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매한 날씨엔 항상 겉옷을 챙긴다.
"오늘 한강 갈까?"
'좋아!'
나의 쌀쌀함은 견디면 그만이다.
힘주면(?) 해결된다.
하지만, 내 사람은 다르다.
'한강 오니까 너무 좋다.'
(쌀쌀함에 조금 떤다.)
"좀 쌀쌀한 것 같지 않아?"
(겉옷을 건넨다.)
'아냐 괜찮아. 어..? 고마워!'
나는 이 한 마디에 세상을 가졌다.
어찌 보면 배려고,
어찌 보면 노림수라 하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대를 위해 생각했고 준비했다는 사실.
나는 이런 준비를 하면서도,
맞이한 상황에서도 너무도 행복했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마음이
기쁘고, 따스하다는 것을 느꼈으니까.
지금의 나는 어떤가.
누군가를 떠올리며 준비하고, 기뻐하는가.
그대의 안녕을 바라며 대비하고
그대의 웃음을 바라며 생각하는가.
언뜻 지나가는 기쁨의 순간들은 있으나,
마음보다는 루틴에 가까워졌다.
물론, 루틴이 되었다 하여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쁨을 느끼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기분이 다소 씁쓸할 뿐.
무지하기에 애쓰던 순간들이
더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기에 지금은 다르게 받아들이려 한다.
나의 루틴, 쌓인 시간들이 뿌듯해지도록.
추운 날 겉옷을 챙기고,
기상 예보에 우산을 하나 챙겨두고,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쌓여 있고,
사람을 대하는 경험이 남아있다.
내게는 그저 지나간 시간에 불과하겠지만,
그대가 필요함에 언제든 움직일 준비가 되어있다.
나의 뿌듯함과 기쁨은
더 이상 애써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쌓여온 나의 시간과 경험이
필요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 되었다.
기쁨에 익숙해져,
더 이상 기쁨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다른 관점으로
다시 봐야 한다.
처음 접할 때와는 다른, 지금의 내가
자연스레 하는 행동들로 생기는 변화를 보자.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대신,
익숙함과 편안함이 자리 잡는다.
그대를 위해 준비하는 마음은
어느새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었다.
뿌듯함의 기쁨은 관점에 달렸다.
나는 때때로 너무도 익숙한 것들을 다시 본다.
일을 하다가도,
내가 언제부터 무의식 중에 할 수 있었지?
그대를 향한 배려에도,
내가 언제부터 무의식 중에 이런 행동을 하지?
떠올려 본다.
익숙함은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잠시 몸을 웅크려, 다른 곳에 힘을 양보하는 것.
나의 익숙함을 다시 들여다보면
웅크린 감정을 마주할 수 있다.
상대에게 전해지는 행동 중에서
뿌듯함의 기쁨을 찾아보자.
'이게 나야.' 라며 뿌듯해지는 순간.
나도 모르는 새 익숙해져 버린
나의 배려와 노력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기쁨을 잊은 것이 아니다.
바라보려 하지 않았을 뿐.
오늘은, 딱 하나만 찾아보자.
나의 뿌듯한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