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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l 02. 2024

가족사진

가족 가족.


수년 전, 10년 넘게 사위가 처갓집에 올 때마다 장모의 맘 한구석 켕기는 게 하나 있었다.

식탁 옆벽에 걸려 있는 액자 속 가족사진.

먼 옛날, 애들이 어릴 때 찍은 가족사진. 물론 거기에는 사위가 없다.

사위와 찍은 가족 스냅사진들은 아주 많다.

이상한 건, 스마트폰으로 찍은 가족사진들을 크게 확대하면 화소를 떠나 작품성, 뭐 이런 게 없다.

그 이유를 나중에 알았지만.


딸네가 친정 올 때마다, 이제 가족이 된 사위가 들어간 가족사진을 찍으려고 벼르고 벼르었다.

그런데 손녀가 태어나고  곧 이어 손자가 태어났다.

본래 4식구에 세명이 더해져 7명이 되었다.


가족사진, 한 번 찍으면 오랜 시간 보고 또 볼 것인데 함부로 찍을 수 있나?

여유로운 시간에 이런저런 조건이 되어야지.

그러니 차일피일 미루어져 갔다.


딸애가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어느 추석,

다니려 온 딸애가 얼핏 가족사진 이야기를 꺼냈다.

마침 나에게 적당한 옷이 있고 머리모양도 괜찮다.

아들에게도 적당한 양복이 있었다.

우르르 동네 사진관으로 몰려갔다.


"누구는 의자에 앉고 누구는 서고, 얼굴은 이쪽으로, 손은 이렇게..."  

사진사는 영화 찍는 감독 마냥 이리저리 연출을 하신다.

사진 한 장 뽑으려는데 수십 장의 사진을 찰칵찰칵 찍는다.

이젠 그 수십 장의 사진들을 모니터로  보면서 하나씩 지워버린다.

"이건 아버님이 잘못 나왔네, 이건 따님 얼굴이 이상하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몇 장의 사진들.

이젠 그 사진 중 가장 잘 나온 부분들을 짜깁기한다.

이 사진의 손녀 얼굴을 저 사진의 손녀 몸에 붙이는 식.

압권은 늙은 우리 부부의 성형수술.

할머니의 팔자주름이 어떻게 수정을 하니 사르르 없어진다.

처진 턱살이 스르르 올라간다.

순간 나는 화면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놀라운 그 세상으로.


며칠 후 사진을 찾았다.

예전 가족사진을 떼어내고 새 가족사진을 걸었다.

4명에서 7명으로 늘어난 가족.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새 사진을 볼 때마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좀 뽀샵은 했지만 그 가족이 그 가족이다.

심상하게 만나고 헤어지고 했던 가족들.

그런데 사진으로 한 장 딱 이렇게 붙여놓으니 가족의 객관화가 이루어졌다고 할까?

사진 속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우리 부부.

한쪽 운동화를 벗고 빼딱하게 선 손자.

좋아하는 카카오 인형을 안고 환하게 웃고 있는 손녀.

그리고 오래간만에 양복을 입은 아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대체불가의  꽃 같은 보물들.

나는 보물들에게 둘러싸여 있구나.


높은 산에 올라가 저 아래의 마을을 보면 평화롭다.

어두운 밤, 높은 빌딩에서 저 아래 도로 위에 연이어 흘러가는 자동차의 붉은빛들의 흐름을 내려다보면 낭만적이다.

다른 별에서 찍은 푸른 지구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실상 그 속에 들어가면 수만 가지의 희로애락이 있지만.

카메라의 눈으로 보는 우리 가족의 객관화도 그런가?

그래도 이만하면 감사하다.

비록 장애인 아들은 결혼을 못 하지만 나름 건강하게 자랐고 나름 행복하게 산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복되게 인도하셨다.

이런 산을 넘고 저런 강을 지났지만 이만하면 복되다.

마음 한편에서 뜨거움이 울컥 올라왔다.


새롭게 가족이 된 사위를, 손주들을 넣은 가족사진 한 장, 늦게나마 걸려고 시작한 사진 찍기.

그런데 이런 효과가 있다니...

고맙다. 다들.


택시 기사님들의 운전대 한편에

직장인들의 책상 한편에

군인들의 관물대에 놓이고

품 안의 지갑 안에 끼워지고

요즘엔 스마트폰에 저장해두었다가

힘들 때 들여다보면

미소가 살아나는 가족사진!

막장 드라마에서는 깨어진 사랑에 분노하며 깨어지지만.


그러나 나는 또한 안다.

세월이 흐르면 없어질 이 사진의 운명을.


예전 친정집에 걸려있던, 시간차를 두고 찍었던 가족사진들

나와 오빠, 오누이만 있던 50년대의 4명 가족사진.

젊은 부부가 초등학생 오누이를 자랑스럽게 세우고 찍은 사진.

그러다가 5명 형제가 있는 7명 가족이 되었다가 스무 명이 넘는 대가족의 사진으로 끝났다.

사진마다 왁자지끌  흥겨웠던 그날의 즐거움이 묻혀있다.

시간을 돌릴 수는 없으나

적어도 그 순간을 사진으로 꽁꽁 매어놓을 수는 있는 고마운 사진!


그러나 그 시대가 끝났다.

부모님이 안 계신 친정집이 팔렸다.

보름 후에 새 주인이 들어오겠단다.

모든 물건들이 처리되어야 했다.

아버지께서 일제시대 어릴적부터 거진 90년간 사셨던 집.

그간의 세월과 생활의 흔적들이 말끔히 치워져야했다.

물론 사진들도.

각자 자기 집 짐도 이제는 줄이며 살아야하는  칠순 남짓의  늙은 자식들은 그저 그 가족사진들을 핸드폰에 담을 뿐 누구도 가져가지 않았다.

그저 쓰례기가 된 가족사진.


예전 어디에서 읽은 이야기.

시골에서 홀로 계시던 노모가 소천하셨다.

도시 사는 아들은 급히 장례를 치르었으나 집 처분하기는 시간이 없다.

그 집을 통째로 팔았다.

그 이층집을 산 글쓴이.

그는 이층 올라가는 계단 벽에 하나씩 걸려있는 예전 살던 가족사진들을 떼면서 허망해한다.

3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어느 집 가족사진.


언젠가는 없어질 사진이라고 안 만드시겠다고요?

그러나 내사는 동안에는 보물이지요.

가족사진을 찍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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