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30 Day29. 리바디소 - 아르카 오 피노 20.9km
사리아부터는 확실히 예전보다 사람도, 마을도, 바도 많아졌다. 특히 바들이 참 많아졌는데, 아주 특색 있는 바부터 아기자기한 바까지. 다양한 바들이 순례자들을 불러들인다.
일행들과 함께일 때만 해도 바를 많이 들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리아 전까지라고 해야겠다. 사리아 전까지는 얼른 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빨리 걸었다. 20km 정도를 걷는다면 하루에 한 번 정도 바에서 쉬었다. 그때에도 식사보다는 간단한 빵과 주스, 콜라 등을 먹고 다시 걸었다. 최대한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또한 걷다가 쉬게 되면 다리와 발의 통증이 더 심해지고는 했기에 더 쉬지 않았다.
혼자이기에 굳이 일찍 도착할 필요도, 도착해서 딱히 할 일도 없었다. 사리아부터는 하루에 20km를 넘기지 않는 짧은 거리를 계획해서 걸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아도 일찍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매일 하루에 세 번씩 바에 들려서 쉬었던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매일매일 아쉬웠다. 그리고 하루가 갈수록 점점 더 아쉬워졌다. 할 수 있다면 늦추고 싶었다. 하지만 일정이 정해져 있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힘들지 않아도 바가 보이면 들어가 쉬며 하루의 시간이라도 늘려갔다.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 있는 시간을.
이 길을 걸으며 산티아고 순례길에 여러 번 온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 친구들이 '잊지 못해서 산티아고에 다시 왔다.'라고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 힘든 곳에 왜 다시 오는 걸까.
나는 순례길 초반, 아니 중반까지만 해도 이 곳에 왔으니 완주는 하겠지만 절대! 다시는! 산티아고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사람이었다. 너무 힘들었기에. 일행들이 나를 장난 삼아 'no Santiago'라고 불렀을 정도였으니까.ㅋㅋ 그런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이 길이 더 좋아지고, 더 아쉬워졌다. 그리고 다시 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뭐라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기는 참 어렵다. 그렇지만...
이 길들도, 마을들도, 사람들도, 생각들도, 이 곳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누구든 이 길을 걸었던 사람이라면 이 마음을 이해할 거라 생각한다. 산티아고를 너무나 힘들어하던 나조차도 이런 생각을 하니 말이다. 완주 후 "이 길에 다시 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나의 이야기에, 초반에 나와 걷던 친구들은 아주 놀라워했다. 그리고 기뻐했다. "네가 이 길의 묘미를 알게 되었구나!" 하고.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내일이면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다. 내가 걸어온 길의 끝. 후련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아쉬움을 가득 안고 도착한 순례길의 마지막 숙소. 그런데... 응? 예약한 숙소가 있는 마을을 들어가는 순간부터 느낌이 쎄했다. 아니.. 마을 입구에서 마을 끝이 보이는 것 아닌가...? 너무나 작은 마을의 규모에 당황하며 지도를 보며 찾아가니, 새로 지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는 커다란 알베르게가 있었다. 그곳에는 직원이 한 명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아, 네가 LEE구나?"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예약을 했고, 동양인이지만 나의 이름을 어떻게 아는 것이지? 하는 궁금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직원은 말했다. "오늘은 예약자가 너밖에 없어. 너만을 위한 곳이야!" 하며 숙소를 소개하는 것이다......ㅋㅋㅋㅋㅋ
사실 12시 반에 숙소에 도착했기 때문에 이때만 해도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오겠지... 하고 걱정 없었는데, 저녁 8시에 딱 한 명의 순례자가 오고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16명의 방을 두 명이서 아주 여유롭게 쓸 수 있었다.
[더 웃긴 것은, 숙소 복이 없어 늘 한 마을씩 더 걷던 친구에게 '이 숙소에 사람 한 명도 없어!'라고 알려주었는데, 실제로 다음날은 이 알베르게의 예약이 full이었다... 순례길 무엇?]
그래도 덕분에 이 마을의 유일한 레스토랑에서 인생 스테이크도 만나고, 맛있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 더 좋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