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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FAC May 18. 2021

드디어 퇴사

선택은 당신의 몫

퇴사 D-2.  

목, 금요일만 지나면 퇴사.

얼마 안 남으니까 굉장히 신이 난다.

그냥 만사가 좋다. 이제 이곳에 내가 더 이상 볼일이 없고, 매일 이 곳에 머물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뭔가 회사 사람들이 짠해 보이는 거은 왜일까?

이 회사가, 내 자리가, 컴퓨터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곳에 대한 기억도 나중에 가서 생각하면 뭔가 웃으면서 생각할 수 있겠지. 


나름 이곳에서 이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어쩌면 회사 생활을 하면서 힘들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겼었다.

그중에 단연코 베스트는 사람들과의 트러블이었는데, 2년 반 있는 존버 하는 동안 불편했던 사람들이 다 나갔다는 것이다. 

몸소 존버 정신은 승리한다는 것을 체감했다.  


나름 이곳에 정을 붙여보기 위해서 이 곳의 위치를 최대한 활용했다.

아마 청담동 근처 맛집과 카페는 다 섭렵한 듯하다.

카멜커피와 리사르커피, 꼼마커피와 덴시티커피가 내 입맛에 가장 잘 맞았다.


또 압구정역에 블루보틀 커피가 있어서 맛볼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뭔가 입지적으로는 나의 어린 시절을 보낸 압구정과 가깝다는 점에서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요즘에 알게 된 나의 특성 중 하나는 조급하지 않을 때 훨씬 여유를 느낀다는 점. 

천천히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갈 때 가장 높은 효율이 나온다는 점이다.


새로운 회사 가기 전에 룩 체인지를 하고 싶은데, 딱히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헤어지면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가듯, 여기서의 기억은 털어버리고 새로운 곳에서의 새 출발을 위한 준비 같은 것. 그 생각만으로도 벌써 설레는데 말이지. 파마를 할까? 커트를 할까? 염색을 할까.

잘 모르겠지만, new change를 할 거다. 사실 옷도 싹 갈아엎고 싶은 심정이지만, 아직 그럴 만큼 주머니 사정이 두둑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건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해야지.


이곳에 2년 반 동안 뭘 했을까 정리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하나를 끝낼 때는 매듭을 잘 짓는 게 중요한 법.

이별이 익숙하지 않은 나이지만, 이제는 익숙해지려고 한다.


이곳에 있으면서 업무적인 것뿐만 아니라 다른 점도 배운건 사실이다. 1년 이상 한 곳에 머무는 것을 상상도 못 한 내가 인내심을 가지고 2년 이상 머물렀고, 싫은 감정들을 참는 방법도 배웠다.

사람 사는 거 별거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


지금껏 퇴사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여러 가지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그런 것들을 관찰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가버렸는데,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었었다.  

가령, 퇴사하기 전 그 사람 행동들이 미묘하게 달라진다는 점. 예를 들면, 급격하게 다이어트를 한다거나, 헤어스타일을 바꾼다거나, 옷 스타일이 바뀌는 것. 뭔가 애티튜드가 갑자기 막 나간다는 느낌을 받거나.

한 사람이 나갈 때마다 회사에 남는 사람들의 감정은 매우 심난해진다.

부럽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 나도 얼른 나가고 싶은 생각이 불끈불끈 솟는다.


오전 반차를 내고 회사를 나와보니, 오늘따라 텅 빈 회사.

팀장님, 대표님, 그리고 많은 직원들이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날씨도 꽤나 우중충하다. 그런데 오히려 그 차분함과 적막함 조용함이 좋았다.


마지막 날인 금요일에는 대표님, 팀장님께서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하신다.

그렇게 어색하면서도 그래도 마무리를 잘 지어 보이는 대표님과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선물로 와인 두병을 받았다. 저녁에는 퇴근 후 팀원들과 송별회를 했다. 술 한 잔을 기울였고, 퇴사 선물을 건네받았다. 그래도 마지막이라 그런지 감정이 이상해졌다. 시원하면서도 뿌듯하면서도 내가 여기서 겪은 모든 것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정말 끝이구나 하면서. 잘 해내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고생했다. 그리고 퇴사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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