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외에 나가면
꼭 한식을 먹는다.

190414 Day13. 오르니오스 델 까미노-카스트로헤리츠 19.7km

by YEON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음식들

오늘도 걷다가 중간에 있는 바에 들어가 나폴리타나와 수모 데 나랑하(오렌지 주스)를 먹었다! 내가 순례길을 걷다가 쉬는 중간 바에서 가장 많이 먹은 메뉴. 패스츄리 안에 초코가 들어간 나폴리타나와 오렌지 주스면 당 충전 제대로, 비타민 풀 충전으로 걸을 수 있으니까!

이 두 음식은 내가 순례길에서 힘을 내서 걸을 수 있게 해 주었던 음식들이었지만, 사실 순례길 바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 중 고르고 고른 음식이었다.

나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 편이지만 토종 한국인이다. 그렇기에 매일 파스타, 또르띠야, 바게트의 식단에 지쳐있었다. 그중에서 그나마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던 두 음식이 나폴리타나와 오렌지주스였다. 그래서 나는 늘 한식이 너무나 그리웠다.


그래도 오늘은 한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다! 프랑스길 알베르게 중 유일하게 한식을 먹을 수 있는 오리온 알베르게에 묵는 날이기 때문이다! 오리온 알베르게를 가기 위해서 이틀 연속 20km가 안 되는 거리를 걸었으니, 일정을 생각한다면 정말 한식을 위해 내린 큰 결단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기대하고 있었던 것인지 :)

내 사랑, 오리온 알베르게 (알베르게 홍보가 아닙니다...!)

20km가 되지 않는 거리였기에 조금은 이른 시간인 12시 반쯤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이미 많은 한국 분들이 도착해 쉬고 계셨다. 정원이 26명인 작은 알베르게였는데, 그중에 20명이 한국인이었다.ㅋㅋㅋ

진짜 사랑이다 오리온

알베르게 도착 전부터 홍보글을 보면서도 너무나 오랜만에 본 한글과 한식 사진에 감동을 받았었는데, 알베르게에 들어선 순간 정말 감동이 아니라 눈물이 날 뻔했다..! 리셉션 벽을 채우고 있던 각종 한식들. 다양한 라면 종류는 기본이고 3분 카레와 짜장, 햇반, 게다가 소주까지!!!! 정말 천국이었다.

짐을 풀고 씻은 뒤 점심으로는 라면, 후식으로 감자칩에 맥주를 마셨다. 아, 이런 행복이 있을까? 정말 너무나 행복하고 온 몸에 힘이 나는 기분이었다.


한식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한식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외국에서는 더더욱. 기간이 얼마나 지났던 먼 곳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위로해주고, 다른 어떤 것으로는 채울 수 없는 에너지를 주는 상징적인 음식.


예전에 한 달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처음으로 나가는 해외였기에 "해외에 나갔으니 현지식을 먹어야지!"하고 다짐도 했다. 가리는 음식도 없고 특히 양식을 좋아해서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모를 걱정에 컵라면 몇 개 만을 챙겨갔더란다. 현지에서 먹는 음식들은 정말 맛있었고 새로웠다. 근데...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너무 맛있고 좋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 정말 배부르게 먹은 뒤에도 뭔가를 빼먹은 기분? 그럴 때마다 챙겨 온 컵라면을 하나씩 먹었다. 컵라면을 먹고 나면 뭔가를 먹은 기분이었다. 아니, 뭔가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잘츠부르크에서 먹었던 첫 한식, 김치찌개

그러다가 2주 만에 가게 된 잘츠브루크의 한식당. 정말 참고 참다가 간 한식당이었는데 그때 먹었던 김치찌개와 쌀밥의 맛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정말 맛있었다. 아니, 맛있었다는 말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맛이었다. 솔직히 한국이었다면 이 가격에 이런 맛의 김치찌개는(사실 김치찌개보다는 김칫국에 가까운 맛이었다.) 절대 돈 주고 사 먹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잘츠브루크에서 김치찌개를 먹으며 가족들 생각이 많이 났다. 특히 엄마가 해 준 김치찌개를 온 가족이 함께 앉아 먹던 저녁 식사가. 아무 특별할 것도 없던 그때의 저녁식사가 말이다.

이때 먹었던 한식은 정말 나에게 큰 힘이 되었고 이후 남은 여행 기간에도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한식을 먹은 것이 아니라 그리움을 달래주는 약을 먹은 것이구나, 힘을 먹은 거구나. 여행은 즐겁지만 한국이 그리웠구나. 이렇게 가족과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구나.

그렇게 한식의 ''을 경험하고 나서는 나는 이후 해외에 나가서 현지식을 먹겠다는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새로운 도시에 가면 한식당을 찾아가기도 하고 한인마트에 가서 재료를 사서 해 먹기도 했다.

누군가가 그런 나를 보고 "해외까지 왔으면서 한식을 찾아?"라고 이야기해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 인가 봐!"


그런 내가 2주 동안 한식 없이 순례길을 걸었으니... 이쯤이면 보상받을 때가 되었다! 했을 때 만난 오리온 알베르게.. 그러니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순례길을 더 걷지 않고 오리온 알베르게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한식이나 먹을까...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보기도 했다.ㅋㅋㅋㅋ)

눈물의 비빔밥

기다리던 저녁시간. 저녁에는 비빔밥과 된장국이 나왔다! 한국에서나 보던 반가운 비주얼에 너무나 행복했다. 그리고 20명의 한국인들이 고개도 들지 않고 비빔밥을 흡입하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ㅋㅋ


또 '한국식'하니 재미있었던 오리온 알베르게에서의 추억.

아까 소개했다시피 오리온 알베르게에서는 순례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나의 사랑 이슬이도 파는 상황이었는데, 가격이 너무나 비싸서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옆 테이블 아버님께서 당당하게 소주 1병을 사시는 것이 아닌가! 우리 테이블 사람들은 그저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된장국만 마시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에서 한잔씩 따라 드신 후 우리 테이블로 소주를 넘겨주셨다.ㅋㅋㅋㅋ 그 비싼 소주를!!! 결국 오리온 알베르게에서 소주 1병을 12명이 나눠 마시는 재미있는 경험도 했다. 그때 마신 소주의 맛은 정말... 최고였다ㅋㅋㅋ

물집 치료 전문 메디컬 센터와 오리온 미용실 feat. 한국인의 정

또 한국 사람들이 모이니 느낄 수 있었던 한국인의 정. 로그로뇨부터 생긴 물집으로 매일 아침 물집을 치료하고 진통제를 먹고 걸어도 그때뿐. 바라던 굳은 살은 생기지 않고 진통제 효과가 떨어지면 물집에 통증이 심해 숙소에서는 발을 끌로 다니던 나를 보신 한국인 어머님들이 문을 여신 메디컬 센터! 각종 약들과 치료 도구들로 직접 치료를 해 주시고 아낌없이 나에게 주신 약품들까지.. 그리고 머리가 너무 길어져서 골치라는 한 어머님의 이야기에 바로 열린 오리온 미용실. 마당에서 머리를 자르고 있는 우리들을 보고 외국인 친구들이 무슨 일이냐고 깜짝 놀라며 재미있게 구경하기도 했다.

정말 한국인의 정을 듬뿍!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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