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특급썰렁이 Sep 20. 2024

나의 이생 23

남중 옆 여중 (3)

그 날따라 더운 날씨... 그것도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을 일찍 먹고 난 몇몇 아이들 중에서 어느 누군가가 빈 우유통 그러니깐 종이 우유곽에다가 물을 담았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다른 아이에게 갑자기 확 던졌다. 그 시절 마땅한 놀잇거리가 없었던 남자 중학생들은 빈 우유통을 가지고 마치 야구공인 양 서로 던지고 받는 야구 놀이를 하곤 했었다. 그 날은 그 빈 우유통 야구가 갑작스레 물 담긴 우유통 야구로 변질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너도 나도 교실 뒷편으로 움직이더니 하나같이 양손에 빈 우유통들을 들고 나오더라. 그러고서는 거기에다가 물을 양껏 담고는 복도 양편에 서서 서로 주고받는 캐치볼 야구를 하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엥,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한참을 캐치볼에 전념하던 몇몇 학생들 중 하나가 돌발적으로 복도 창문을 열더니... 건너편 여중의 1층을 향해 특별히 여중생 무리가 모여있는 쪽을 향하여, 물이 가득 담겨있는 우유통 하나를 던지는 것이 아닌가. 포물선을 그리며 신나게 날아간 그 우유통은 다행히 그 여중생 무리 근처에 떨어지기는 했지만, 떨어지자마자 툭 하고 터지면서 담겨있던 물이 사방으로 튀고야 말았다. 여중생 무리는 느닷없이 날아온 우유통에 놀랄 틈도 없이 꺅 하고 소리지르며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리고는 이내 까르르 웃으며 이쪽 2층을 쳐다보았다.

  

물색없는 한 녀석의 무모한 그 시도가 별탈 없이 끝난 것을 확인한 다른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창문을 열어젖히고 물이 한껏 담긴 우유통들을 여중을 향해 던지기에 착수하였다. 점심시간이다보니 일찌감치 식사를 마치고 매점 주변을 맴돌던 여중생들이 꽤 많이 있었고, 그들은 이내 남중생들의 타겟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나둘 아니 수십개씩 날아가는 우유통들로 인해 여중의 1층 마당은 금새 물바다가 되었고, 몇몇 여중생들은 재수없게도 날아온 우유통에 맞았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젖어버린 모습이었다. 흡사 요즘 세대에게 유행하는 워터밤과도 같은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몇몇 여중생이 물을 맞아 독에 빠진 새앙쥐처럼 되어버린 모습과, 또다른 여중생들이 재밌어 하면서 요리조리 우유통들을 피해 달아나는 모습들을 보면서 남중생들은 이성을 잃은 듯 계속해서 우유통들을 연신 날려댔다. 점심시간이 끝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기에, 이 정신나간 남중생들을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개중에 진짜 또라이 같은 녀석들은 그냥 수돗물을 받아서 우유통을 던지는 것도 모자랐는지, 화장실에 가서 자기 소변을 받아서 넣는 정말 미친 짓도 하는 것 같았다. 대한민국 어느 집단 어느 사회에 가도 저런 일탈을 즐기는 제정신 아닌 사람들이 최소한 한 명씩은 꼭 있는 것 같다. 옆에 있던 친구들이 보기에도 지나치고 심한 장난 같아 보일 정도였으니... 이쪽 남중쪽에서 여중쪽으로 한동안 일방적으로 던지다 보니, 어느새 여중쪽에서도 화가 잔뜩 올랐던 모양이었다. 적어도 중 2 혹은 중 3 정도 되어보이는 제법 강단 있는 여중생들 몇몇이 여중의 1층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야, 이 OOO들아. 뭐야. 그만 던져. 너희들 내 손에 잡히면 죽여버린다. 녀들의 고함치는 소리가 매우 위협적이었지만, 우리의 또라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우유통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윽고 여중의 2층 창가에서도 상당수의 여중생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뭐 못할 줄 알아. 이 고성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반대편 여중쪽에서도 우유통들이 날아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웬걸... 아무래도 담장 바로 근처에 복도가 있는 나의 남자중학교와는 달리, 담장에서 한참이나 떨어져서 건물이 있는 여자중학교에서는 아무리 교실 창문을 열고 우유통을 던지더라도 여중의 1층 마당을 가로지르기에는 매우 먼 거리였기에 담장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우유통들은 모조리 터져버렸다. 야!!! 남자중학생들은 마치 무슨 큰 싸움에서 대승을 하기라도 한 듯 크게 함성을 질러댔다. 반대편 여중의 1층과 2층 그리고 3층의 거의 모든 교실 창가에 어마어마한 숫자의 여중생들이 달라붙어 분노의 가음["고함" 의 경상도 사투리; 작가 주]을 지르고 있었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정말 이러다간 남자중학교와 여자중학교 사이에 전쟁이라도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딩동댕동 하고 점심시간이 마치는 종소리가 양쪽 학교에서 동시에 울러퍼졌다. 그 날 점심시간에는 진짜 무언가 아주 큰일이 날 뻔 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