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일을 사랑하고 있나요?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수다 - 일
한창 소개팅을 했던 시기가 있었다. 소개팅만큼 작위적인 만남이 또 있을까.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과 메시지 몇 번으로 약속을 잡고 혹여나 인연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곱게 단장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드문드문 질문과 대답을 이어가는데 마땅한 질문을 찾지 못해서 대화가 뚝 끊어지기라도 하면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정적이 흐를 때가 있다. 그러니 대화 거리를 잘 골라야 했다. 다양한 이야기가 많이 나올 수 있고 비교적 긴 대화가 가능한, 그리고 서로에 대해 몰라도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화제로 가장 적당한 것이 서로의 ’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일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흥미를 가졌던 것은 ’그래서, 당신의 일을 좋아하는가?‘ 였다.
질문을 잘못 이해하고 자신의 직업의 장점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정작 자신의 일이 참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고 한두 사람 정도에게서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만큼 나의 질문에 머뭇거리지 않고 ’YES’ 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낯선 사람이 아닌, 주변 지인들을 살펴보아도 자기 일을 좋아하는 이는 한쪽 손가락으로 꼽아도 손가락이 남을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맞다. 일은 그저 일일 뿐이다. 일을 꼭 사랑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내게 일은 참 중요하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돈을 일을 해서 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컨대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돈 역시 나의 노동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어릴 적 봤던 사주에 평생 일할 팔자라고 했었는데 이만큼 살아 보니 꼭 사주를 들먹이지 않아도 인생이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아 평생 일을 해서 벌어먹고살겠구나 정도는 알겠다. 노동하지 않는 인생을 꿈꾸었는데 그건 내 것이 아닌 건가. 아니면 그나마 노동해서라도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다행인 것은 나는 나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천연기념물만큼이나 만나기 힘든 ‘YES’를 가슴속에 품고 사는 사람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서 시작했다거나 처음부터 좋아했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짧은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이었고 생활을 위한 돈벌이가 목적이었다. 관심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함께 해 오면서 사랑하게 된 쪽이다. 당장 지금 뭐가 좋으냐고 하나 꼽아보라 하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참 좋다고 하겠다. 일어나는 시간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진 삶은 나를 아주 여유롭고 관대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출퇴근 시간의 러시아워에 시달리지 않는 20년이라는 시간의 힘은 대단하다.
그렇더라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그 일의 본질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힘들다. 내 경우엔 아이들과 가르치는 일 이 두 가지를 무척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일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의 순수와 그들이 가진 가능성,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개별성과 변화무쌍함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리고 그들의 변화에 내가 0.001%라도 도움을 줄 수 있고 응원을 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이 일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늦잠을 잘 수 있는 것들이나 윗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 같은 요소는 그다음 것들이다.
학생들과 함께 하는 일을 하다 보니 가끔 학생들이 진로 상담을 해올 때가 있다. 학생들의 관심사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아닌, 취직을 잘할 수 있는 학과로 옮겨간 지 오래되었다. 너무나 이해하고 있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찾는 것을 멈추지는 말라며 한바탕 열변을 토하곤 한다. 이미 이름이 붙어 있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강조한다. 책에 나오는 말이지만 책에서 읽을 때는 가슴에 와닿지 않았던 ‘길을 만드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진심 어린 조언도 꼭 덧붙인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니 좋아서 하는 일의 즐거움을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하루 24시간. 8시간은 잠을 자고, 8시간은 일을 하고, 8시간은 자유다. 만약 일이 무의미하다면 나의 인생은 마지막 8시간만 내 것이 되는 셈이다. 잠을 자고 일을 하는 시간은 그저 세 번째의 8시간을 위해 존재할 뿐인 것이 된다. 그러면 내 인생이 조금 아까운 마음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것은 조금 가능하지 않은가. 언젠가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날이 온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조금 더 너그러워져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