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청춘. 사랑하는 내 청춘. 잘 가, 내 청춘.
1999년, 나와 내 친구는 보통 이십 대 초반 시절에 겪는 사춘기 이후의 성장통, 슬럼프 속에 살고 있었다. 주변 인간관계는 거의 단절하고 학교는 기약 없는 휴학 상태에 아침에 자고 해 질 때쯤 일어나 서로 출근하듯이 둔촌동역 앞에서 만나 얼마 없는 돈으로 늘 편의점에서 팩소주를 사다 빨대로 나눠먹고 시내버스 탈 돈으로 담배를 사고는 그냥 긴 거리를 마냥 걸어 다니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둘 다 입대를 앞두고 (친구는 1달 후 입대, 나는 3달 후 입대.) 이제 이 술과 담배에 쩔은 이 폐인 같은 생활은 청산하고 정신 좀 차리게 전국을 방랑하듯 머리 좀 식히고 오자고 했다. 계획은 거창했지만 현실적으로 돈이 없어 전국 방랑은 못하고 산과 바다가 다 있는 속초로 가게 되었다.
출발하기 전 이 시절을 남기고 싶어 다른 친구에게 8mm 캠코더를 빌렸다. 그렇게 이 영상이 시작되었다.
그땐 이 친구도 나도 정말 힘들었던 인생 나락의 시기였다. 복합적으로 얽힌 좌절감 때문에 모든 걸 다 그만 내려놓고 싶던 시절. (지금 와서 보면 너무나도 어린 시절에, 어린 생각들이지만.) 그런데 이 영상 안에서만은 너무 행복해 보여서 편집을 하면서도 놀랐다. 이렇게 내가 미소를 보이던 시절이 있었나. 이렇게 오버액션을 하던 시절이 있었나. 하는 생각들.
2시간 20여 분에 걸친 영상 안에는 주변 친구들에게 영상 편지처럼 남긴 메세지들도 있고(물론 영영 전해지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당시의 99년 속초 엑스포, 설악산 풍경, 속초 바다 등과 사용했던 여러 기기들도 함께 담겨 있다. 011, 017 핸드폰, 삐삐를 비롯해 시대를 너무나도 앞서간 삼성의 ‘워치폰(시계폰)’ 장면까지. 그리고 버스 막차가 끊겨 인생 최초로 히치하이킹을 하던 순간도.
그런 장면들을 5분 정도에 축약해서 담았다. ‘푸른봄’을 처음 만들 때 가제가 ‘청춘송’이었는데 이번 앨범을 작업하며 여러 곡들 뮤직비디오를 기획할 때 딱 이 영상이 떠올랐다. 나의 청춘이 8mm 캠코더에 고스란히 담아있는 이 영상. 비슷한 시기를 추억하는 또는 자신의 청춘을 추억하는 분들에게 간접 체험이 되어 자신의 추억에 투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 시절, 고통을 함께 나누고, 함께 술과 담배에 쩔고, 함께 여행을 가고, 함께 고민을 나눴던 (그 뒤에도 20대 내내 수많은 사연이 있는) 이 친구는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나주에 본사를 둔 근사한 회사를 다니며 잘 지내고 있다. 오래전에 뮤비 출연 허락을 받고, 편집을 마치고 어제 이 영상을 보여줬더니 그때 우리가 아무렇게나 찍었던 영상이 이렇게도 쓰이는구나 하며 고맙다며 흐뭇해했다. 이렇게 22년이 지난 후에야.
마음속 깊은 고민과 고통을 함께 나눴던 시절이 있기에 그 친구와 예전처럼 자주 보진 못해도 이따금씩 한 번 보면 바로 어제 보고 오늘 본 것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 시절을 늘 어제 일처럼 추억한다. 그래도 그때 망나니처럼 살았지만 그때가 있기에 지금 이렇게 우리의 모습이 있는 거라면서. 삶에서 어느 정도의 부침은 훗날의 조금은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생각도 들고.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 그 바닥을 손으로 한 번 짚어본 후에야 비로소 다시 바닥을 박차고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청춘은 이제 우리 삶에선 멀어졌다. 멀어지는 청춘이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구나. 라는 마음으로 이 곡을 썼다. 이제 청춘은 생동하는 후배들의 몫이다. 바통 터치. 청춘을 추억하는, 추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작은 기억 불쏘시개가 되었으면, 또 청춘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올 작별의 시간을 잘 대비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고 싶었다. 어떻게 그 마음이 잘 전해질는지 모르겠지만.
안녕, 내 청춘. 사랑하는 내 청춘. 잘 가, 내 청춘. 우리들의 아름다웠던 청춘, 그 푸르른 봄날을 그리며.
ps. 몇 년 후 나는 담배를 끊었다.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라 지금도 생각한다.
2021.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