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시선

by 강지영

마침내 학교생활기록부에 1학기 입력 내용을 완료했다고 생각했다. 몇 주간의 입력 작업이 길게도 이어졌다. 바로 '행동발달사항 및 종합의견' 입력 때문이었다. 교사가 입력한 학교생활기록부의 행발내용은 곧바로 학교생활통지표로 출력된다. 몇몇 학생에 대한 입력 내용이 힘들었다. 특히 나대로(가명)에 대하여는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다. 나대로 학생은 교실이나 복도에서 걷지를 않는다. 뛰어다닌다. 때로는 스케이트를 타듯이 다닌다. 팔도 자유자재다. 휘두르기도 하고 구부렸다 폈다 제멋대로 움직인다. 마치 신장개업하는 가게 앞의 춤추는 풍선 바람인형처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학교 생활을 즐기는 중이다. 실외에서도 줄을 서지 않는다. 현장학습을 갔을 때도 줄을 서지 않아 애를 먹이곤 했다. 줄을 서지 않고 딴전을 피는 것은 그래도 봐줄 만 하지만 복도에서 뛰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뛰다가 넘어지거나 다른 아이들과 부딪치기라도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나대로의 학교 생활 자체가 내 맘에 들지 않았다.


나대로 학생의 행동발달사항에,

'규칙과 질서를 잘 지키지 않으며 자신이 정한 삶의 방식대로 생활하는 자연인에 가까운 학생임. 단체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함. 교사의 가르침에 잘 순응하지 않으며 친구들과도 잘 교우하지 못함.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학력 향상에 애로점이 많음. 만들기나 그리기 작품을 끝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자기 주변 정리를 잘하지 못하여 늘 어수선함. 자기가 맡은 역할을 성실히 하지 못하여 모둠 활동에도 지장이 많음.'

이라고 쓰고 싶었으나 꾹꾹 눌러 참았다.


대신,

'규칙과 질서를 좀 더 잘 지킨다면 안전한 학교 생활을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짐.'

이라고 입력했다. 오랜 경험으로 볼 때, 단점을 발견하여 발달 지향점을 써 준다고 하여도 학생의 변화에는 '차도'가 없었다. 저학년 행동발달사항은 대부분 학부모를 고려하여 쓰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쓰더라도 학생의 행동발달에는 큰 변화는 없었다. 하여 최대한 완곡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학교생활통지표 때문에 부부싸움이 일어나거나 자녀를 다그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배려 차원이다. 신경에 거슬리는 문장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날도 생활기록부 입력을 하느라고 퇴근 시간이 지나 여섯 시쯤 교실문을 나왔다. 참고로 교사의 퇴근 시간은 4시 30분이다. 다른 직장인의 퇴근 시간보다 매우 빠른 편이다. 예전에는 나도 궁금했다. 그 이유가. 알고 보니, 초등교사는 아침 8시 30분부터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는 시간까지 늘 아이들과 함께한다. 쉬는 시간도 학생이 쉬는 시간이지, 교사에게는 학생 생활지도 시간이다. 점심시간도 급식지도 시간이지 교사의 점심시간은 아니다. 물론 교사도 학생과 점심식사를 같이 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음식을 씹으면서 말하지 말아라, 바른 자세로 먹어라, 골고루 먹어라, 밥을 더 먹어라, 등등. 때로는 국물을 흘리거나 음식을 흘리는 아이들 뒤처리 또는 밥 먹다가 토하는 아이 돌보기 등을 하다 보면 제 때 식사를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니 학생들이 하교하기 전까지는 온전한 교사의 휴식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퇴근 시간이 빠른 거라는 것을 선배교사로부터 들었다. 교사의 퇴근 시간은 참 합리적이다.


이야기가 빗나갔다. 다시 퇴근길에 대한 얘기로 돌아온다. 여섯 시가 조금 지나 후문을 지나 도로로 나왔다. 정문을 지나 우회전을 하고 몇 미터 주행을 한다. 저 멀리에 횡단보도가 있다. 주변에 다른 차는 없다. 20킬로쯤으로 서행하고 있는데, 어떤 여자와 남자가 좌우 한 번 보더니 그냥 횡단보도를 건넌다. 보행신호가 안 켜진 상태였다. 초록불을 기다리던 한 아이는 건너지 않고 그대로 서 있다. 다른 사람은 차가 오지 않으니까 무단 횡단을 하는데, 그 학생은 그냥 서서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 조금 지나 어느 중고등학생도 무단횡단을 한다. 그런데도 그 초등학생은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내 차가 횡단보도 앞 정지선에 섰다. 초록불이 켜지자 혼자 서 있던 초등학생이 차가 다 멈추었는지 좌우를 살피더니 걷기 시작한다. 한 손을 들고 건넌다. 앗, 그 학생은 바로 나대로였다. 교실에서 가르친 대로 하는 나대로! 학교에서는 그렇게 규칙을 안 지키고 질서를 안 지키던 나대로가 학교 밖 횡단보도에서는 교통 규칙을 잘 지키고 있다. 야, 나대로 넌 뭐니? 커다란 학원 가방을 메고 한 손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나대로가 얼마나 기특하던지. 당장이라도 안아주고 싶었다.


다음 날, 나는 출근하여 컴퓨터를 켜고 나대로의 행동발달사항을 고쳤다.

'안전한 생활의 필요성과 방법을 잘 알고 있음. 학교와 학급에서 정한 규칙과 질서를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바람직함.'

교통규칙 지키는 모습을 한 번 본 것을 가지고 이렇게 쓰는 것이 옳은 것인지, 학교 복도에서 늘 뛰던 행동을 써야 하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다만 믿는 만큼 자라기를 바랄 뿐이다. 또한 나대로를 보는 내 시선이 편견은 아닌지 나대로가 학교 생활에 흥미가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인간을 이해하고 알아간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문득, 가수 김국환이 절창한 노래 '타타타'가 떠오른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초롱꽃.jpg (사진 출처 : 학교 꽃밭에 핀 '초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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