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한 지방에서 만 쓰는 방언.
표준말:대개 그 나라의 수도에서 쓰는 공식적인 방언
나는 경상도 여자다.
그것도 항구도시 출신.
말이 빠르고 거칠다.
대학 진학으로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는 내가 그곳 사람이고 그곳 말을 쓰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도 없었다.
요즘처럼 매스컴이 발달하지도, 이사가 잦지 않던 내 어린 시절,
서울에서 전학 온 친구의 말투가 참 예뻤고 고급 졌다.
우리는 속으로는 부러워하면서도 그 애를 놀렸다.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
고향을 떠나고 내가 나의 고향 말에 처음으로 열등감을 느낀 곳은 대학 캠퍼스.
학우들이 나의 고향 말을 흉내 내는 것이었다.
70년대 대학생들의 주된 아르바이트는 가정교사.
내가 입주가정교사로 들어간 집은 서울 토박이 집.
이리저리 경상도 말에 차츰 서울 억양이 섞였다.
방학 때, 고향에 가면 내 말 어조가 희한하다.
방학이 끝나고 집을 떠날 때쯤 되면 내 어조는 편안한 고향 말씨.
고향이 같은 남편을 만나 결혼생활을 할 때도 언어 상 문제가 없다.
도리어 어떤 말은 그곳 사람만이 이해하는 묘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어 같이 말맛을 즐긴다.
'문둥이 가시나'란 '한센씨병의 여자애'란 뜻이 아니다.
막연한 사이에서의 사랑이 듬뿍 담긴 애칭이다.
'조졌다'
비속어 같은 이 말은 '망쳤다'란 뜻.
놀랍게도 이 말은 표준말이라는 사실.
다른 지방 사람들이 비속어라 생각하는 이런 말들은 그 지방 사람들은 구수하고 맛깔나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이런 말을 대체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마치 소월의 시,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그 징한 맛을 어떻게 영어로 번역할 수 있냐고?
남편은 고등학교 졸업 후, 타향살이가 반세기가 훌쩍 지났건만 전혀 언어의 표준화가 되지도 될 생각도 없는 듯하다.
형제들을 만나면 그들은 오랜만에 고향말을 맘껏 쓰면서 반가움을 더 만끽한다.
결혼 후 나는 서울은 아니나 서울 출신 분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 살게 되었고 차츰 내 말은 표준화가 되어갔다.
물론 사람들은 내가 몇 마디만 하면 내 고향을 대략 알아맞힌다.
그러다 보니 나도 보였다.
각종 매스컴에 나오는 이들이 서울말 같은 사투리를 쓰고 있음을.
태어난 곳 언어가 아니라 후천적으로 습득한 언어를 쓰려면 무언가 어색하다. 신경 쓰인다.
마치 한국인이 외국어로 말할 때처럼.
외국인이 한국말로 말할 때 처럼.
남편 직장 일로 미국과 프랑스에서 조금씩 살게 되면서 나의 말은 또 다른 고난을 겪게 된다.
서울이 국내의 중심, 수도라서 서울 말이 표준말로 우위를 점하듯이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라 미국 말이 우위다.
또 아무래도 불어가 한국말보다 우위다.
국내에서 지방인 경상도 말로 힘들더니
이젠 별 알아주지 않는 한국말로 힘든다.
서울말 인척 말해도 뭔가 부자연스럽더니
영어인 척, 불어인 척 말해도 너무 어설프다.
어느 날, 한 프랑스 여자과 단둘이 한두 시간 같이 있어야 할 상황이 생겼다.
그분은 한국말을 나는 불어를 잘 모른다.
이럴 때는 만국 공용어 영어가 그나마 답.
비영어권 사람끼리 영어로 대화하면 히안하게 잘 통한다.
두사람이 띠엄띠엄 말을 주고 받다가 공통관심사가 있음을 알게되었다.
그때부터 커뮤니케이션의 진도가 나가기 시작.
언어가 부족해도 동감과 이해, 공통관심사가 있으니 서로의 마음이 전해졌다.
부모회나 복지관 회의에 참석할 일이 있다.
안건을 발의 할 때마다 내 사투리가 신경 쓰인다.
표준어로 차근차근 세련되게 설명하는 이가 부럽다.
그런데 어투가 아니라 내용이 좋으면 채택되었다.
경상도 사투리를 써도 대통령이 되는 세상이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이렇게 하는 게 옳다는 결심이 서서 신학교 입학을 느지막하게 하였다.
마지막 걱정- 나의 사투리.
그 당시 나의 신앙의 멘토이셨던 한 할머니 전도사님을 찾아가 내 고민을 말씀드렸다.
"걱정 마,
어릴 때 새로 이사 간 동네에서 사람들은 나를 벙어리인 줄 알더라.
나는 워낙 말할 줄 몰라 입을 닫고 살았거든.
말 때문에 걱정 마."
그 뒤
교회에서 일하게 되었고 한동안 어린이들을 맡았다.
성경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들은 내가 하는 말에 빨려 든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어요? 빨리요 " 채근
할 때 나는 희열을 느꼈다.
비록 "예수님이지 왜 애수님으로 발음하세요?" 흉도 받았지만.
내용이 좋으면 사투리도 용서된다.
성경통독 모임을 오랫동안 가졌다.
새롭게 시작할 때마다 새로 온 어떤 이는 사투리, 그것도 빠른 내 어조에 당황해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내 템포에 맞춰진다. 같은 시간에 더 진도가 많이 나가니 좋다는 칭송받는 단계까지도 간다.
언어는 중요하다.
특히 외국어 습득은 (영어) 글로벌 시대에 요긴하다.
그러나 언어는 콘텐츠를 담는 도구.
둘 다 좋으면 금상첨화이나 순서는 콘텐츠 가 먼저다.
꼬맹이들을 실어 나르는 영어학원차들이 동네를 들락거린다.
영어라는 언어를 위해 아예 기러기 부모도 된다.
일본, 이태리에서 공부했고 지금은 프랑스에서 글을 쓰는 비교언어학자 이주영씨,
그녀는 책 °여행선언문°에서 말한다.
"사람들은 언어학습을 문법, 어휘, 문화를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언어의 기본은 °상식°이다.
언어에 능숙하더라도 대화의 주제에 대해 아는게 없으면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
말을 아무리 잘 하면 뭐하나? 할 말이 없는데.
상식이 없다면 언어학습은 무용지물이다..."
허긴 학창시절 영어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너네들 영어단어만 외우지 말고 소설책도 많이 읽어..."
영어습득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나이에 친구들과 뛰어다니기, 길가 코스모스 들여다보기, 동시 외우기, 도서관에 무진장 쌓여있는 동화책 보기 등등도 중요하다.
살아보니 그런 것들이 진짜 자산이 되던데.
그릇도 중요하나 그 속에 담긴 것이 더 중요한데...
한국에 매료되어 기자로 한국을 찿은 한 영국인은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책에서 한국인의 영어광풍을 걱정한다.
50~60년대, 전쟁 후 모두가 가난했던 나 어린 시절,
친구들과 사투리 써가며 동네와 뒷동산을 휘젓고 다니느라 바빴고
때로는 너무 너무 심심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문득 고맙다.
티비도
스마트폰도
물론 학원도 없었고
집집마다 대여섯명의 애들을 먹여 살리느라 자식들에게 간섭할 시간도 다행히 없었던 우리 부모님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