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으로, 초등교사 2년 차였을 때다. 3학년 학급 담임을 맡았다. 받아쓰기로 맞춤법 지도를 하고자 받아쓰기 시험을 보곤 했다. 받아쓰기를 잘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개 틀리는데 손바닥 한 대씩 맞기로 약속을 했다. 사실 교사의 일방적인 엄포였겠지만. 내가 약속이라고 한 이유는 아이들에게 단단히 일러두었고 여러 차례 연습을 한 터였기 때문이다. 받아쓰기 시험 문제를 미리 알려주고 여러 번 연습을 하게 하게 한 후, 시험을 보았다. 대부분이 100점이거나 한 두 명만 한 두 개씩 틀렸다. 한 사람만 거의 다 틀렸다. 아이들과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것이 정의롭다고 생각했다. 한 학생을 여덟 대인가 아홉 대를 때린 것 같다. 그 어린 손바닥을. 아무리 약속을 했더라도 융통성을 발휘했어야 하는데 그때는 그러지를 못했다. 가장 못난 교사가 아이들을 때려서 가르친다.
다음 날,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낯선 남자가 학교 중앙현관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딱 봐도 술에 잔뜩 취한 상태였다. 선배교사들과 함께 현관에 들어서며 누구야, 누구지,를 수군댔다. 얼굴이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며 힐끗힐끗 보았다. 그러고 나서 교실에 들어와 가방을 놓으려는데, 한참 선배였던 선생님이 나를 부르더니 화장실에 가서 어서 숨으라고 했다. 다급하게 나를 이끌고 가는 선배교사를 따라 화장실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선배교사가 화장실 칸 밖에서 나에게 속삭였다.
"강 선생, 혹시 애들 때렸어?"
"네, 왜요?"
"아까 중앙현관에 있던 사람이 강 선생 반 아이 아빠래. 지금 교무실에 있는데, 이따가 내가 나오라고 할 때까지 여기 숨어 있어."
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부끄러움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선배교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 아마도 1교시는 옆반 선생님이 봐준 것 같고, 나는 그 학부모가 돌아갈 때까지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 교감 선생님과 학년부장님이 학부모의 화를 풀어주고 사건은 일차로는 종료되었다.
교장 선생님도 교감 선생님도 아무도 나를 질책하지 않았다. 다만 그 학부모가 또 민원을 제기할지 모르므로 학부모에게 공식 사과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학부모가 학교에 또 오기 전에 교사가 학부모 집을 찾아가 사과하기로 결정이 났는데, 나더러는 가지 말라고 했다. 그 학부모가 예전에 부부싸움을 했는데 아내를 흉기로 찔러서 경찰서까지 갔다 온 전력이 있으니 어린 여교사가 그런 학부모를 대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하였다. 가슴을 쓸어 내리며 의견을 따랐다. 교감 선생님과 학년부장님 두 분이서 술과 고기를 사들고 사과를 하러 갔다. 나는 빠지고. 그 후로 그 학부모는 학교를 찾아오지 않았고 무사히 일 년을 마칠 수 있었다. 30년도 넘은 얘기다. 무심한 나는 그때의 교감 선생님과 학년부장님의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그 일이 있을 때, 나는 교대를 졸업한 2년 차 새내기 교사였다. 교직원 중에서 막내였다. 그 일로 인하여 나는 아무 상처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학년부장님, 그리고 학교의 모든 선배교사의 위로와 사랑을 느꼈다. 모두가 나를 보호해 주었다.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는지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다. 그 후로 나는 아이들을 절대로 때리지 않았다.
오늘 뉴스에서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다. 얼굴도 모르는 2년 차 신임 교사의 슬픈 죽음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서울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2년 차 여교사가 세상을 떠났다. 그 교사는 작년에도 올해도 1학년 학급 담임을 맡았고 올해에 생활지도로 어려운 학생이 네댓 명이 있었다. 한 학생이 뒤에 앉은 학생의 이마를 연필로 긁었다고 한다. 그 피해 학생의 학부모가 교무실을 찾아와 교사에게 교사 자격 운운했다는데, 그 선생님이 느꼈을 '모멸감'을 상상해 보면 숨이 막힐 만큼 가슴이 아프다. 상상해 보건대, 이 한 가지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도 그러하겠지만, 특히 교사에게 모멸감이란 죽음으로까지 몰고갈 수 있다. 모멸감을 받고서는 학생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이 주어지지 않는다. 모멸감은 교단에 서는 다리에서 힘을 빼버린다. 조금만 주변에서 세심히 살폈어도, 조금만 주변에서 도왔어도 선생님은 살아갈 힘이 있었을 텐데. 이 슬픔과 분노를 무얼로 다 표현하랴.
아직 경찰 조사가 끝나지 않았으니 정확한 사건 전말을 알 수는 없다. 한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스러지게 한 이들이 있다면 명확히 밝혀져야 할 것이고 사죄를 함이 마땅하다. 뉴스를 들으며 요즘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학교 현장의 여러 모습을 생각해 본다. 학부모의 민원으로 인한 교사들의 고충은 너무나 흔한 것이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한 해 한 해 그런 '무시무시한' 학생이나 학부모가 우리 반에 오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길 뿐이다.
시대가 변한 만큼,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학교폭력업무를 학교에서 교육청으로 이관했다고는 하나 일차적으로 학폭의 일선에는 교사가 있다. 그래서 제안한다. 가정폭력을 경찰에 신고하듯이 학교폭력도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이 조사하고 경찰이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경찰은 사건을 조사하는 기법도 있을 터이다. 경찰은 사법적인 권한도 있지 않은가. 경찰이 학폭을 전담한다면 가해 학생이나 그 학부모도 사건의 중대성과 경각심을 갖지 않을까. 참 어려운 문제다. 어렵지만 꼭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