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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Jul 01. 2021

사랑이 무엇인가요?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수다 - 사랑

사계절 중 어느 계절이 가장 좋으냐고 물어오면 망설이지 않고 “여름”이다. 여름의 시간 중에서도 6월의 저녁 7시 무렵을 가장 좋아한다. 장마가 오기 전이라 그리 습하지 않고 바람도 아직은 청량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의 공기의 느낌이 참 신비스러울 만큼 나를 행복으로 가득 채운다. 그래서 결국엔 ’아 정말 좋은데’라고 혼잣말을 하게 만든다.


날이 참 좋았던 6월의 어느 저녁에 산책을 나섰다. 바람이 적당히 불었고 해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여름이라 옷차림이 가벼우니 몸도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졌고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던 것도 아니라 홀가분한 산책이었다. ’이렇게 좋으니 여름을 사랑할 수밖에‘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는 ’ 사랑이라... 이만큼 좋아하는 것이 또 무엇이 있었더라 ‘하고 헤아려 보려 했다. 그러다 이내 ’사랑‘이라는 말이 답답하다고 느껴졌고 ’사랑’이 '사랑이라는 낱말'에 갇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렌켈러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블랙‘이라는 인도 영화가 있다. 미셸이라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8살 여자 아이 앞에 사하이라는 선생님이 나타난다. 사하이 선생님은 미셸의 손바닥에 글자를 쓰고 사물을 손으로 만지게 하는 훈련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가르친다. 짐승 같은 울부짖음으로 의사를 표현하던 미셸이 점차 인간다운 품위를 지킬 수 있게 되고 점차 배움에 대한 욕구도 강열해진다. 어느 날 미셸의 손바닥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씌여진다. 사하이 선생님은 포옹을 해주기도 하고 미셸이 좋아하는 물건들을 손에 쥐어주기도 하면서 이 단어의 의미를 전달하려 애쓰지만 미셸은 전혀 짐작할 수 없어 포효한다.     


사랑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설명할 수는 있을까? 지금까지 내게 사랑이라는 것은 대체로 거창한 것들과 연결 지으며 ‘열렬히 좋아하는 것‘으로 풀이되는 단어였다. 가족이나 친구나 연인에게 주로 이 단어를 대응시키며 나를 점검해보곤 했다. ’지금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 이렇게 사랑하는 것이 맞는 걸까?‘ 하고. 그도 그럴 것이 사랑은 이론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보고 들으며 알게 되고 말과 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보는 것, 듣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타인의 사랑에 적지 않게 영향받을 수밖에 없고 나만의 사랑법이 무엇인지 찾아보기 전에 이미 존재하는 사랑 공식들에 익숙해져 버린다.   


뜨겁게 좋아하는 것만 사랑인 건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하는 요즈음이다. 새파랗게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쨍해지는 것, 동네 친구와 밤늦은 시각 강변을 걷는 것, 여섯 살 조카와 철없는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일상적이고 사소한 모든 것들에 사랑이 스며있었다. 사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사랑이 서려있었거늘 관습처럼 익혀버린 ’사랑‘이라는 낱말에 갇혀 진정한 나만의 사랑들을 놓치고 살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라는 낱말을 알지 못했다면 더 많은 사랑을 느끼며 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다. 규정되지 않았다면 아주 작은 기쁨이나 만족까지 모두 우리가 지금 말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르니까.     


사랑의 여러 가지 얼굴들을 이젠 조금 알 것 같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이라기에 사랑은 아주 거창하고 독보적인 가치가 있을 거라는 편견을 걷어내고 나니 그냥 다 사랑인 것처럼 느껴진다. 대단한 사랑의 증명 같은 것도 의미 없어져 버렸다. 나의 사랑도 타인의 나에 대한 사랑도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다. 다만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랑이라는 말 속에 갇혀있다 풀려난 나의 사랑들 만큼이나 홀가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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