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실은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
한 회사를 입사하고부터 퇴사하기까지의 과정에는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
다양한 업종에서 이직을 많이 한 경험했지만, 이제야 한 회사에 5년 이상 씩 있는 고인물들이 왜 그렇게 이직을 두려워하는지도 조금은 알겠다.
이직 준비만 해도 꽤나 오랜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된다. 회사 생활 이후에 이 모든 것들을 준비해야 하고, 이것을 할 때에는 회사 생활에 집중을 못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자소서/CV, 이력서를 영문과 한글로 준비한다. 물론 회사 리스트업도 포함되겠다. 놀라운 점은, 2년 반이라는 재직기간 동안, 이직 준비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어떤 이는 퇴사 뽐뿌 올 때마다 이력서를 업데이트한다고 하는데, 나는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다. 왜일까? 어쩌면 나는 2년이라는 기간 동안에는 온전히 이 회사에 속해 있었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한 눈 팔지 않고 말이다.
다 떠나서 2년 이상 존버 한 나에게 정말 잘했다고 토닥토닥해주고 싶다. 힘든 거 잘 견뎌냈다고, 너 인생에서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더 단단해졌다고, 이제 너는 뭐든 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고. 여기서 배운 가장 큰 레슨은 인내심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가장 오랜 재직기간인 2년 4개월을 이뤄냈기 때문에 그거 자체로 성장이 되었다고.
나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사람은 사회와 부딪혀가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배운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나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게 되는 상황은 딱 두 가지. 회사 생활을 하면서와, 연애를 하면서. 나는 아직까지 두 가지를 썩 잘하지는 않는다. 끝날 때 좋지 않으니까 끝이 나는 거니까. 좋으면 끝이 날 이유가 없잖아.
이직 준비를 한 달 동안 하기로 계획을 세웠고, 그 기간 동안에 많은 헤드헌터에게서 컨택이 왔다. 신기한 것은, 언니의 도움으로 잡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편집해서 올려놓고 나서부터 헤드헌터들에게 러브콜이 온 것이다. 신기할 다름이었다. 이제껏 살면서 이렇게 먼저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온 게 처음이어서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이 내심 좋았다. 그만큼 나의 경력이 생긴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꽤나 유명한 회사들에서도 러브콜이 들어왔다. 그렇게 나는 첫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 시간 조율이 어려워서 반차를 내고 면접 장소로 향했다.
시간 계산을 잘못했다. 약속된 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줄 착각하고 전에 가고 싶었던 샵을 구경하다가 면접 시간이 늦을 위기가 생겼다.
순간 땀이 삐질삐질 나고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가
다행히 택시를 잡았다. 10분 전에 도착을 해서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심장이 쿵쾅 거린다. 거의 2년 반 만에 보는 면접이기도 하고 이제는 신입처럼 귀엽게 봐주지도 않는 경력직 포지션이다. 예전에는 경력만 생기면 다 일사천리겠지 했는데, 막상 경력자가 되니까 그 나름대로 또 긴장이 된다. 커피를 가져다줬는데, 마시면 더 심장이 빨리 뛸까 봐 패스한다.
이윽고 면접이 시작되고, 나는 게임 페이스 온을 했다. 사람은 참 다양한 얼굴이 있는 것 같다. 이런 것 보면 나도 노련해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속으로 나는 전문적이고 프로페셔널한 경력자 기획자 이지수다 라고 되뇌었다. HR과 실무팀에서 면접을 나왔고, 전부 예상되었던 질문들이라서 차분하게 답변을 해나갔다. 처음에는 많이 긴장되었는데, 말하다 보니까 그저 나는 솔직하게 나의 경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니까 면접보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되었다. 한 시간가량의 면접이 끝나고 나와서 나는 속이 시원하게 뻥 뚫렸다. 잘 본 것 같았다.
