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퇴임사를 길게 했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한 시간이었을 터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보내는 이 중에 울먹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돌아서는 나는 눈물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내가 이리 독한가, 라고 자책했다. 나는 참교사가 아닌가, 라고도 책망했다. 민망했다. 교장 선생님께 말했다. 교장 선생님, 저는 왜 눈물이 안 나죠? 프릴이 달린 주황색 원피스를 입은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강 선생님이 다 극복했기 때문이죠. 교장 선생님의 말이 내 등을 토닥였다.
퇴임식 사진 속 나는 환하게 웃고 있다. 나의 사진 몇몇 장을 몇몇 사람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대학교 은사님에게도 보냈다. 교수님과 통화했다. 교수님은 환하게 웃고 있는 내 표정을 보며 안심했다고 한다. 그 표정에서 희망을 보았다고 한다. 퇴임하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이, 할 일이 있다는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더욱 고마운 일은 퇴임하고 나서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묻지 않았다. 아마도 다 알고 계신 듯했다.
완전한 자유! 아홉 살부터 시작한 나의 '학교생활'이 끝났다. 조직을 벗어난 나의 삶이 기대된다. 육아도 끝났다. 딸아이 둘이 20대가 되었으니, 이젠 오롯한 나만의 삶이 시작된다. 자, 시작이닷!
이제 브런치에 나의 소개를 뭘로 하지? 브런치 화면에 보이는 여러 직업을 보니, 정하기가 힘들다. 직업이라고는 교사밖에 없었는데 그 명함을 떼고 나니 마땅한 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작가 지망생'으로 골랐다. 작가 지망생이라, 아직도 끝에 '생'이 붙는다. 생이라, 학생이라는 뜻인가? 그렇지. 평생 배워야지. 무엇을 배우지? 으음, 인생을 배우지. 인생을 배운다, 라고? 어떻게 배우지? 내가 존경하는 김민영 작가님(한겨레문화센터 글쓰기 강사)은, 어느 영상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꾸준히 쓰다 보면 분명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돈 명예 사회적 지위 같은 조건에 집착하는 삶에서
벗어날 길을 스스로 찾게 됩니다.
꾸준히 쓰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꾸준히 쓰려면 부지런히 읽고, 보고, 경험해야 하기에
저절로 삶의 질이 향상됩니다.
그러니 꾸준히 쓰는 습관을 기르려고 애쓰기 보다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마음을 다져 보면 어떨까요."
좋아요. 선생님! 읽으면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하면 쓸 수 있지요. 또, 경험하면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하면 쓸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