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불협화음.

by 로그모리

'우리 얘기 좀 해.'


"뭔데."


'친구들 앞에서 꼭 그렇게 말해야 했어?'


"나는 말도 못 하는 사람인 거야? 인형이네."


'그 말이 아니잖아. 충분히 따로 할 수도 있었잖아.'


"지금 친구가 중요해? 나는 아니고?"


'됐다. 그만하자.'


...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 순간이 있다.


화로 뒤덮인 사람에게는

오직 하나의 관점만이 남는다.


지금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며

점점 더 흥분하게 된다.


그렇게 대화는 제자리를 돌며

불협화음을 만든다.



다른 언어로 대화하는 듯하다.

언뜻 알아듣는 영어 말고 몽골어, 파키스탄어.


서로의 감정은 느껴지지만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느낌.


이 불협화음의 끝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각자가 안고 가는 서러움과

조용히 쌓이는 앙금의 형태로.


다른 이들과 얘기를 하면

남자가 그렇지, 여자가 그렇지 뿐이다.


조금 더 이해를 할 수는 없을까.

너와 나 둘 사이인데.



지금은 가야 할 방향은 안다.

수많은 감정이 켜켜이 쌓여 나온.


중요한 건, 흥분을 가라앉히는 것.

그리고 내 의견보다 상대 의견을 먼저 듣기.

(여전히, 흥분하여 눈앞이 가려질 때도 있다.)


하지만 감정이란 것이 스위치처럼

휙휙 변하지 않는다.


시작된 감정은 끝을 모르는 채

모든 것을 불태우니까.


그래서 나는 일부러 3초의 침묵을 가진다.

'잠시만. 3초만.'


나의 감정을 누르는 행동이기도 하고,

동시에 상대에게도 잠시 시간을 준다.


사안이 무겁지 않다면 이 자체로도

충분한 효과를 발휘한다.


무겁다면, 침묵 후에 마음을 다시

다잡아가며 대화를 이어간다.



불협화음은 사람 사이에 분명히,

반드시 발생한다.


꽤 오랜 시간 나는 이 시간들이

불필요한 감정소모라 여겼다.


다시 보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화가 나는 지점을 이리도 명확하게

세세하게 짚어서 보여주는 행동이니까.


어느 날부터 나는 불협화음이

조율이 필요한 순간이라 생각했다.


화가 나고 흥분할 수 있다.

아주 자연스럽고, 표출해도 된다.


대신 방향을 잘 제시한다면.

서로의 멸망이 아닌, 발전을 향해.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온

개별적인 존재들이다.


당연히 생각하는 방식도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다.


abc로 말하는 나와

123으로 말하는 너는.


전혀 다른 언어지만,

충분히 맞춰갈 수 있다.


차례로 a-1, b-2, c-3 을 대응하여

서로의 순서를 이해하거나,


서로를 이해하려는 과정 아래

첫 번째, 두 번째 라는 새로운 언어로 탄생한다.



언어를 모르는 해외에 나갔을 때,

언어가 없는 아이들을 대할 때.


우리는 포기하고 도망치지 않는다.

이해하려 집중하고 노력한다.


그대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면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게 맞지 않을까.


불협화음은 아쉬움이 흘러나오는 현상이고

이해하고 나아갈 수 있는 기회다.


화가 난, 서러운, 슬픈.

감정을 잠시 침묵에 담아두고


우리에 초점을 맞춰

함께 발맞춰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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