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있으니 미래가 밝지

by 강지영

"다친 것도 아니고, 운동을 심하게 한 것도 아니고... 아니, 무슨 일을 하시길래 팔이 이렇게 되었어요?"

지난해 MRI 결과를 보고 의사가 한 말이다. 병명은 외측 상과염(테니스 엘보). 심하다고 했다. 생수병 하나도 들기 어렵고 옷 입을 때 소매에 팔을 끼우기도 버겁다. 주먹 쥐기도 힘들다. 양치질도 어렵다. 팔꿈치를 만지기만 해도 아프다. 나는 소화기관이 약해서 위와 장만 관리하면 잘 살 줄 알았는데, 병이란 인간의 신체 어느 곳이든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생명에 지장이 없으면 된다, 이렇게 스스로 위로하였다.

코로나19가 2년 차 되던 2021년,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을 맡게 되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가정학습, 온라인 수업이 어렵다 하여 전면 등교 수업을 강행하였다. 교사들은 긴장하였고 방역은 강화되었다. 초등학교 입학식조차 온라인으로 하고 1학년을 마친 아이들은 교사들의 마음도 몰라 주고 코로나 방역에 대한 의식은 낮아졌고 점차 교사들은 지쳐갔다. 넷플릭스 영화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것처럼 '이러다가 다 죽어!'라는 한탄이 저절로 나왔다. 어떻든 숨을 쉬고 있으니 살아 있는 것이고 살아 있으니 학생들은 학교에 오고 교사들은 출근하였다. 간혹 확진자가 나오고는 했으나 해당 학급만 자가격리를 하는 방향으로 조치가 취해졌다. 조금은 느슨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학력이 중요하다더라도 백신도 맞지 않은 상태에서 전면 등교를 하라는 교육부의 방침에 모욕감까지 느꼈다. 우리 학교 내 감염이 심하게 나타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여기면서 2년이 흘러갔다. 아이들 책상 위에 설치된 가림막은 있으나마나였다. 쉬는 시간에 어깨동무하고, 팔씨름하고, 서로 손잡고 놀고... 나는 달래고 말리고 일일이 쫓아다닐 수 없어 모르는 척 눈감기도 하였다. 우리 반에서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 기적이다.

2020년도에는 1학년 담임을 하였고, 2021년도에는 2학년 담임을 하였다. 등교하는 아이들의 열체크부터 하루가 시작되었고, 결석한 아이들을 체크하고 그러면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수업을 마치면 한 줄로 세워서 급식실로 가서 급식지도를 한다. 밥 먹으며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준다. 아이들이 하교하면 나도 점심식사를 한다. 식사 후, 교실에 와서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한다. 기다란 쓰레기 집게로 커다란 쓰레기를 우선 줍는다. 전기 청소기 성능이 별로 좋지 않아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청소를 한다. 그다음은 물걸레 청소. 그렇게 1년 동안 청소를 하였다.

작년 4월쯤, 오른팔에 통증이 왔다. 쓰레기 집게를 잡은 팔이 아팠다. 빗자루를 잡은 팔이 아팠다. 왜 이러지, 하면서 양손으로 빗자루를 잡고 청소를 하였다. 통증이 심해졌다. 오른팔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아파왔다.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체외충격파와 물리치료를 받았다. 염증이 얼마나 심했는지 체외충격파가 지나가는 부분의 팔이 끊어질 듯이 아팠다. 심호흡을 하면서 치료를 받았다. 대여섯 차례 치료를 받아도 좀처럼 나아지지가 않았다. MRI 촬영을 하였다. 결국 수술을 하였다.

동료 교사들도 나처럼 교실 청소를 하였을 텐데, 유독 나만 이렇게 고생하다니. 못나도 참 못났다. 동료들은 학교 근무 환경의 열악함에 대하여 성토하였다. 세계 10위권을 달리는 경제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교사들이 청소를 해야 하는 현실이 억울하기도 하였다. 하나마나 한 이야기들. 2021년 5월에 수술하고 지금까지 치료를 받고 있으나, 잘 낫지 않는다. 지금도 진통소염제를 먹는다. 오늘도 정형외과에 가서 체외충격파를 받고 왔다. 의사는 팔을 아끼고 스트레칭과 찜질을 잘하라고 한다. 타이핑도 최대한 줄이라고 한다. 사람의 일이란 거의가 손으로 해야 하는데. 손과 팔을 쓰는 데 제약이 생기니 내 활동량은 줄어들고, 활동량이 줄어드니 우울한 날이 늘어 갔다. 그렇게 한 해를 마무리했더니, 사는 게 뭔가 싶다. 언젠가 텔레비전을 보니까 어떤 피아니스트가 손가락에 류머티즘이 와서 우울증에 걸렸다고 한다. 그 심정이 어떨지 충분이 이해가 간다. 지금은 방학이라서 집에서 쉬면서 독서하고 산책하는 게 주된 일이다. 장보기는 배달시키고 음식재료를 썰거나 설거지는 주로 딸아이들이 한다.

팔 수술을 하고 나서부터 '내 블로그'도 멈추었고 '내 브런치'도 문을 닫았다. 1년간 글을 올리지 못했는데도 내 브런치가 이렇게 살아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오랜만에 자판으로 글을 쓰니 참 좋다. 얼마 전에 읽은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이 생각난다. 자기가 타고 있는 배보다도 더 큰 청새치를 잡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산티아고다. 그 고기를 잡다가 죽을 수도 있는데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용기를 내게 하였을까. 어부라는 소임을 다하기 위해 묵묵히 바다로 배를 저어 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또 그가 한 말도 떠오른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아.'

세월이 인간의 육체를 파멸시킬 수 있다. 인간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어떤 물리적인 힘이 인간의 신체를 파괴시킬 수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 인간은 파멸이 두려워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인간에게는 정신이라는 게 있으니까. 인간에겐 '희망'이라는 정신이 있으니까.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는,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희망을 버린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어. 그건 죄악이야.'

이 말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느껴진다. 인간 정신의 숭고함이 가슴 깊이 파고든다. 내 팔도 언젠가는 낫겠지. 내 육체가 늙고 병들어 간대도 내 정신이 살아 있으면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겠지. 희망을 갖자. 그래, 지영아, 희망을 갖자. 미래가 밝아서 희망이 있으랴, 희망이 있으니 미래가 밝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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