빨리 베프인 갱이를 만나서 수다를 떨고 싶었다. 수고한 나를 칭찬해주고자 서둘러 가로수길로 향했다.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새들러 하우스 와플이 생각났다. 마침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니 방금 막 와플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꽤나 걸어야 하지만 그래도 찾아갔다. 웬걸 지난번에 1층까지 길게 늘어서 있던 줄이 하나도 없었다. 바로 입장, 내가 일빠였나 보다. 와플도 한가득 나와있었다. 10개 정도와 스프레드 3종을 빠르게 구매 후 나오니까 그제야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이런 게 위너의 기분일까. 기분이 굉장히 좋더라. 그렇게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 예약을 해놔서일까? 창가 자리로 안내해 주더라. 그래서 소진한 에너지를 다시 충전해가며 가방 정리를 하고 멍 때리며 갱이를 기다렸다. 이윽고 갱이가 도착하고, 폭풍처럼 오늘 후기를 털어놓는다. 이상하게도 일상을 공유하면 이렇게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 나서 다다음날에 2차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다. 그런데 당일날 화상면접 요청을 해서 당황스러웠다. 카페에 가서 30분 내로 면접을 마무리했고, 나에게 합격이라는 통보를 바로 알려준다. 얼떨떨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정말 초고속으로 진행되는 느낌도 들고? 그렇게 오퍼 레터까지 받고 나니까 이제는 현 회사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마음이 시원하면서도 복잡 미묘했다. 힘들었지만, 내게 필요한 경력을 선사해준 현 회사. 힘들었던 만큼 생각은 많이 날 거다. 마치 오랜 연인과의 이별을 준비하듯, 나는 천천히 이별을 준비한다. 먼저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언제 이야기할지 타이밍을 본다. 휴가 타이밍이 절묘하게 껴있어서 갔다 와서 이야기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얘기하고 나서는 못 갈 확률도 있기 때문이라는 빅 픽처.
그렇게 입사 후 가장 긴 휴가를 내고 다녀온 다음날 면담 요청을 했다. 먼저 팀장님에게 말씀을 드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내 목소리가 가늘게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1차 면담 후 오후에 대표님이 먼저 면담을 요청했다. 긴장감을 살짝 가지고 이별통보를 시작해본다. 다소 화남과 실망감의 감정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한 대표님. 나도 이별에 굉장히 미숙하다는 것을 안다. 그게 싫어서 회피도 많이 했었고, 어떻게 이별을 이야기하는 건지도 몰랐고, 좋은 이별이란 없는 거니까.
일주일이라는 기간을 이야기하니, 대표님은 적잖이 당황 및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번 달 말까지는 근무를 해달라고 이야기한다.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지만, 아무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 정적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이렇게 짧은 노티 기간을 줘서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 말을 하는데 왜 그렇게 목소리가 떨리는지. 내가 약해 보이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나는 아직도 정말 많이 여리구나 라는걸 느꼈던 시점. 내가 솔직하게 오픈을 하니까 대표님도 점점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이내 풀어지셔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신다고 한다. 그리고는 마지막을 아름답게 끝내려고 하시는 노력을 시작하신다. 좋은 덕담들과 좋은 말들을 해주신다. 그런 것은 내가 배워야 할 점이라고 다시 한번 느낀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의 면담이 종료되고 팀원들에게도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팀원들 보는 게 왜 그렇게 미안한지 모르겠다. 눈을 보면 울어 버릴 거 같아서 눈을 외면해다.
다음날 마음을 가다듬고, 휴게실로 한 명씩 불렀다.
착한 아이들은 웃어 보이며, 나를 편하게 해 준다.
이런 아이들을 팀원들로 가질 수 있어서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퇴사를 고할 때의 감정들은 마치 오래된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냥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사람은 움직이고 변하고 떠나간다.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역시 시간은 무시 못한다.
아무리 싫고 힘들고 징글징글했어도 지나간 세월에 대한 씁쓸함과 기억은 나중에 미화된다. 오랫동안 끌고 갔던 질긴 연애도 나중에는 좋게 기억이 된다.
울컥하는 감정들이 지나갔다.
면담을 하는 내내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더라.
머리가 그냥 새하얗고 그저 헤어짐을 통보할 뿐.
대표님은 끄나풀이라도 잡아보려고 조금이라도 더 잡아두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듯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내 미래와 앞길을 응원해준다. 말이 빈말이라도 위로가 되어줬다. 그렇게 나는 또 다른 곳에서의 성장을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