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떠 있는 것들의 거리

닿지 않아도 함께 머무는 방식에 대하여

Canon EOS-1Ds Mark II, EF 50mm, f11, 1/100s, ISO 100

이 연못에는

가득 차 있음에도

답답함이 없다.


잎과 잎은 겹쳐 있지만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아주 미세한 간격을 남긴 채

각자의 원을 지킨다.

그 틈으로 물이 흐르고

빛이 머문다.


연꽃은 더 조용하다.

크게 소리 내어 피지 않고

눈에 띄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 몫의 자리에서

천천히 열린다.

누구의 위도, 누구의 아래도 아니다.


가까워진다는 것은

서로를 덮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는 일이라는 걸

이 연못은 말없이 보여준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몰려 있어도

질서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물 아래에서는

분명 복잡할 것이다.

뿌리와 줄기들이

엉켜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면 위는

이렇게 고요하다.

어쩌면 성숙이란

복잡함을 없애는 게 아니라

드러내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마음이 느슨해진다.

모두와 적당히 가까운 채로

나 자신을 지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떠 있는 것들은

서로를 밀지 않아도

충분히 함께할 수 있다.


사진이 나에게 건넨 한 문장


“가까워지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함께 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