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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May 06. 2021

너무 사랑해서 위험해

세상모든 것들에 대한 수다 - 커피 편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 그 많은 말들이 두서도 없고 핵심도 없이 그저 단어만 나열되고 있는 곤란에 처하고 보니 오히려 좋아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쓰기가 더 어렵다고 느낀다. 게다가 잘 쓰고 싶은 욕심까지 더해졌다. 그럴수록 담백해야 한다고, 다음에 하나 더 쓰면 되니 욕심 그만 부리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좋아하는 것의 무엇에 대해 쓸 거냐고 냉정하게 자문한다.      


좋아하는 것을 두고 글을 쓸 때 왜 좋은가를 쓰는 것은 차라리 낫다. 좋아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싫다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것을 아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두 가지 감정을 명확히 가지고 있고 이 문제에 몰두해있다. 현재의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방향으로 글이 흐를 수 있도록 물꼬를 텄으니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전체적인 흐름을 가늠해 보면서 첫 문장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다.라고 쓰고 나니, ‘아닌가..집착하는 게 있었던가..’ 라는 생각이 또 방해를 한다. 역시나 순조롭지 않다. 거짓을 말하기가 싫으니 자체 심의 과정을 거친다. 어떤 대상을 향한 집착을 부릴 만큼 부지런하지도 못하고 기억력이 좋지도 못하니 아마 맞을 거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첫 문장이. 그리고 집착하는 성격이 아님에도 나를 집착하게 만드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커피가 없는 하루를 상상해보았다. 단언컨대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눈을 감는 순간까지 한순간도 빈틈없이 '아.. 커피 마시고 싶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틀림없이. 어떤 뚜렷한 취향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아주 지독한 습관이 되어 버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하루의 삶을 연극으로 친다면 막과 막 사이의 암전의 순간에 커피가 있어야 한다. 연극에서 1막이 끝나면 불이 꺼지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2막을 위한 준비가 진행된다. 일상에서 이 암전의 타이밍, 즉 시간과 공간의 경계에서 옮겨짐의 의식을 치를 때 커피를 마신다. 책 읽을 거니까 커피 한 잔, 일 시작할 거니까 커피 한 잔 이런 식이다. 이 사이사이에 마시는 커피가 다음 일과를 소화하는데 필요한 카페인을 충전해주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어질러진 마음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바로 이 점이 커피 없는 생활을 하루도 상상할 수 없게 만든 요망한 원인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글을 좋아한다. 산속에 홀로 지내시면서 정성을 다해 키우던 난초가 있었는데 비가 오는 어느 날 난초를 뜰에 내어놓고 외출을 하셨단다. 그런데 비가 그치고 해가 나자 집에 두고 온 난초가 걱정이 되어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가 난초를 보살피셨다. 바로 그 순간 자신이 난초에 집착하고 있음을 깨달으시고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당한 이에게 난초 화분을 보내주었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버릴 줄 아는 것이 진정한 무소유라고 하셨다.      


자유로워지고 싶다. 생각나면 마시고, 때때로는 전혀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완전히 잊어버리기도 하는 딱 그 만큼만 좋아하고 싶다. 커피 향이 너무나 좋고 그것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때는 두 번 없을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즐길 것이다. 하지만 오늘치의 커피를 챙겨야 한다는 강박이나 커피를 마셔야만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습관으로부터는 놓여나고 싶다. 놓을 수밖에 없어서 놓게 되면 슬프지 않겠는가. 나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을 때 놓아보고 싶다. 단순한 커피 한잔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나의 삶을 채우는 습관에 대한 집착이라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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