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할 결심

by 강지영

이 글을 쓰자니,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선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이 떠오른다. 장석주 시인의 시 '대추 한 알'의 대추 한 알에도 태풍 천둥 벼락 무서리 땡볕이 들어간 처럼,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 외에도 공동체 여러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고 이해한다.


지난 3월, 초등 2학년 국어책 이어 읽기를 하는데 자기 차례가 된 한 학생이,

"선생님, 저는 한글을 못 읽어요."

라고 한다. 가슴이 철렁했다. 이어서 아이들의 비웃음 소리가 나올까 봐 당황했다. 다행히 아무런 반응이 없다. 고마웠다. 응, 그래, 가볍게 넘겼다. 그 후부터 그 학생에게로 관심이 쏠렸다. 학생 이름은 초롱이(가명). 이름만큼이나 눈도 초롱초롱하다. 교과 관련 외의 생활 이야기에서는 듣고 말하기는 무난했다. 친구 관계도 원만했다. 쉬는 시간에도 초롱이 주변엔 서너 명의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화장실을 갈 때도 누군가와는 손을 붙잡고 갔다.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화장실을 갈 때 혼자 가려고 하지 않는다. 옷차림도 깔끔했다. 얼굴색도 밝았다. 줄넘기도 잘했다. 여느 아이와 다름이 없었다. 오히려 더 밝고 명랑하고 활기찼다. 단지 한글을 읽고 쓸 줄 몰랐을 뿐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러던 어느 날, 초롱이(가명)가 '알림장' 공책 한 귀퉁이를 잘라내서 쓴 쪽지를 나에게 건넨다. 그 쪽지에는


'사랑해요'


라고 씌어 있었다. 초롱이가 정확히 쓸 줄 아는 것은 자기 이름과 사랑해요가 전부라는 것을 아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받아쓰기를 해 봐도 초롱이는 10개 중에 한 개도 온전히 맞히지 못했다. 진단검사지에서도 20개 문항 중에 4개를 맞혔다. 결국 학습부진아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학부모와 상담을 해 보니, 한글을 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부모로서 얼마나 속이 상할까. 초롱이의 1학년 1년 동안, 초롱이는 얼마나 답답했으며 초롱이 엄마 아빠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아니라고, 미안해할 것 없다고 했다. 초롱이 한글 공부, 어디 한 번 해보자고 했다.


학부모와 상담 후, 일주일에 월 수 목 금요일에 40분씩 한글 공부를 하기로 했다. 화요일은 초롱이가 방과 후 수업이 있는 날이라서 빼기로 했다. 인천시 교육청에서 펴낸 '찬찬 한글'로 찬찬히 시작하기로 했다. 초등교사로 일한 박지희 선생님의 '1학년 한글 첫걸음', 경인교대 국어과 교수가 쓴 '기적의 한글학습' 등의 책도 활용하였다.


연구부장 선생님이 교육청에서 한글 미해득 학생을 위한 난독증 검사가 있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읽어 보고 신청했다. 난독증 검사를 위해서 교육청에서 한글 선생님이 파견되어 오셨다. 그렇게 해서 초롱이는 6월부터 주 2회 60분씩 한글 공부를 하였다. 월 목요일은 담임선생님과 수 금요일은 파견된 한글 선생님이 지도하였다. 몇 주 지나자 '한글 교육 센터'에 가서 공부하는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교육청에서 교육비를 지급해 주는 한글 교육 대행사로 이해했다. 초롱이 엄마가 센터에 데리고 가서 한글 공부를 하고 오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렇게 여러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이어지던 어느 날이었다. 그림을 보고 이야기 지어내는 공부를 하는데 초롱이가 제법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놀라웠다. 맞춤법을 정확히는 몰라도 읽어보면 뜻은 통했다. 얼마나 기특하던지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기뻤다. 초롱이 볼에 뽀뽀라도 하고 싶었는데, 참았다. 그런 반응 말고 좀 더 깊은 감동을 표현하고 싶었다.


문구점에 가서 연필 세 다스를 샀다. 생각해 보니, 초롱이 외의 아이들에게도 고마웠다. 초롱이가 한글을 모르는데도 어느 한 사람도 초롱이를 놀리지 않은 거다.


다음 날, 교실에 가지고 와서 쏟아보니 한 움큼이 넘는다. 나는 기계의 힘을 빌렸다. 샤파로 연필을 깎기 시작했다. 5분이 조금 지나 연필이 다 깎아졌다. 예전과 같이 장일즉(가명)이 가장 먼저 교실로 들어온다. 엄마 홀로 아이 둘을 키우는데 엄마가 일찍 출근하느라고 일즉이는 거의 매일 가장 먼저 교실문을 열고 들어온다.

"선생님, 연필이 왜 이렇게 많아요?"

"응, 너희들에게 줄 선물이야."

그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학습지를 주면서도 늘 '선물'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무슨 선물이 학습지냐고 살짝 눈을 흘기기도 했지만 그 눈 흘김 속에도 고운 웃음이 있음을 나는 보았다. 나 혼자만 안다.


아이들이 하나 둘 들어오고 아침 독서시간이 지났다. 1교시 국어 시간,

"어제 국어 시간에 여러분이 만든 이야기가 얼마나 훌륭했는지 내가 너무 기뻤습니다.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나 마음을 나타내는 말도 적절히 잘 사용해서 이야기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한 사람이 아주 많았습니다. 내가 너무 기뻐서 선물을 주려고 합니다."

하면서 연필을 꺼냈다.

"와, 오늘 선물은 학습지가 아니네. 히히힛'

여기저기서 기쁨의 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방과 후에 초롱이를 불러서 남은 연필 중 세 자루를 더 주었다. 초롱이의 손을 잡으며 그간의 공부를 충실히 한 것에 대해 말했다. 얼마나 작고 귀여운 손인지.

"초롱아, 한글 공부 열심히 해서 고마워. 나도 이렇게 기쁜데 초롱이는 얼마나 기쁘겠어."

초롱이가 한글 공부하는 데에는 본인 외에도 여러 사람의 정성이 들어갔다. 초롱이 부모님, 우리 학교를 방문해서 가르친 한글 선생님, 한글 센터 선생님, 학원 선생님, 좋은 교재를 만든 박지희 선생님과 경인교대 교수 등, 이 많은 사람들의 열의로 초롱이는 드디어 글자를 깨우치게 되었다. 초롱이에게 새로운 세계이리라. 이제 글자를 넘어 '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으니, 또 나의 할 일이 생겼다.

초롱아, '공부할 결심'이 선 거지? 나도 학생을 잘 가르칠 공부를 할 결심이란다. 우리,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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