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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Nov 23. 2020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목욕탕 집 딸래미의 원룸 집짓기

나에게 집이란, 그냥 '집'이다. 그저 일 끝나면 돌아가는 곳, 내 방이 있고 침대가 있고 컴퓨터가 있고. 아, 가족들이 있는 곳. 더도 덜도 말고 딱 그 정도.


지금 살고 있는 집도 거의 8년째 살고 있지만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탓도 있는 듯하다. 대단지 속 하나의 아파트, 그 안의 한 호수에 가족이 함께 사는 곳. 아무리 나 혼자 사용하는 방이 있다지만 언제든 문이 열려있고 쉽게 누군가가 들어올 수 있기에. 또한 가족이 다섯이나 되기에 집에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누군가 한 사람은 꼭 집에 있다. 언제든지. 아마 다른 가족이 나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기에 나에게 '집'은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집순이고 침대 위에서 노는 것을 즐기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집 밖에서 자는 것을 참 좋아했다. 특히 예쁜 숙소에서 혼자 즐기는 일명 호캉스를! 아무리 여행지에서 관광지를 쉼 없이 돌아다니는 빡센 여행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숙소를 즐기러 갈 때에는 그 숙소에만 있는다. 그 숙소에만 있어도 너무나 행복하니까, 힐링이 되니까, 온전히 놓을 수 있으니까. 그런 곳에 가면 '아, 나도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스치듯 했지만, 현재는 능력도 계획도 없기에 이렇게 좋아하는 공간에서 하루 이틀 즐기는 것 만으로 만족했다.


그러다 '유일 주택'에 가게 되었다.


사실 처음 남의 집 홈페이지에서 이 프로젝트를 보았을 때만 해도 별 관심이 없었다. 나는 건축의 'ㄱ'자도 모르고 집을 지을 계획도 없었으니까. 좋아하는 건축가도 잘 아는 건물도 딱히 없는. 그저 집은 집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건축가와 함께 직접 지은 집이라니.. 전혀 나와 맞지 않는 주제라고 생각해 넘기려던 찰나, 유일 주택의 사진들이 나의 스크롤을 멈춰 세웠다.


내가 힐링하기 위해 찾던 숙소들 비슷한 느낌, 거기에 어우러지던 식물들과 햇살들까지.

'아, 저곳은 그냥 한 번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고민이 되었다. 나는 건축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데. 건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 사이에서 알아듣지도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그전에 호스트님이 건축에 대해 모르는 나를 초대해주시기는 할까? 등등. 한 며칠을 고민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한 번은 저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았고 결국 나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다행히도 건축에 대한 관심보다는 공간과 집,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으셨다는 호스트님의 생각에 따라 운 좋게 선택을 받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유일 주택에 도착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차를 마시며 서로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 언 몸을 녹인 뒤, 바로 유일 주택을 둘러보게 되었다.

유일 주택은 예전부터 공간에 대해 관심이 많던 호스트님이 집을 짓기로 마음먹고 나서 자신이 살고 싶은 공간에 자신의 이야기와 삶을 하나하나 넣어서 건축가와 함께 만든 집이라고 한다. 최근 오픈 하우스 서울에도 소개되었을 정도로 멋진 곳이라기에 기대가 되었다.

공간이 느껴지는 것 만큼 사진에 담기지 않아 아쉬울 정도로 너무나 좋았던 곳

호스트님의 작업실과 단풍나무가 햇살을 머금고 있던 지하 같지 않던 지하부터, 막힌 건물이 없어 하늘이 훤히 보이고 공간도 넓어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맥주 한 잔 하기 좋을 듯한 옥상, 모두 뚫려있어 이어진 듯 느껴지던 복도와 계단, 창이 있어 멍하니 하늘 보기에 좋던 거실, 아늑하고 테라스까지 있어 하루 종일 누워있고 싶던 침실, 조명 수납공간 동선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 쓴 것이 느껴지던 인테리어까지. (심지어 설명을 저렇게 했지만, 공간 분리를 잘해서 그렇지 원룸이다.) 지하부터 옥상까지 둘러보며 연신 "너무 좋다."라는 말만 했다.


정말 너무 좋았다.

