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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취중진담 09화

취중진담

by 로그모리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우리에겐 수많은 순간들이 스쳐간다.


때로는 인지하지 못한 채 보내기도,

때로는 순간을 붙잡아 긴 시간 품고자 한다.


불현듯 떠오르기도,

끝내 흩어지기도 한다.



한 때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리라 여겼다.

세세한 부분들까지 CCTV를 돌리듯 떠올렸으니.


동시에, 나는 어릴 적 기억이 전혀 없다.

스스로를 인지하고 기억이 생겨난 건, 꽤나 자란 후다.


떠올리고자 시도해보기도 했고

원인을 찾고자 노력해보기도 했다.


음, 결과적으로는 모르겠다.

자신 있던 기억들 마저도 희미해져감을 느낀다.


상실을 통해, 그럴 수 있음을 알고

알기에 소중해진다.


나에게 순간들은 소중하다.

결국 흩어질 것을 알기에.



물론, 나는 꽤나 많은 순간을 놓친다.

심지어 그 순간들을 증오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지는 건,

나는 잊어도 몸은 기억한다는 것.


신기하다.

내 몸은 간절함도, 나태함도 모두 안다.


어쩌면 나를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나의 행동은 나에게 가장 먼저 보인다.

애써 무시하기도, 붙잡기도 한다.


오늘 하루 날카롭지는 않았는가

멍한 시간이 많았나

뿌듯할만큼 진심이었는가.



직업병 이라는 표현이 있다.

나는 직업병이 꽤나 다양했다.


어떤 때에는 누군가의 의도가 먼저 보였고,

습관들을 보기도 했으며,

의지를 보기도 했다.


시스템 적인 접근을 하기도 하고,

감정 적인 접근을 했으며,

결과에 집착하기도 했다.


현재는 아이들을 많이 대하기에

아이들만 보면 몸이 반응한다.


내 몸의 설계는 그렇다.

시간을 보내는대로 새겨진다.


몸도 생각도 익숙함에 바로 반응한다.

이것이 습관, 혹은 직업병이 아닐까.



나는 때때로 간절하며,

어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길 희망한다.


어느 순간은 영원하길 바라며

동시에 어떤 순간은 사라져버리길 원한다.


나의 바람이 적용되기도,

그 반대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더욱이 사유하고자,

행동하고자 한다.


시간으로 빚어낸 행동을 보며

지금의 나를 바라보고.


마음으로 빚어낸 나의 의도를 보며

다가올 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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