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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Feb 04. 2021

혼자 있고 싶다는 건
거짓말이었나 보다.

올레길 20코스, 김녕 해수욕장에서

올레길을 갈 때 동행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혼자, 걸을 생각이었다.

길을 걷다가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도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걸을 수는 있겠지만, '동행'은 굳이 만들지 않을 거라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혼자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 걸었다.


다행인 걸까,

겨울이어서인지 코로나의 여파인지 올레길을 걸으며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유명한 관광지나 해변을 가볍게 산책하는 정도로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만이 있을 뿐, 나와 같이 배낭을 짊어지고 걷는 이는 만날 수 없었다. 관광지를 지나가지 않는 날에는 몇 시간 동안 사람을 만나지 못하기도 했다.


괜찮았다.

혼자이기 위해 떠나온 길이었으니까, 스스로 원한 혼자였으니까.



그렇게 3일째 되던 날.

공항에서부터 시작해 시계방향으로 돌고 있으니 김녕해수욕장을 지나게 되었다.

너븐숭이 4.3 기념관에서 하루를 시작해 김녕해수욕장까지 약 10km, 딱 쉬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김녕해수욕장에서 바람을 피할 곳을 찾았다. 하루 종일 바람이 심해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카페에 들어갈까.. 아니, 아무리 코로나가 조금 나아졌다 해도 카페에 들어가 쉬기에는 걱정이 앞선다. 

카페들을 지나쳐 쉴 곳을 다시 찾았다. 김녕 해수욕장을 지나기 전에는 중간중간 정자도 있더니 막상 쉬려고 마음을 먹으니 쉴 곳이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 해수욕장 화장실조차도 문이 닫혀있었다.


결국 다시 배낭을 메고 걸음을 옮겼다.


힘 빠진 걸음으로 조금 고개를 돌리니 지붕들이 보였다. 정자구나! 저곳이라면 바람을 피해 조금은 쉴 수 있겠다, 하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워져 다가가니 이런, 야영장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텐트를 칠 수 있는 그늘막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맨바닥에 앉아 쉬기에는 날씨가 너무 추웠다.


조금 더 둘러봤다. 조금이라도 바람을 피할만한 곳이 없을까,

그때 멀리 야외 개수대가 보였다. 다가가니 그나마 뻥 뚫려있던 야영장보다는 그나마 바람을 피할만하다.



돌바닥에 배낭을 내려놓고 철퍼덕 앉았다.

약 2시간 반만의 쉼, 따뜻하지도 바람을 막아주지도 못하는 운영하지 않는 개수대 밖에 앉아있으니 왠지 처량해졌다.


이게 뭐 하는 거야. 

하며 조금 숨을 내쉬던 순간, 멀리서 큰 개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개를 무서워하는 편이라 긴장이 되었다.

올레길을 걸으며 길에 다니는 개들을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생각나 더 무서워졌다. 등에서 땀이 났다.


그 개는 나를 향해 다가왔다. 두렵지 않은 척 눈을 부라렸다.


날카롭게 개를 주시하던 나를,

그 아이는 신경 쓰지 않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 가만히, 정말 고개 돌려 가만히 앉았다.

냄새를 맡지도 나를 쳐다보지도 관심을 달라고 짖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있었다. 꼭 위로하듯이.


눈에 힘이 풀렸다. 긴장이 풀렸다. 긴 숨이 내어졌다.

그리고 순간 눈물이 났다. 긴장이 풀린 걸까,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져서일까.

아니, 이 바람막을 곳 없는 이 곳에서 가만히 옆에 앉아있어 주는 네가 그냥 고마워서. 갑자기 너무 고마워져서. 아무 말없던 아무 행동 없던 네 몸짓이 가만히 나를 위로해줘서. 나에게 참 힘이 되었다.


그 순간 알았다. 어쩌면 나는 외로웠는지도 모른다고.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며 먼저 벽을 치고 눈을 부라리고 괜찮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힘들었던 거라고.

혼자이고 싶어 이곳에 왔다고, 누군가를 만나도 혼자일 거라고 다짐하면서도 어쩌면 누군가와 함께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길을 걷다가 누군가가 인사를 건넸다면, 나를 모르는 그들에게 오히려 쉽게 나의 힘듦에 대해 털어놓았을지도 모른다고. 오히려 그렇게 가벼워졌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깨닫게 되었다.

찬 돌바닥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곳에서, 가만히 앉아있어 주는 네 덕분에. 이렇게 네 덕분에 내 마음을 알아버렸다.


한동안 가만히 앉아있던 너는 잠시 뒤 미련 없이 떠났지만, 나는 네 덕분에 마음이 충만해져서 다시 힘이 났다.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왜, 여기에, 혼자서, 이 추위를, 이 고독을,

이라며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갔을지 모를 나를

외로움을, 그리움을, 치졸함을, 자만심을, 인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네 덕분에.


그리고 혼자여도 괜찮지만, 함께여도 괜찮다고.

만약 함께이던 이가 떠나가더라도 함께했던 시간이 있으니, 그 추억이 남아있으니 괜찮다고.

힘들 것을 생각하며 미리 밀어내지 말고 받아들이고 보내주자고. 또다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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