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교습소 하나를 열어 학생들에게 공부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2002년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과 함께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어느덧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시작은 분명 가벼운 마음이었다. 아르바이트하고 있다는 정도의 마음가짐이었고 오래 하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 길로 가는 여정에 잠깐 신세지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평생의 직업이 되고 말았다.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결정할 때 주변 인생 선배들에게 들었던 이런저런 조언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수긍하기 어려웠던 내용이 하나 있었는데, 직장이라는 곳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다시 발을 빼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니 첫 직장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일을 해보고 자신과 맞지 않거나 생각했던 일과 다르다고 판단하면 그냥 그만두면 되지 왜 발을 빼기가 힘들다는 걸까. 내가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봐야겠다고 다짐했더랬다. 그 치기 어린 열정과 순수에 웃음이 난다. 지금의 나를 보면 증명은 고사하고 그들의 조언을 틀림없는 예언으로 박제해 놓은 모양새가 되어버렸으니.
자신이 원했던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꿈꾸었던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생이라는 것이 모두 내가 그린 조각들로만 짜 맞추어 완성하는 그림은 아닌 것 같다. 커다란 해바라기를 그리려고 노란 꽃잎 하나하나를 열심히 색칠했는데 한 걸음 물러서서 보니 해바라기는 어딜 가고 노란 국화꽃 무더기가 도화지에 가득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인생인가 싶기도 하다. 원했던 일은 아니지만 내게 주어진 일에는 또 그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긴 시간 동안 하고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내 몫의 일인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시작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었다면 이토록 오랫동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일이었지만 참 운 좋게도 나의 성향과 관심사에 잘 맞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좋아한다. 스스로가 아직 덜 성숙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좋다. 낑낑대며 문제 풀다가 어느 순간 ’아~!‘ 하는 감탄사를 터트리는 순간이 좋다. 공부가 조금 덜 싫어졌다는 말이 참 좋다. 이 많은 좋은 것들이 있기에 지금까지 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재미나게도 시대가 변해서 하던 일에서 발을 빼지 않고도 얼마든지 다른 일들을 시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여러 가지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힘든 사회인 것도 맞지만 여러 가지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세상인 것도 분명하다. 미련이 남아있는 일은 해봐야 끝이 난다.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다시 해바라기를 그리기 시작했으니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그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20년 만에 증명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