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ON Oct 23. 2019

그럴싸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가면을 쓰지 말자.

결국 연기는 끝나게 되어 있다.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럴싸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나의 진짜 본모습을 숨기고는 했다.

아니, 본모습이라기보다는 내가 생각했을 때에 괜찮지 않은 나의 모습들. 일반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괜찮지 않을 것 같은 모습들 말이다. 캐릭터를 좋아하는 취향이라거나, 소심한 나의 성격, 기분이 나쁘면 격하게 화를 내는 모습, 대중적인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하면서 공감하는 척한다던가, 어쩌면 나의 소신 있는 의견까지도. 이런 걸 좋아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유치하다고 하지는 않을까, 없어 보이지는 않을까, 이런 의견을 내면 싫어하지 않을까, 미워하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생각들 때문에.


그러고는 대중적인 것들을 좋아하는 척, 관심 있는 척하고는 했다. 다른 이들의 의견에 공감하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뿐만 아니라 친구도 많고 약속도 많은 척, 자신만만하고 온화한 척, 혼자여도 괜찮은 척, 쿨한 척을 하고는 했다. 실상은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고 싶어서.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그렇게 꾸미고 숨기고 연기하며, 나는 사회적인 사람이 되었고 내가 원하던 쿨한 사람 그럴싸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점점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한 나는 없어졌고 꾸며진 나만 남게 되었다. 아무리 주위에 사람들이 많아져도, 인정을 받아도 나는 내가 아니었다. 결국 '진짜' 나는 곪고 멍들어 있었다.

행복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꾸밈은 필요하다. 그게 사회생활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을 무조건 표현하고 내세우는 것에 이 사회는 아직은 거부감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을 표현하면,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틀리다는 것이 되는 사회이니까, 아직은. 아마 그것이 두려워서 나조차도 나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이겠지.


하지만 이제 그럴싸한, 대중적인 사람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정말 내가 생각하는 그런 모습이 그럴싸한 것일까? 그저 사회의 굴레에 갇힌 편견이 아닐까? 그 편견에 나를 가둘 필요가 있을까? 굳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 모습을 숨기면서? 아니, '그럴싸한' 모습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일까? 누구를 위해 그런 모습이 되어야 하는 걸까.


이제 나를 위해서라도 나를 꾸미는 모습은 그만하고 싶다. 남을 위해, 남을 신경 쓰며 연기하는 것보다 나를 위해서. 이제 조금씩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고 내세우고 나를 사랑하고 싶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나니까, 나의 행복이니까.


그리고 혹시나 나의 모습에 실망하고 떠날까 걱정하며 가면으로 지키던 사람들은 결국 언젠가 떠날 것이고, 본모습을 보여줘도 남을 사람은 남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떠나간다 해도 슬퍼하지 말자. 떠나가도 괜찮다. 떠나는 사람은 언젠가 비슷한 이유로 떠났을 테니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아껴주는 사람들을 만나자.

그리고, 내가 나의 모습을 먼저 사랑해주자. 잘하고 있으니.

매거진의 이전글 고민과 후회로 잠 못 드는 나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