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마쳤다는 그 종소리와 함께, 모든 상황이 종료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 다음날... 조회시간에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오신 담임선생님. 담배 흡입과다로 얼굴이 온통 쌔까맣게 보였다는 그 2학년 담임 쌤이셨다. 평상시에는 걸걸한 경상도 사투리에 화끈한 말투로 학생들과 친근하게 지내시다가도... 한번은 담배 피다 걸린 우리반 꼴통에게는 불 같이 화를 내시기도 했었다. 중학생 밖에 안된 어린 녀석이 얼마나 열심히 담배를 피웠던지 니코틴 과다로 벌써 이빨이 샛노래졌다고 야단을 치셨었다. 어찌나 화가 나셨는지, 교탁 앞쪽에서부터 맨손으로 때리기 시작하시더니(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 꼰대 아저씨들이 그러는 것처럼, 손목시계를 풀어놓으시고는 말이다)... 교실 맨뒷쪽 벽에 다다를 때까지 정말 쉬지 않고 그 꼴통 친구의 온몸을 사정없이 때리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할 정도이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이 담배 피우는 것이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그렇게까지 심하게 맞을만큼 정말로 극악하게 나쁜 행동은 아니었을텐데... 담임 쌤은 그 날따라 무슨 그리 언짢은 일이 있으셨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친구에게 있는 화 없는 화 모두 동원해서 최대한 화를 내신 것 같았다. 나를 포함해서 다른 모든 나의 반 학급 친구들이 도저히 납득이 안 갈 만큼.
그 담임 쌤이 그 날 아침에는 교실에 들어오시자마자 다짜고짜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야, 어제 혹시 저기 건너편 여중에다가 우유통 던진 사람 나와 봐. 누구야, 도대체?나를 비롯한 모든 학생들은 "한두 사람이 아니라 거의 다 던졌는데요. 우리반 말고 다른 반 아이들도 싹 다..." 이리 대답하였다. 담임 쌤은 어이가 없으셨는지, 두어번 머리를 긁적이시더니... 그런데 우유통만 던진 게 아니던데. 우유통 말고 구슬 던진 놈은 대체 누군거야?엥, 구슬이라니. 왠 엉뚱한 "구슬" 이 등장한걸까??? 담임 쌤이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선생님들이 교무실로 출근하자마자 부리나케 옆 학교 즉 여자중학교 교무실로부터 득달같이 전화가 왔단다.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 여자중학교 창문이 교무실 창문을 포함해서 도합 무려 7장이나 깨어졌다는 ㅜㅜㅜ 그래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다 보니, 우유통에 의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던진 구슬이 문제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원인이 되는 구슬들을 찾아내지도 못했고 설사 찾아낸다 하더라도 1991년 그 당시에 구슬로부터 DNA 정보를 추출할 것도 아니고...암튼 구슬을 던진 범인을 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반에서는 구슬을 던졌다는 학생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앞서 기술했듯이, 혹시라도 그런 학생이 나왔다손치면... 담임 쌤한테 완전 아작이 날 수도 있는 그런 험악한 분위기였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우리 반 친구들 중에는 그 누구도 범인이 아니었다는 것이.
우리반 뿐만 아니라 2층을 사용하고 있었던 2학년 모든 반들에 대한 조사가 각 반 담임 쌤들에 의해서 각각 이뤄진 모양이었다. 걔중에는 양심적으로 스스로 자수하는 학생도 있었고, 끝까지 발뺌하다가 같은 반 친구 혹은 옆 반 친구의 목격자 제보에 의하여 적발된 학생들도 꽤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어제 구슬을 여자중학교쪽으로 던진 학생들 숫자가 도합 14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 중에서 과연 누구가 창문을 깼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대신 그 14명의 범인들은 일제히 반성문을 제출하고 학생주임 쌤의 얼차려를 신나게 받았다. 그뿐 아니라, 여자중학교 교무실에 단체로 찾아가 모두들 머리를 조아리면서 죄송하다는 사과까지 하고 왔단다. 물론 그 14명을 인솔하고 가신 우리 남자중학교 몇몇 선생님들 역시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연신 사과의 뜻을 전한 모양이었다. 대신에 선생님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그 여자중학교 창문 7장의 값을 치르셨다고도 했다. 어리고 철없는 제자들에게 굳이 변상의 책임까지는 물지 않으신 것 같다. 그렇게 그 여름날의 우유통 난리는 가히 극적으로 원만하게 잘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