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에 알바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술 먹을 것 같아."
'그렇구나, 알겠어. 사람들 많이 모여?'
"이번에 알바 같이하는 오빠가 입대한다고 해서
친한 사람들 몇 명 모여서 마시기로 했어. 마셔도 되지?"
...음?
'응, 괜찮아.'
"그럴 줄 알았어. ㅎㅎ 다음 주에 보자!"
오빠..?
회식이 아니고 몇 명만 모여서..?
우리도 술의 덕을 보긴 했지만,
이성과 술은 붙여두면 안 되는 조합이다.
회식도 아니고, 큰 일을 앞두고.
내 마음은,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내가 연락해도 될까.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는 내색을 해도 되는 걸까.
여러 가지 의미로.
속 좁은 나의 어린 날은
수많은 생각 안에 잠기게 만들었다.
별별 생각이 가득 차버려
절대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괜찮아 뿐이었다.
나는 왜 괜찮지 않음에도
괜찮을 수밖에 없었을까.
나의 괜찮음은
버려짐에 대한 불안이었다.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조금 늦은 네가 말했었다.
"늦어서 미안해, 안 추웠어? 괜찮아?"
'응 괜찮아. 보고 싶었어.'
진심으로 괜찮았다.
그 기다림조차 너를 향한 것이니까.
하지만 너의 술자리에 답한
괜찮아 에는 다소 불편함이 섞여있었다.
내 마음과 달리, 괜찮다 말해야 하니까.
이 간극은 대체 무슨 차이인 걸까.
너와 나의 이야기에서
다른 사람이 끼어든 순간.
내가 떠올렸던 이유는
제3자의 난입이었다.
흔히 말하는 사회생활이라는 시간 아래
우리는 투자해야 하는 시간들이 생긴다.
이 시간들이 어찌도 그리 불편했는지.
이를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대의 시간뿐 아니라
나 역시도.
그럼에도 서로를 향한 관계는 분명히 존재하기에
나는 관점을 바꾸려 노력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관계가 많지만
연인의 경우, 오직 둘 사이의 연결을 보는 때가 필요하다.
상황 이전에 그대의 마음이 먼저 보이고
그 마음을 먼저 헤아리게 되었다.
사회생활이라는 시간들은
필요에 의해, 억지로 인 시간도 많기에.
시선을 돌리니 불편함이 눈에 들어오고
불안함 대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여전히 불안함은 가지고 산다.
특히나 내가 작아진다고 느낄 때.
분명 달라진 건, 더 이상 다른 이유가 아닌
그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느 날 버려짐의 불안을 가지고 있던 아이는
불안의 정체가 스스로였음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괜찮다는 말을 많이 한다.
괜찮지 않은 순간에.
여전히 버려짐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며
때로는 몸서리치는 밤을 보낸다.
다만, 괜찮다 말하는 스스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진정으로 괜찮아지려 노력한다.
불안한 마음을 이유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려 한다.
감정은 스치는 것이다.
그를 대하는 태도만 변화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