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우울, 아니 코로나 블루

by 강지영

-요즘, 우울한 선생님들이 많아서 나도 우울해.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감으로 있는 대학 동기로부터 들은 말이다. 교감으로서 교사들의 복무관리를 하다가 겪게 된 고충일 게다. 일반 교사들은 대면 없이 각자의 교실에서 머물기 때문에 누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친구로부터 그 말을 듣고 생각한다. 이 시국에, 교사도 감정이 있는 사람일진대 어찌 우울하지 않을 수 있으랴. 코로나19로 인해 교사들의 대면 회의나 티타임 등도 거의 취소되고 직원회의는 화상으로 진행된다. 티타임은 없고 업무협의만 간단히 마치고 각자 교실로 간다. 요즘의 학교 교실은 외딴섬이다. 각자 교실로 간 교사들은 섬에 고립된 사람처럼 교실에서 수업을 비롯한 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퇴근한다.


교실, 복도, 운동장, 급식실, 학생들이 있는 어느 곳에서나 방역에 대한 부담감이 가중된다. 학생이 가까이 와서 얘기하려고 해도 두려움이 앞설 때가 많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손을 잡거나 하는 몸짓도 하지 않는다. 나도 '조용한 전파자'일 수도 있기 때문에. 아이들 간에도 거리두기 할 것을 강조한다. 이렇게 조심, 조심을 해도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가시지 않는다. 마스크 쓰고, 틈날 때마다 손을 씻는 정도다. 초등학교 1, 2학년은 매일 등교를 한다. 3~6학년은 가정에서 학습이 가능하다고 하여 일주일에 몇 번만 등교한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교사다. 학교 곳곳에 감염의 위험이 노출되어 있음에도 매일 등교를 강행하는 교육부의 정책이 안타깝다. 나와 학생들의 건강이 외면되고 있다는 소외감이 든다. 그러려고 하지 않아도 잘 안된다. 마구 밀려오는 이 못된 감정을 떨쳐 버리고 싶다. 마치 편충 같다. 편충은 인간의 대장에 기생하면서 대장 점막을 실로 누비듯 관통한다고 한다. 구충제도 별 효력을 내지 못한단다.


학생들과 대면하고 있는 순간만은 못난 감정을 표시 나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가능하면 재밌게 수업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예전처럼 유쾌한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마스크로 내 얼굴을 가리고 있는 편이 다행이긴 하다. 교실 분위기를 즐겁게 바꾸려고 재미있는 동화책을 읽어 준다. 간간히 웃음소리는 들리지만,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을 볼 수 없다. 나도 이럴진대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까. 작은 책상 위는 기역자로 투명 가림막이 쳐져 있다. 내가 학생의 자리에 앉아 보았다. 가림막 너머의 칠판 글씨가 어릿어릿하다. 텔레비전 화면을 보았다. 글씨가 휘어져 보이기도 한다. 짝꿍도 없이 마스크 쓰고 오전 내내 의자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면 나의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들이 이 무슨 생고생인지. 30명 안팎의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 교사와 학생은 코로나와 분투한다.


-선생님, 선생님은 파란색이 좋으세요?

어느 날, 교실에서 한 아이에게 들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의 내 옷은 파란색 계열이 많았다. 옷가게에 가면 주로 '네이비(navy)'라고 부른다. 짙은 남색. 내 몸을 감싸는 이 색깔을 좋아하게 된 것이 우울과 관련이 있을지 생각한다. 네이비와 가까운 색깔에 블루(blue)가 있다. 파란색은 우울을 뜻한다. 왜일까. 왜 파란색이 우울을 뜻하는 걸까. 우리가 공포에 휩싸일 때 '파랗게 질린다'라고 해서일까. 조금은 연관이 있을 것 같다.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이 떠오른다. 피카소가 이별, 질병, 죽음에 대해 깊은 고뇌에 빠져 있을 때 그린 작품들. 화가는 파란 채색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신조어가 많이 등장했다. 코로나 블루, 코로나 레드, 코로나 블랙, 코로나 앵그리, 집콕족, 상상 코로나 등등. 그중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이 코로나 블루로 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2020년 7월 31일부터 8월 2일까지 열린 새말 모임을 통해 제안된 의견을 바탕으로 의미의 적절성과 활용성 등을 다각도로 검토해 '코로나 블루'의 대체어로 ‘코로나 우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코로나 우울이라, 단어 자체만으로도 정말 우울한 것 같다. 난 차라리 코로나 블루가 낫다고 본다. 우울이라는 낱말보다는 블루가 낫다. 블루는 우리말이 아니기 때문에 잠시 스쳐가는 유행일 뿐이라는 가벼운 생각이 든다.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책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는 이렇게 말한다. 코끼리를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코끼리를 생각한다고. 그렇듯이 우리는 코로나 우울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울해지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코로나 블루라고 말하련다.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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