그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생각만 하던 꿈같은 집이랄까? 이런 숙소가 있다면 당장 예약하고 매번 쉬러 올 텐데, 라는 생각이 들던 곳이었다.


아,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면 이렇게 ''이 따뜻해질 수 있구나.


생각해보니 나는 집에 대해 투자의 개념, 아니면 그저 먹고 자는 곳으로 여겼던 것 같다. '집'하면 부동산, 전월세에 최근 전셋값 폭등으로 힘들다는 이야기. 나에게는 먼 이야기였고 부모님 '집'에 얹혀 독립할 날을 꿈꾸며 돈을 모으는. 그저 살기 위한 '집'

그런데 이렇게 집을 온전히 나만의 삶의 공간, 에너지를 주는 공간으로 만든 이들도 있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다 어릴 적 보았던 '러브 하우스'가 생각났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또 하나의 장래희망을 남겨주었던 프로그램. 사연 있는 일반인들의 집을 개조하여 정말 예쁘고 그 사람만을 위한 집으로 바꿔주던 감동적인 예능프로였는데, 제한된 공간을 창조적으로 활용해서 누군가만을 위한 집으로 바꾸어 준다는 것이 정말 어린 나이에 마술사처럼 보였었다. 그러면서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집을 만들어야지, 라는 꿈을 꾸었더란다. 어린 나이에도 자신만을 위한 집이 주는 감동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 가족에게 꼭 맞는 집을 허무맹랑하지만 이것저것 도화지에 그리곤 했었는데.. 아마도 그때 TV 속에서 느꼈던 감동을 오늘도 느꼈던 것 같다. 집이 사람에게 주는 행복이 이렇게 크다는 것을. 그러면서 마음속에 나도, 이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피어올랐다.


물론 집을 둘러본 뒤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어려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집을 짓다가 미칠 수도 있다.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라는 호스트님의 말씀에 함께 웃었지만 그것이 이해 갈 만큼 집을 짓는다는 것이 그저 철제를 쌓고 공간을 만들고 콘크리트를 바르는 일이 아님에. 어려움도 많고 쉽지 않은 일이니까. 또한 건축가, 시공사 등 함께하는 이들을 잘 만나고 잘 맞아야 한다것도, 거기에 무시할 수 없는 돈 이야기 까지. 지금 나의 현실과는 많이 동떨어져있는 이야기니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다시금 나도 내 집을 짓겠다는 꿈을 꾸게 된 것은. 나도 이런 나만의 공간에서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집 이야기를 하면서 집을 지은 뒤 생긴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너무나 행복한 미소를 짓던 호스트님이 너무나 부러웠기에.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꿈을 꾸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내가 살고 싶은 집, 공간에 대해 생각하고 하나하나 실현해나가고 싶다. 그리고 지금 내가 앉아있는 방부터도, 그저 쓰던 것이기에 엄마가 내준 것이어서 바꾸기 귀찮아서 놔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금은 위안받고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조금씩 바꿔볼 생각이다. 작은 장식품, 새로운 이불보, 은은한 조명만으로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 공간이니까.


이 사진은 남의 집에서 가져왔다.. 신나게 발 담그고 있다가 예쁘게 찍은 목욕탕 사진이 없어서...

+ 오늘도 bonus,

서로 너무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 하이라이트라며 호스트님께서 지하의 비밀 공간으로 안내해 주셨는데, 그곳에는 밖과 연결된 작은 목욕탕이 있었다. 예전에 목욕탕 집 딸래미로 살았기에 그 이야기도 공간에 넣고 싶어 만든 곳이라고 소개하셨다. 함께 마주 보며 앉아 따뜻한 물속에 발을 넣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시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물과 차가운 바람이 꼭 겨울, 일본 료칸에서 온천하던 기억이 떠올라 너무나 행복했다.

최근 거실 여행자로서 다양한 남의 집을 방문하고 있는데 정말 남의 '집'에 가서 여행하듯 힐링을 하고 와서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건축의 'ㄱ'도 몰랐지만 오히려 새로운 분야에 관심 갖게 되어 궁금점이 많이 생긴 날이었다.

나도, 언젠가, 꼭, 이런 공간을 만들어야지!








https://vo.la/mijoP

'이 콘텐츠는 남의 집 서포터즈 거실 여행자로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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