원해서 2차로 호프집에 갔다. 무슨 호프야... 팀장 너 참 술 좋아하는구나. 타지에서 와서 아직 집을 못 구했기에 회사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는데 기숙사의 장단점이 있다고 하길래 단점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몇 초간 가만히 뜸을 들이더니 기숙사가 매우 조용한 편이고 캔맥주 마시고 빈 캔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남의 눈에 띌까 봐 신경 쓰인다고. 업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가면 티브이를 보고 싶은데 안테나가 없어서 티브이 수신이 잘 안 된다나. 이 사람아 뭔 티브이냐, 전공 공부는 잘하는 것 같은데 경제와 인문학 공부는 안 하니? 1년 후배인 다른 팀원도 역시 타지 출신이고 팀장과 같이 회사 기숙사살이하고 있는데 이 사람도 저녁에 폰으로 인터넷 보다가 잠든다고 한다. 둘 다 책 이야기는 전혀 없다. 듣고 있자니 참 한심하다. 회사가 언제까지 너희를 먹여 살려주니. 정년도 나랑 비슷하게 할 텐데 업무 외적인 개인적 역량 강화는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더 책을 많이 봐야 한다는 것을 못 느끼나 보다. 회사 업무가 언제까지 너희를 먹여 살릴까. 회사 그만두면 지금 하는 일로 먹고살 수 있어? 내가 보긴 아닌 것 같은데? 정년 후 재고용으로 65세까지 남아있을 수야 있겠지만 기존 월급의 반으로 깎이는 재고용 월급으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지. 65세 이후에는 어떻게 할 건데.
오랜만에 가진 회식은 비생산적이었고 지적인 탐구에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되었으며 그냥 먹고 마시고 낄낄대기가 전부였다. 유난히 팀장이 특히 그런 걸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그런 와중에 서로를 파악할 수 있는 효과는 있었다. 외부 참석자 중에 기업대표도 있었는데 오 놀라웠다. 인문학적 지식이 풍부하였다. 국내외의 역사와 시대 흐름과의 연계도 툭툭 가볍게 언급하는데 그 안에 깊이가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도 빗대어서 언급하고. 이 사람 매력 있다. 다행히 내가 이 사람을 도울 수 있으니 다음에 만나게 되면 좀 더 인간적으로 친해지고 싶어졌다.
식습관의 패턴이 깨지면 다시 평소의 리듬으로 돌아오는데 며칠이 걸린다. 어제 회식 다녀와서 집에서 디저트로 과일 과자 초콜릿도 집어먹고 잠시 쉬다가 그대로 잤다. 그냥 피곤하더라. 저녁마다 두 시간 반씩 속보로 걷는 게 요즘 습관인데 그것도 못하고 다음 날인 오늘 점심도 푸짐하게 차려 먹었다. 내일부터 다시 정상 패턴으로.
다음 주에는 과제 회식이 아닌 팀 저녁 회식이 또 있다. 팀만의 첫 회식이라. 난 저녁 회식이 참 싫은데 아직 팀장은 이런 내 생각을 모른다. 언젠가 때가 되면 말하고 내 스타일대로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고기 먹고 술잔 부딪쳐가며 어울리는 게 그렇게 좋은가. 아까 어떤 쇼츠에 보니까 여유돈 현금 10억이 있으면 "싫어요"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 미확정 비트코인 손실만 1억이다. 일단 10억부터 만들고 볼 일이다.
난 조직 생활이 정말 적성에 안 맞고 회식이 끔찍하게 싫다.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돈 한 푼 아끼고 내 역량 강화에 노력해 본다.
오늘 윈터 타이어로 교체하면서 브레이크 캘리퍼 보니 조만간 교체해야겠다. 돈 들어갈 일이 계속 생긴다. 큰 애가 나 없이 운전해서 엄마랑 나들이 간다고 차보험도 업그레이드하고 발 아치가 무너져서 교정 깔창도 맞춰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