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19 Day18. 리얼 까미노 - 사하군 - 레온
푹 자고 일어났음에도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나는 예정대로 택시를 타고 사하군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도 레온에서 일행들과 함께 숙소를 예약해 놓았기에 내일 다시 만나자며 인사하고 떠났다. J도 여전히 아파해서 함께 가면 좋았을 텐데.. 끝까지 걸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 나의 샌들을 빌려주고 헤어지게 되었다.
아침을 먹고 알베르게 주인아저씨께서 불러주신 택시를 타고 사하군으로 향했다. 어제 발을 끌고 기절할 듯이 걸었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다니...
정확히 10분 만에 사하군, 어제 점심 먹을 곳을 고르던 길 앞에 택시가 도착했다. 여러 번 점프를 해 보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기분이었다. 걸었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서 그랬는지, 이곳에서 이렇게 아플지 몰라서 그랬는지, 약한 내가 싫어져서 그랬는지, 정말 속상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속상하다고 아쉽다고 무리하면 나는 산티아고에 내 두 발로 도착하지 못할 테니까. 건강이 최우선이니까.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하니까.
버스를 탈 때까지 시간이 남아 근처 바에 앉아 아침을 먹으며 이후의 일정을 다시 계획하였다.
지금까지 내가 걸었던 경험에 따르면 나는 하루에 20-25km 정도를 걷는 것이 적당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하루에 그 정도 거리로 일정을 다시 정해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점프가 더 필요했지만, 그래도... 나는 산티아고가 목적이니까. 내 두 발로 완주하는 것은 다음에 다시 오면 되니까.
버스 시간이 되고 근처 슈퍼로 간단한 음식들을 사러 갔다. 부활절 주간으로 문을 열지 않는 가게들이 많았는데 레온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 일단 사하군에서 간단하게 먹을거리를 사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사하군의 마트도 문을 열지 않았다. 설상가상 날씨도 너무 추워져 마트 근처 기차역에 들어가 버스 시간이 될 때까지 몸을 녹였다. 기차역에는 나 외에도 순례자들이 참 많았다. '당신들도 나와 같은 상황인 걸까? 어째서 이 곳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산티아고를 점프하지 않고 완주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구나. 어쩌면, 선택받아야 가능한 것이겠구나...
그러던 중 J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금 택시를 타고 레온으로 가고 있다고........ 응?
아침에 일어나 발의 통증이 조금 나아진 J는 다시 걷겠다며 출발한 상황이었는데, 다음 마을에 도착하고 나서는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결국 택시를 타고 레온으로 가고 있다고.. '우리 정말 여기서 뭐 하는 거니? :-( ' 어이없이 웃으며 이따 저녁이나 함께 먹기로 하였다. (오늘 숙소를 갑자기 잡은 것이라 같은 숙소를 예약할 수가 없었다. 부활절 축제로 숙소조차 예약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드디어 버스를 탔다. 옆에 길을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부러우면서 담담했다. 그래, 저렇게 걸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 몸을 먼저 생각해야지. 지금까지처럼 혹사하면 안 돼. 버스 옆자리에 앉은 외국인 친구도 나와 비슷한 처지의 순례자여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레온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마트를 3곳이나 들려 겨우 먹을거리를 사고 대성당 근처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아픈 몸으로 음식을 사기 위해 마트까지 들리다 보니 온 몸에 힘이 없었다. 그저 쉬고 싶었다. 근데...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여기는 부활절 행사가 크게 열리는 '레온'이라는 것.
1주일 전부터, 길에도 부활절로 인해 사람이 참 많아졌더란다. 부활절을 기념하여 단기로 휴가를 내고 순례길을 걷는 유럽인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알베르게 자리를 잡는 것도 힘들어지고, 어제 레온으로 오는 것도 매진으로 고생했는데... 순례자들의 고충과는 달리 레온은 정말 성대하게 '파티' 중이었다. 특히 내가 예약한 숙소로 가려면 많은 인파를 뚫고 가야 했다. 설상가상 퍼레이드를 위해 길까지 막혀있는 상황이었다.
점점 지쳐갔다. 수많은 인파를 뚫고 'sorry.'만을 연발하며 한발 한발. 정말이지 버스 터미널에서부터 대성당까지 1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할 수 있었다. 게다가. 3시 체크인이라던 호스텔은 아직 청소가 되지 않았다며 잠시만 기다리라더니, 5시가 넘어서야 침대에 몸을 뉘일 수 있었다.
바닥난 체력에 사람들을 헤치며 힘을 쓰고, 예상치 못한 체크인 시간으로 도착해서 편히 쉬지도 못하다 보니 정말 체력이 바닥까지 내려갔다. 그래도 힘을 내야 한다며 씻고 겨우겨우 비상식량인 비빔면을 끓였는데. 결국 한 젓가락 먹고 모두 버릴 수밖에 없었다. 감기몸살에 배탈까지 걸린 것이다...
결국 침대에 누워 아픈 배를 부여잡고, 밖의 신나는 축제 소리를 들었다. 나의 상황과는 전혀 다른 흥겨운 소리에 더 서러워졌다.
나의 마음도 모른 채,
다른 것 다 필요 없다. 건강이 최우선이다.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