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큰 행운 한 번쯤 기대하지 않는 사람 있을까. 꼭 행운이 올 거라고 장담하지는 않더라도 은근한 기대를 품어 보는 정도는 세금 내는 일도 아닌데 인색할 필요가 없다. 특히 요즘처럼 주식에 대한, 부동산에 대한 뉴스가 많은 때는 그저 기대 정도로 끝내지 않고 인생 역전을 꾀할 한방을 찾기 위해 조금 더 안테나를 세우게 된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면 경제 이슈가 꼭 등장한다. 어디 집값이 얼마큼 올랐다더라부터 시작해서 어느 회사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들이 돈에 집중되는 일이 잦다. 먹고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어두운 상황이니 너무나 당연한 분위기이겠지만 그쪽으로 너무 쏠림이 있다고 느낀 어느 순간부터 괜히 소심하게 어깃장이 놓고 싶어지곤 한다.
행운은 꼭 돈의 형태로 찾아와야 하는 것일까. 바쁜 출근길, 횡단보도에 다다르자마자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뀔 때, 식은땀이 흐르는 아찔한 순간에 엘리베이터가 1층에 머물러 있을 때 로또 맞을 행운의 일부를 가져다 썼다고 생각하곤 한다. 참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나 이사한 집의 이웃들이 유난하지 않을 때에도 로또 행운의 일부를 쓴 거라고 셈한다. 그리고 4남매 우애가 좋아서 모여 식사하고 이야기 나눌 때 행복한 것,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서로 안부 묻고 이야기 나누는 좋은 친구들이 곁에 있는 것도 모두 로또 부럽지 않은 행운이라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손해 보고 놓친 것은 금세 알아차리는데 소소하게 우리 옆에서 우리 삶을 거들어주는 행운들을 알아차리는 것에는 둔감하다. 분명 10개의 행운이 오늘 나를 찾아왔음에도 하나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아.. 좀 억울하지 않을까. 이런 시간이 오래도록 쌓인다면 마치 로또 당첨자가 당첨 사실을 몰라 당첨금을 찾아가지 못한 것과 뭐가 다른가.
사람들은 모두 같은 양의 운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눈에 잘 띄는 것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고, 잘 보이지 않는 운들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다. 잘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가지고 태어났고 그것을 알아서 잘 챙겨 먹을 것인지 아니면 더 큰 행운 가져오라며 발로 걷어차 버릴지는 순전히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나는 눈에 띄는 큰 행운은 가지고 태어나지는 못한 듯하다. 아마도 인생 전반에 골고루 흩뿌려져 있는 모래알같이 자잘한 행운들이 내 몫인 것 같다. 그래서 눈 크게 뜨고 귀 쫑긋 세우고 내 행운들을 잘 발견해보려 한다.
지난번 엄마 생신 때 잡채를 만들려고 장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이것저것 재료들을 바구니에 담고 마지막으로 시금치를 사려고 야채 코너를 둘러보는데 아무리 찾아도 시금치가 보이지 않았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까이 계신 직원분에게 시금치가 어디 있느냐고 여쭈어 보니 다 팔렸다는 안타까운 대답이 돌아왔다. 요리 초보인 나는 시금치를 대신할 수 있는 재료가 무엇인지 잘 떠오르지가 않아 망연자실 돌아서는데 갑자기 어딘가에서 남자 직원분이 시금치 딱 한 단이 남아있다며 가져다주시는 것이 아닌가. 와우! 이런 행운이. 모래알 하나 발견.
물론 모래알같이 작은 행운으로는 집을 살 수 없고 태산 같이 모아도 노후 자금을 마련하진 못한다. 부지런히 투자하고 현명하게 재테크를 해야 그나마 불안하지 않을 정도로 살 수 있을까 말까 한데 시금치 어쩌고 저쩌고가 웬 말이냐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투자하고 재테크하면서 시금치에 행복한 마음 가지는 것까지 함께 해서 나쁠 거 없지 않은가. 돈 드는 것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