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많은 일들로 참 고민이 많았다. 사소한 것이나 주변의 상황에 순간순간 휘청이는 내가 싫었고, 그렇다고 딱히 방법도 없던 나날들. 그러다가 "다채로운 컬러를 통해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이라는 문구에 오랜만에 남의 집을 예약해버렸다. 집과 꽤 거리가 있었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궁금했다. 색깔로 나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혹시 내가 고민하던 것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까 하는 희망도 생겼다.
그렇게 비가 내리던 주말 오전, 나는 오랜만에 남의 집을 찾았다.
조용하고 포근하던 호스트님의 집. 손 소독과 열체크를 한 뒤 안내받은 방으로 들어가니 다양한 색들의 소품들이 반겨주고 있었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느낌이 무척 포근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한켠 벽에 가득한, 참 궁금했던 컬러 바틀.
너무나 예쁜 색감에 홀린 듯 쳐다보다가 이내 눈길을 거뒀다. 호스트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컬러 바틀을 제대로 경험하고 싶었으니까 :)
얼마 뒤 게스트들이 모두 모였다. (코로나로 인해 최대 4인까지 모집이 되기에 조용하고 소박한 분위기에서 시작되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한 명씩 나가 자신이 끌리는 바틀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가만히 장식장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많은 색들이 눈을 혼란하게 만들었지만 하나하나 꼭꼭 씹으며 바라보았다. 끌리는 색.. 끌리는 색... 나의 눈에 들어오는 색.
사실 딱 봤을 때 끌리는 바틀이 있었다. 청명한 하늘색과 푸른 초록색이 어우러져 있던 바틀. 장식장을 보았을 때 바로 눈에 들어왔다. 다른 색이 더 끌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것저것 더 살펴보며 집중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그 바틀이 떠나지 않아 결국 바틀을 집어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모두 하나씩 바틀을 고른 후, 선택한 바틀의 색을 책상에 놓여있던 빈 그림에 채워 넣었다. 직접 색을 칠해보니 내가 선택한 바틀의 색에 대해 더 집중하며 관찰할 수 있었다.
채색이 끝난 뒤, 나는 왜 이 바틀을 선택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이 바틀을 선택한 이유, 여행 같았기 때문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날씨 좋은 날, 너른 들판에 앉아 아무 생각하지 않고 철퍼덕 누워있는 느낌. 바틀을 보자마자 가슴속 답답함이 조금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기에.
다른 분들의 경우에는 본인이 좋아하는 색이 있었는데 더 끌리는 색이 있어 고르셨거나, 어릴 적 좋아하던 색을 오랜만에 가까이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호스트님은 가만히 우리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두 가지 색 중 더 끌리는 한 가지 색깔을 고르라고 하셨다. 나는 초록색을 골랐고, 각자 선택한 색에 맞는 오일을 손에 발라 흡수시킨 후 다른 설명 없이 명상이 시작됐다.
잔잔한 음악소리, 조화롭게 들리는 차임벨, 살짝 연 문으로 작게 들리는 바깥 소음,
그리고 꽤 길게 이어지던 호흡과 힘 빼기, 생각 않기, 내려놓기.
오랜만의 명상이라 잡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했지만, 호스트님의 목소리와 음악 소리에 맞춰 호흡을 하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고른 색을 생각하며 명상을 하다 보니 숲 속에서 명상하는 느낌이 들어 더 편안해졌다.
명상 끝난 뒤 다시 한번 바틀을 선택했다.
이번에 내가 선택한 바틀은 오렌지 빛.
명상을 하며 숲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햇빛이 쬐는 느낌이 들었달까. 그래서 따스한 햇빛 같던 오렌지 빛 바틀이 눈에 들었다.
두 번째 선택한 바틀 또한 빈 그림에 색을 채색한 후, 왜 그 보틀을 선택했는지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엔 각자 선택한 바틀에 대해 호스트님의 설명도 바로 이어졌는데... 정말 놀라웠다. 내가 고른 바틀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가 정확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초록색 - 백조의 숨은 노력
파란색 - 신뢰, 믿음
오렌지 - 햇빛, 나다움, 즐거움
처음 고른 바틀 중에서 내가 더 끌렸던 색은 초록색. 초록색에는 느긋한, 여유로움, 중립적인 중재자, 배려심, 인내심을 뜻하는데, 나의 상황에 빗대면 백조의 노력을 의미한다고 한다. 고요한 강가에서 우아하게 헤엄치는 백조의 모습, 그 뒤에 숨어있는 물 밑의 발버둥. 꼭 지금의 나처럼. 여유롭고 느긋하고 어느 곳에도 휘둘리지 않는 중립적인 중재자처럼 보이지만 인내하고 나보다 다른 이를 배려하고 있는 모습.
그러면서도 같은 바틀의 파란색은 정직하고 성실, 믿음, 책임감을 뜻하기에 그런 나의 모습을 스스로 믿고 좋아하기에, 그로 인해 더 배려하고 노력한다는 것.
그리고 명상 후 선택한 오렌지색은 사교적, 낙천적, 감수성이 예민함, 즐거움을 뜻하는데. 바로 다른 이들에게 인내하고 배려하며 평온하게 보이고자 노력하는 내가, 사실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도 싶고, 내 안의 즐거움과 낙천적인 내 속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것이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의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평소 나는 누군가 나에게 무슨 색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파란색', 또는 '초록색'이라고 이야기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인스타를 다시 보는데 이상했다. 보통 인스타는 본인이 간직하고 싶은 사진을 올리기에 내가 좋아하는 사진들이 모여있는 곳인데, 내 피드를 살펴보니 반이상이 붉은빛, 오렌지빛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푸른색을 좋아하는데, 아니었나?
근데 오늘 알았다.
내가 표면적으로 보이고 싶은 색은 푸른색이었고, 나의 내면이 원하던 색은 붉은색이었다는 것을.
다른 이들을 배려하며 그 모습이 맞다고 살아오던 나, 그게 버거워지고 있던 나의 마음.
사회생활을 하며 많은 이들과 만나고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나의 행동은 다른 이들에게 쏠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은 나다움을 나타내고 싶었다는 것을. 다른 이를 위해서 하던 행동들과 내가 원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오늘 내가 선택한 색으로 알 수 있었다.
색에서조차 이렇게 나의 마음이 나타나는데 나는 왜 그렇게 그것을 모른 척 아니 괜찮은 척했던 걸까.
결국 또 한 번 다짐하게 되는 나를 사랑하자,
오늘을 통해 바쁜 일상 속에서 수 없이 만나는 타인이 아닌 온전한 나와의 만남으로 나에 대해 스스로 알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