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애착인형

by 로그모리

멀어지면 불안해지고

한 순간도 떨어지기 싫다.


보이지 않으면 잠들 수 없고

품에 안았을 때 세상을 가진 기분.


나에게 너는

그런 존재였다.


너무도 지쳐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날

잠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온몸이 전율했다.


이제 자야지 라며 인사까지 나눠도

다시 핸드폰을 붙잡고 미소를 띠며 대화했다.


먼저 잠들어 버린 너를 보며

귀엽고 고맙다고 생각했다.


나의 어느 날들은 전부 너였다.



어릴 적 애착인형이 있었는가.

인형이 아니어도 분명 있었으리라.


괜히 마음이 편해지고

잠을 잘 자게 만들어주는 것.


우리는 본능적으로 의지할 곳을 찾는다.

언젠가는 인형이고, 언젠가는 사람이 된다.


때로는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쓰는 행위이기도 하다.


무언가에 꽂혀 애착을 가지는 형태는

지극히도 자연스러운 본능의 반응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는 변화할 수 있다.

관심사가 변하듯 나 역시도 변하기에.



스스로가 악세서리라고 느껴본 적 있는가.

단 한 번, 연애를 하며 느낀 적 있다.


기묘한 느낌을 오래도록 느끼다가

이내 무언가 어긋나 있음을 깨달았다.


사람으로서 대화를 나누기보다

남자친구라는 악세서리로서 존재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야' 가 아닌

'이거 내꺼야' 에 가까운.


아무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표현이 다를 뿐 좋아함은 그대로라 여겼다.


지나고 드는 생각이지만

내 생각보다는 더 냉철했던 듯하다.


미련 없이 이별과 상처를 안겨주었으니.

덕분에 나는 또 다른 위기감지 센서가 생겼다.


이제는 고맙다고 생각한다.

이후로는 그런 상황에서 도망치고 있으니까.



쓸모 있는 인간.

이토록 단순하고 격렬한 표현이 있을까.


살아오는 동안 어쩌면 내내,

스스로의 쓸모를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쓸모가 다 하면 버려질 것이라는

어딘가 뒤틀린 생각에 갇혀있었으니.


잘 못 된 것임을 알아도

나의 쓸모를 위해 해내야만 했다.


그대를 향한 합리화는

어쩜 그리도 자연스럽고 끝도 없는지.


스스로에게 생기는 상처는 보이지도 않는다.

나의 역할을 다해, 그대만 행복하면 그만이니까.



나의 어느 날들은 전부 너였고,

너의 어느 날들에도 내가 깃들어 있었다.


애정표현을 원하고

귀여운 질투를 전할 때면,


미치도록 좋아 펄쩍 뛰었다.

사람이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띠며

귀엽다고 좋아한다고 말하는 나를 보며


놀리지 말라고 말했다.

그 말이 어찌나 좋은지 계속하고 싶어졌다.


이 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오래도록 이어질 것이라 믿었다.


사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웃음이 슬픔으로 변하기까지는.



사람은 새로운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동시에 익숙해진 것들은 대개 잘 보지 않는다.


물건도, 취미도, 사람도.

그때에 관심이 생길 뿐이다.


영원히 좋아하는 건 없다.

그만큼 노력하기에 이어지고 있을 뿐.


어린 날의 우리는

급격히 관심사가 변했다.


그럼에도 서로를 마주할 수 있었고

동시에 관심이 생겼다는 건 기적이었다.


각자의 최선을 다 하지만

조금씩 어긋나는 모습을 서로 느낀다.


마치 꼭 끼고 다니던 애착인형을

방에 두고 나가는 느낌이랄까.


분명 좋아하지만

전만큼은 아닐 뿐인.


이해는 하지만

막상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그렇게 서로 날카로워진다.

비뚤어진 형태로 서로를 할퀸다.



서글픈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왜 계속될 수 없을까.


왜 사람의 마음은 이리도 흔들리기 쉽고

변하게 만들어졌을까.


내가 의지하던 너도

네가 의지하던 나도


결국 변해버렸고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슬픔은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다가온다.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음에도

서로의 탓을 해야만 하도록.



애착을 가졌던 물건 하나만 떠올려보자.


나는 포근하고 두꺼운 이불이 그랬다.

무게감 있는 이불이 나를 감싸는 기분.


지금도 변함없이 두꺼운 이불을 선호한다.

한 여름에도 이불은 꼭 두꺼운 것을 덮는다.


때때로 기이하다는 눈초리를 받지만

뭐 어떤가, 내게만 적용하는 일인걸.


온몸을 감싸고 있을 때도 좋지만

더운 날에는 냅다 걷어차기도 한다.


그럼에도 곁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나는 단잠을 청한다.



사실 감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꼭 온전히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곁에 머물고 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


어느 날에는 진한 슬픔으로 다가오던 애착은

어느 날에는 잔잔한 편안함으로 찾아온다.


아마도 내가 애착하는 건

항상 근처에 머물고 있다.


잠시나마 서글픈 감정을 뒤로하고

곁에 머물고 있음에 고마워해 보기를 바란다.


대개 감정은

슬픔과 기쁨, 모두를 안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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