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은성 Sep 01. 2021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대로

지하철을 탈 때 발권기에서 마지막으로 티켓을 샀던 게 언제였더라. 대부분의 마지막이 그렇듯이 그 순간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충전식 교통카드의 편리함에 혹해서 지갑 속에 넣고 다녔던 지하철 정기권과 미련 없이 작별을 했다. 그리고 이내 충전마저 귀찮아져서 지금은 신용카드에 교통카드 기능을 추가해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버스나 지하철은 그것 하나로 무사통과할 수 있도록 해놓고 쓰고 있다. 참 편리한 세상, 그중에서도 가장 편리한 나라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그 편리를 위한 기술 변화의 속도에 깜짝깜짝 놀라고 때때로 소외됨이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스무 살, 대학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처음 지하철 발권기를 마주했던 때가 생각난다. 인구 10만이 안 되는 읍에 살다가 처음으로 지하철이라는 것을 타러 갔을 때 모든 게 어리둥절했다. 표를 사는 것도 처음엔 기계를 이용하지 않았고 매표소에서 역무원 아저씨 앞에 뚫린 반달 구멍을 향해 ‘2구간이요 ‘라고 말하고 노란 티켓을 샀다. ‘그때 그 시절’ 같이 흑백텔레비전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마냥 아득한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지하철 표를 사는 일이 일상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 무렵 발권기 앞에서 쩔쩔매는 할머니들을 종종 만났는데 돈을 먼저 넣어야 하는지 행선지부터 선택해야 하는지 몰라서 당황하고 계시는 걸 보고 도와드리곤 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물어도 대답 없는 이 기계가 두려우시겠다 싶으면서 장래의 나는 무엇 앞에서 이렇게 쩔쩔매고 있을까 궁금했다.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하기를 힘들어하시는 노인분들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햄버거점에 갔다가 키오스크 앞에 섰는데 뭐가 뭔지 하나도 몰라 당황스럽고 뒤에 서 있는 어린 손님들 눈치도 보여서 주문도 못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비단 어디 키오스크뿐일까. 요즘처럼 무인화의 진행 속도가 빠른 세상에 사람이 아닌 기계와 문제 해결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 남 얘기 같지 않았다. 나의 멀지 않은 미래의 모습이다. 나이가 들면서 사고하고 판단하는 속도가 느려진다. 운동신경도 둔해지고 눈도 침침해진다. 그 총체적인 손실들이 나의 기를 죽이고 있다. 별것 아닌 것인데 그냥 크게 써 있는 <시작하기>를 누르는 것부터 해보면 되는데 그것조차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40대인 나는 아직은 그럭저럭 따라갈만하다. 배달 어플로 음식을 주문할 수 있고 가격 비교해서 최저가로 인터넷 쇼핑도 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진 키오스크 주문처럼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서 그리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생활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는 관심이 잘 가지 않고 배타적이 된다. 아마 몰라서 그렇지 이미 수많은 것들을 놓치면서 조금씩 뒤로 밀려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세계로부터 점점 멀어지다 어느새 지하철 발권기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시대는 계속 변하고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키오스크 앞에서의 공포보다 더한 좌절을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조금 두렵다.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시도하는 것보다 해오던 것을 하고 익숙한 것을 쓰길 좋아하는 나의 성향이 십 년이 지나면 원망스러워질지도 모르겠다. 무인 계산기가 늘어가는 마트에서 그래도 지금은 ‘저기요’라고 부르면 달려와 주는 직원분이 계시지만 얼마 지나면 ‘저기요’조차 할 수 없는 막막함을 마주할 때가 오겠지. 시대는 뒷걸음질 치는 법이 없으니 두렵다면 내가 쫓아가는 것이 맞겠지만 그래도 어쩐지 지금은 ‘지금까지 잘 쫓아왔으니 됐다, 앞으로의 것들은 좀 더듬거려도 된다, 어쩔 수 없는 것들도 있지 뭐.’라고 해두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출발 하기 좋은 8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