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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에는 음악과 함께

by 강지영

아침 출근길에 아파트의 계단과 현관 곳곳을 청소해 주시는 어르신이 있다. 그분을 보는 사람마다 수고하시네요, 힘드시죠, 안녕하세요, 등으로 인사말을 한다. 그러면 그 어르신은 네, 안녕히 다녀오세요,라고 한다. 가는 말도 돌아오는 말도 다정하다. 내가 어르신이라고 말한 이유는 연세가 많이 드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얀 머리, 주름진 얼굴, 그리고 굽은 등허리까지. 감히 안쓰럽기도 하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그분은 대부분 음악을 들으면서 즐겁게 청소일을 한다. 때로는 흥얼거리거나 따라하기까지 한다. 유튜브인지, 음악방송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을 마주칠 때마다 가까이서 들려오는 음악이 또렷이 들린다. 며칠 전에는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이 흘러나왔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 사랑할수록 깊어가는 슬픔에, 눈물은 향기로운 꿈이었나...

하는 노래.


어제 아침에는 조용필의 '바운스(Bounce)'노래와 함께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대가 돌아서면 두 눈이 마주칠까, 심장이 Bounce Bounce 두근대 들릴까 봐 겁나."

젊은이에게는 대수롭지 않겠으나 연세가 많으신 여성 노인에게는 아파트 청소는 힘든 작업이리라. 그 일을 하면서 듣는 그분의 '노동요'는 가을아침 출근길의 나에게도 정신이 번쩍 드는 노래였다. 심장이 뛰는 아침이다. 오늘 하루 내 역할을 충실히 하고, 학생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리.


나는 아침 출근길에는 클래식 에프엠을 주로 듣는다. 프로그램명은 '출발 FM과 함께'이다. 음악과 음악 사이는 청취자 사연을 소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오늘 클래식 특성상 서너 곡 정도를 들으면 학교에 도착한다. 오늘 들은 곡은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이다. 곡명이 생각이 안 나면 '지금 나오는 노래 검색'을 터치하면 상세한 정보를 보여준다. 좋은 세상이다. 교실에 와서 찾아보니, 지고이네르바이젠이 '집시의 노래'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쩐지 애잔한 듯하면서도 빠르고 경쾌하고, 감미로운 곡이다. 피아노 연주가 먼저 나오고 이어서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된다. 바이올린 연주가 주를 이루는데, 나는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면 기본적으로 '애간장을 끊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바이올린 소리에 애절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다음 곡은 차이콥스키의 '사계 중에서 뱃노래'이다. 안단테 칸타빌레, 노래하듯이 부드럽게. 잔잔한 호수에서 노를 저어가며 미끄러지듯이 배를 띄워가는 풍경을 상상하면서 즐겁게 출근하였다. 행복한 아침이다. 이런 날에는 차가 밀려도 괜찮다. 오히려 차가 밀리면 음악을 더 들을 수 있어서 좋기도 하다. 세상에는 나쁘기만 한 것도 없고, 좋기만 한 것도 없다. 그래서 퉁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독자여! 내 퇴근길에는 무슨 음악을 듣는지 궁금하신가. 바로바로 CBS음악 에프엠이다. 프로그램명은 '박승화의 가요 속으로'. 이 프로그램은 주고 7080 세대 노래가 많이 나온다. 청취자가 보낸 신청곡과 사연을 들을 수 있다. 살면서 힘든 일, 기쁜 일, 등을 디제이 박승화 씨가 어준다. 친구 찾기 코너도 있다. 주로 6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이 오래전에 헤어져서 연락이 끊긴 친구를 찾는 사연이 많다. 우리나라에 근대화가 한창이던 시기에 일터에서 같이 일하던 옛 친구를 찾는 사연도 자주 나온다. 찾는 친구가 방송을 듣고 잘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내가 만약 라디오에 사연을 보낸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다고 할까, 생각하며 옛 친구를 떠올린다. 어디서 어떻게 살고들 있을까.


어제 퇴근길에 들었던 노래는 혜은이의 '독백'이다.

"이 세상 모든 빛은 꺼지고

멀리서 밀려드는 그리움

조그만 내 가슴에 퍼지면

아련히 떠오르는 그 모습

아직도 내 귀에는 들리네.

언제나 헤어지지 말자던 그 말이

그러나 헛된 꿈이 되었네.

이제는 기다리며 살리라.

오~그 모습 지워버리려 눈을 감아도

감겨진 두 눈에 눈물만 흘러내리네 아~~"


써 놓고 낭송해 본다. 노래가 시요, 시가 노래임이 분명하다. 오늘 퇴근길에는 어떤 노래가 나올까. 가을이 오고 있으니 가을 관련 노래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중간에 프로그램 진행자인 이재후 아나운서가 말한다.

"미국의 작가이자 강연가 데일 카네기가 말했습니다. 미소는 인간의 모든 독을 제거하는 해독제다."

이에 기대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세상의 모든 독을 씻어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음악이라고.

아파트 청소를 하는 어르신에게 노동의 피로(독)를 풀어주는 것도 음악이요, 하루를 시작하는 내게도 순정한 마음과 함께 출발의 에너지를 주는 것도 음악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늦은 오후, 삶의 고단함을 어루만져 주는 것, 그것도 음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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