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이 남는 길,
​(드디어 산티아고)

190501 Day30. 아르카오피노-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21.3km

by YEON

마지막 날이다.

잠이 오지 않았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설레었던 건지, 긴장이 되었던 건지. 다시 자보려 눈을 감아도 너무 말짱해, 계속 뒤척이다가 결국 일어났다.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길 위에서 앉아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새벽 5시.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어둠.

주섬 주섬 나갈 준비를 하는 나에게, 함께 방을 쓴 순례자가 말을 걸었다. "벌써 나가려고? 너무 빠르지 않아?"

맞아... 무척 빠른 시간인데, 괜히 여기에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이 너무 아쉽네.. 빨리 끝나지 않았으면 하면서도 얼른 도착하고 싶나 봐...라는 많은 말들을 삼키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냥, 오늘 마지막이잖아!"

그렇게 인사를 한 뒤 출발했다, 마지막 발걸음을.

무서웠던 어둠 속의 순례길... (잘못 올린 사진이 아니다, 정말 이랬다.)

어둠 속의 순례길은 나의 예상보다 더 어두웠다. 특히 내가 머물렀던 아르카 오 피노에서부터 다음 마을까지는 숲길이 었는데, 이 숲길은... 가로등이 전혀 없는 어둠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다른 순례자들도 없어, 플래시 불빛만을 의지해 걷던 마지막 날의 시작.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져서 노래는커녕,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긴장하며 걸었다. '하... 해가 뜬 뒤에 출발할 걸..'이라는 후회를 하던 순간, 다음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고 다행히도 그 마을부터는 몇몇 순례자들이 보였다. 조금씩 순례자들이 많아지고 동이 트니 긴장도 풀리고 점점 가슴이 뛰었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마지막 길은, 여느 때의 길과 다르지 않았다. 숲길, 초원, 그리고 마을.

그렇지만 뭔가 달랐다. 늘 보던 풍경들임에도 기분이 이상했다. 이상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주위 사람들의 표정들도 달랐다. 들뜬 표정, 설레는 표정, 아쉬운 표정 등... 여느 때와는 다른 모습들. 마주치는 순례자들끼리는 지금까지 서로의 까미노를 축하해주며, 그렇게 걸어갔다.

다른 어떤 날보다 속도도 빨랐다. 다리가 저절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얼른 가자고, 산티아고가 기다린다는 듯. 전날까지는 몇 분이라도 순례길 위에 있는 시간을 늘리고 싶어서 눈에 보이는 바에 무조건 들어갔는데, 오늘은 아침을 먹은 바 외에는 쉬지 않았다. 예상치 못하게 마지막 날이었던 오늘은, 아쉬움보다는 설렘이 더 컸던 것 같다.


길을 걸으며 사리아에서부터 친해진 순례자들과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묵은 숙소는 달랐지만,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에 모두 일찍 준비하고 나온 듯했다. 특히 포르토마린에서부터 계속 같은 숙소를 쓰게 되어 친해졌던 G님도 만날 수 있었다. G님과 함께 걸을 수도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혼자 걷고 싶었다. 혼자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었다. G님은 사리아부터 걷던 분이셨는데, 함께하는 동안에도 늘 말씀하셨다. 아마 길을 걸으면서 자신이 느끼는 것과 내가 느끼는 것들은 많이 다를 거라고, 아무리 같은 길이지만... 때문에 이런 나의 마음을 G님도 이해해주셔서 혼자 걸을 수 있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산티아고 표지판이 보였다.

30일 동안 보던 화살표와 다른 표지판, 이제 곧 산티아고라는 표지판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걷고 나니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내가 걷는 길들 사이로, 대성당의 철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울컥했다.

저곳이 내가 가는 길의 끝이구나, 내가 30일 동안 배낭을 메고 내 발로 걸어온 이유구나. 100km 표지석을 만났을 때처럼 순례길에서의 모든 일들, 사람들이 떠오르며 울컥했다. 이제 정말 끝이라는 생각에.

눈물을 훔치던 나. 그런 나를 보는 사람들은 수고했다는 듯, 밝게 웃어주었다. 나도 눈물을 닦고 밝게 웃으며 다시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란 화살표가 사라졌을 때. 산티아고 대성당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산티아고를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도와준 동지들 (등산화, 배낭, 스틱)

성당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는 사람들,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들, 그들을 미소로 지켜보는 이들까지. 나도 그들 틈에 껴 그냥 바닥에 앉아버렸다. 등산화도 벗어던지고, 배낭도 내려놓고. 그리고 진정한 '휴식'을 취했다.

이제 끝이 났다. 정말 끝이.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면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속이 후련할 것 같았는데.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보고 있는 곳이 산티아고 대성당인지, 현실감이 없었다. 그저 내일도 등산화를 신고 배낭을 메고, 스틱을 잡고 또 걸어야 할 것 같았다.

끝이라니, 이 곳이 끝이라니. 한참을 멍하니 성당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던 것 같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곳에 왔는가,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이 길로 인해 무엇이 바뀌었는지, 무엇을 얻었는지. 하긴 고작 30일인걸. 내 인생 30년 동안에 잠깐인 30일, 이번 30일로 인해서 내 삶이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찾았던 이 곳,

앞으로 무언가가 크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이 곳에 오기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나를 더 사랑해주고 나는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용기가 생겼다. 예전의 나보다는 조금 더 나은 나로 변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여기서 생각했던 것들, 느꼈던 것들,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조금은 좋은 나로, 내가 원했던 나로 말이다.


아쉬움도 컸다.

점프를 하지 않고 완주했다면, 함께 걸었던 이들과 산티아고에 도착했다면, 어리석게 아프지 않고 나의 몸을 잘 챙겼다면 어땠을까. 내 두 발로 완주하지 못했기에, 스스로의 선택이었지만 점프를 많이 했기에 다른 순례자들보다 아쉬움이 많은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자신의 두 발로 모든 길을 완주한 친구도, 나보다 더 많은 구간을 걸은 친구도, 일정 때문에 짧은 거리만을 걸었던 친구도, 중간에 길을 그만 걸어야 했던 친구도 각자의 아쉬움이 많았다. '일정이 조금 더 길었다면, 아프지 않았다면, 조금만 더 여유로웠다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길, 그래서 또 오고 싶은 길.

그런 길인 것 같다. 이 곳, 산티아고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잊지 못하고 다시 오나보다.


나는 여전히 나를 못마땅해한다. 여전히 나는 다른 사람들을 많이 신경 쓴다.
나는 산티아고를 다녀오기 전과 여전히 똑같다.
물론 이 길을 걸었다고 내가 확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전보다 더 나은 내가 될 것이다.
조금 덜 나를 못마땅해하고, 조금은 쿨해질 수 있고,
조금은 더 나를 사랑해 줄 것이다.

그래서 이 길을 걸으며 내가 했던 생각들, 만났던 사람들, 겪었던 일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고. 모두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것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그곳, 산티아고.

나를 더 사랑할 수 있게 해 주고 행복을 알게 해 준 그곳. 언젠가 다시 그곳에 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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