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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눈 구경

by Loche


강원도에 수북이 쌓인 눈을 보고 스키를 즐기러 아이들과 정선 하이원 스키장에 다녀왔다. 스키는 지난주를 끝으로 마감하려고 했는데 따님이 하이원에도 꼭 가고 싶다고 해서 그 소망을 들어주었다. 운전면허 취득 후 차를 몰아보고 싶어 하는 아들과 함께 가니 장거리 나들이도 부담스럽지 않다.


사전에 아침 식사를 하는 식당을 알아보니 의외로 많은 곳이 있었다. 아마도 새벽까지 도박하고 오거나 도박장에 종사하며 퇴근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리라. 리뷰 좋고 저렴한 백반집에서 든든하게 아침을 먹었다.

우리 뒤편의 테이블에서는 남자 두 명이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대화를 하는데 같은 도시 지인들과의 어울림이 주된 소재였다. 낯선 풍경이었고 식당을 나와서 아이들에게 말하기를 "여기는 인생 막장 도시야, 이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거의 다 도박하다 정착한 사람들이야. 식당에서 사람들 대화하는 것 들어보면 어떻게 사는 사람들인지 짐작이 되지." 큰 애가 어디서 들은 섬뜩한 모텔 이야기와 전당포 시계 이야기를 꺼낸다. 아무래도 용평이나 다른 스키장에 비해서 도시의 느낌이 다르다.


이날은 전 주의 포근했던 날씨와 다르게 낮에도 추울 것 같고 오후에도 설질이 괜찮을 것으로 예상이 되어 5시간권을 구매해서 충분히 타기로 하였다. 스키장에 도착해서 리프트권을 사려고 매표소를 찾으려 두리번거리는데 어떤 이가 다가오더니 할인권을 보여주면서 정상가보다 45% 할인이 된다고 말한다. 긴가민가해서 주저하였더니 발권기로 같이 가서 직접 발권을 해주며 계좌이체해 주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구매하였다. 싸고 좋네. 하지만 다른 스키장에서는 못 보던 경우였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경비가 대폭 줄어드니 만족이다.


"하이원 기억 안 나니? 예전에 너희들 다 여기 와봤어. 특히 막내는 오빠가 스키에다 줄 걸어서 뒤에서 잡고 내려왔었어 네가 만 5세 때." "5살 때? 아빠~ 7년 전 일을 어떻게 기억해?"라고 딸이 말한다. 하지만 나중에 오빠가 줄 잡고 내려왔던 완만하고 사람 없는 슬로프에 오니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기억을 못 하는 것이지 기억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임종 때 살아생전의 모든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은 기억 저장소에 다 남아 있어서일 테니까.


눈 덮인 정선 하이원의 산맥들을 보며 3월에 이런 눈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아이들과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사진을 찍으니 아이들도 또한 사진 찍으며 좋아한다.

"아빠~ 아쉽다 더 타고 싶어"라고 딸이 말한다. "아쉬움이 있어야 다음에 또 오고 싶어 지지."라고 내가 말했다.

"멋있지?"

"응~~"

눈 덮인 나무도 이쁘다. 하얀 눈은 마음도 하얗게 만들어준다. 사진 찍는 아이들의 표정도 환한 미소로 가득하다.

아이들이 모두 스키를 좋아해서 좋다. 도시에만 있다가 스키장에 오면 탁 트인 풍경에서 하얗게 눈 위로 미끄러지는 즐거움에 아이들의 만족도가 높다. 스키는 나와 아이들이 같이 할 수 있는 좋은 취미이자 연결고리이다.


한편 이날은 큰 애의 초보운전 둘째 날. 나는 수시로 잔소리를 했고 위급 상황에서는 목소리가 커졌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아들이 돌아오는 길에 한숨을 쉬더니 "아빠가 좀 덜 공격적으로 말해주면 좋겠어 스트레스받아."라고 감정 하나도 안 실어서 차분하게 말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일단, 그렇게 아빠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조언해 준 아들의 어른스러움에 아들이 많이 컸구나 생각이 들었고 내 말투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중간중간에 내가 알려준 대로 적응해 가는 운전에 대해서 칭찬을 해줬더니 아이도 좋아한다. 저녁에 집에 와서 아들에게 톡으로 "다음에는 아빠가 더 부드럽게 말해보도록 할게, 고마워."라고 보냈고 아들도 "내가 운전하면서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랬던 것 같아"라고 답신을 보냈다. 글에 하트 마크를 해줬다.


아이들을 대하면서 나를 보게 되고 나의 부족한 면을 바꿔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나의 선생이기도 하다. 관계는 수평적이어야 하고 그래야 오래간다.


드물게 봄 설경을 즐긴 행복한 가족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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