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한가로운 아침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시원한 기지개로 잠을 털어내고 '오늘의 해야 할 일' 따위가 기다리지 않는 홀가분한 하루가 기다리는 침대 밖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위해,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기쁨으로 충만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무심결에 아랫배에 손을 가져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랫배에 아이 주먹만한 단단한 혹이 만져졌을 때, 충만했던 한가로움은 순식간에 달아나고 거부하고 싶은 긴장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한없이 부드러웠던 공기는 순식간에 냉랭해져 버렸고 눈부시게 찬란한 듯 보였던 햇살은 더 이상 빛을 내지 않았다. 새털같이 홀가분했던 마음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갑작스런 피곤과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난 증상일 거라고 억지 위안을 하며 일단 지켜보자는 미련하고 가장 손쉬운 결정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7월 첫 주에 학생들 기말고사가 있었다. '시험 전 일주일'은 학원가에선 의미 있는 시간이다. 학생들은 문제를 더 빨리 풀어낼 수 있게 되고 틀리는 문제도 적어지고 어려운 문제도 곧잘 해결할 수 있게 되어 한 시간에 소화하는 문제 수가 많아진다. 학생들에게 현시점에서 필요한 문제들을 찾고 편집하고 복사하고 분류하는 일부터 채점까지 학원 수업에 더 많은 에너지가 집중적으로 요구된다. 20년 동안 해온 일이라 요령은 늘었지만 신경 쓰이고 몸이 고된 건 여전하다. 시험만 끝나면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리라 위안하며 일주일을 보냈는데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다. 시험 준비가 끝난 바로 그날 교육지원청으로부터 문자를 한 통 받았기 때문이다. 하필 이때. 교습소 정기 점검이 일주일 뒤에 있을 예정이니 점검에 필요한 서류들을 잘 챙겨놓으라는 고지를 받았다. 물론 바꾸어 생각하면 한창 바쁜 지난 주가 아닌 게 다행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은 마음은 그런 다행을 발견해낼 여력이 부족하다.
출석부, 현금출납부, 수강생 대장 등의 서류들을 평소에 꼼꼼하게 정리해두지 못했다. 3년 동안의 서류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일관성이나 정연함과는 담을 쌓고 방치되어 있는 상태였다. 2년에 한 번 꼴로 정기 점검이 실시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번엔 코로나 사태로 인해 그 텀이 좀 길어졌을 것이다.) 필요한 서류들이 무엇인지도 체크했었기에 자료들을 모아는 두고 있었다. 다만 여기저기 아무 데나 흩어놓았고 글자도 엉망에 순서도 뒤죽박죽 되어 있어 점검에 내보이려면 정리와 정돈이 필요했다. 평소에 잘해놓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루 이틀 미루다가 엉망진창이 되고 나서 정리를 하려니 덩치 큰 일이 되어버렸다. 매일 하는 일이 아니기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무엇부터 시작해야 일의 진행이 순조로울지에 대한 감각도 잃었다. 일단 눈앞에 보이는 일부터 시작했고 하다가 다른 일이 먼저라는 걸 알게 되면 다시 일의 순서를 바꿔가면서 다소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일을 해나갔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고 일에 집중할수록 머리도 지끈거리고 몸도 욱신거렸다. 일을 할 사람이 나밖에 없는 1인 교습소인데 누구한테 맡길 수도 없고 꼼짝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으로 챙기고 체크해가며 점검 준비를 했다. 아침저녁으로 일해서 점검일에 맞추어 준비는 마쳤고 점검도 무사히 잘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미루었던 휴식의 꿀맛을 챙겨 먹을 수 있는 날이 되었다.
모든 긴장이 해소되고 신경 써야 하는 일이 하나도 없어진 날들의 해방감이란! 더구나 한번 유예되었던 자유가 아닌가. 미루어진 시간만큼 이자가 붙은 두 배의 홀가분함을 만끽하고 싶었는데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켠 그 짧은 순간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티끌 하나 없이 가벼운 마음이고 싶었다. 그저 미루어 놓았던 책이나 읽고 일곱 살 조카랑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싶었다. 물론 뱃속에 혹을 품고 있어도 책은 읽을 수 있고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맛이 다르다. 온전한 기쁨 속에 나를 빠트릴 수가 없다. 머릿속 한 귀퉁이에 들어앉은 혹은 떠나지 않고 나를 노려보고 있고 병원에 가야 한다는 불편한 마음은 한시도 나를 마냥 즐거운 상태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래서 아픈 건 싫다. 이래서 빨리 병원에 가서 분명한 진단을 받지 않는 어리석은 내가 싫다.
괜찮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싶었다. 2주간의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원인이 있는 결과이고 원인이 해소되었으니 일시적으로 나타난 결과도 곧 해소될 거라는 불안한 위안을 안고 기다려보고자 했다. 얼마 전부터 급격히 잦아진 요의나 생리혈이 많아지면 자궁에 문제가 생긴 거라는 친구의 조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병원에 간다면 비뇨 의학과를 가야 하는지 내과를 가야 하는지 산부인과를 가야 하는지를 가늠해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물을 한 컵 시원하게 들이킨 직후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마치 터지기 직전까지 공기가 빵빵하게 들어간 풍선처럼 배가 부푼 느낌이었고 이러다가 배가 펑하고 터져버리는 건 아닐까 의심스러운 통증이 느껴졌다. 생각이 많아졌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아픈데 혼자 있어도 될까.', '엄마 집으로 가서 혹시나 일어날지도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게 맞지 않을까.', '혼자 있을 때 119에 전화를 하고 나서 문은 열어줄 수 있을까.', '아 괴롭다....' 배를 움켜잡고 누워서 조금 더 심해지면 119에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설핏 잠이 들었다.
흔히들 혼자 있을 때 아프면 서럽다는 말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일부는 동조하면서도 그건 혼자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니라고 반박하곤 했다.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그가 나 대신 아파줄 수 없고 그래서 인간은 고독한 것 아니겠냐고. 서러웠다는 건 아니다. 다만 함께였다면 두려움이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는 있었다. ‘괜찮을 거야.’라는 말 한마디의 온기가 필요했다. 아니, 최소한 119가 찾아왔을 때 문 열어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겠지.
119에 전화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 내 발로 직접 산부인과를 찾았다. 증상을 이야기하니 다짜고짜 초음파 검사를 하자 했고 검사 시작과 동시에 '어머 이게 뭐야'라는 혼자말인 듯 혼자말 아닌 다 들리는 혼자말을 듣게 되었다. 자궁에 지름이 10센티나 되는 큰 혹이 있으니 큰 병원에 가서 MRI를 찍어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아들고 병원문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