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한 이해

by 강지영

"어머, 한 시간이나 늦으셨네요. 앞에 예약한 환자가 많아서 대기가 길어지세요. 11번 방에서 탈의하시고, 13번 방 앞에서 기다리세요."

대학병원 접수창구에 앉아있던 직원의 말이다. '대기'를 높여서 부르는 직원의 말에 풉, 웃음이 나왔지만 고맙게도 마스크가 가려주었다. 그는 내가 내민 쪽지와 컴퓨터 화면을 볼 뿐이었다.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대면이지만 비대면인 듯. 얼마나 퉁명스러운지 얄미운 생각이 들었다. 귀찮게 해 주고 싶었다. 심술이 났다.

"뭐라구요? 다시 말씀해 주세요. 말씀이 너무 빨라서 까먹었어요."

"11번 방에서 탈의하시고 13번 방 앞에서 기다리시라구요."

그의 말은 처음보다 더 퉁명스러웠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참 나, 제 기분이 좋지 않다고 병원에 온 환자에게 저렇게 퉁명할 게 뭐람. 생리 중인가?'

사실은 크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유쾌하지도 않았다. 무덤덤했다.

탈의실에 갔다. 어떤 여성 노인이 사물함 열쇠를 끼우고도 잘 열지를 못했다. 머리의 볼륨을 한껏 살린 젊은 여성이 들어와 허둥대는 여성 노인을 귀찮다는 듯이 빨리 하라고 재촉했다. 가족은 아니고, 완전한 타인이었다. 늙음이 죄가 아니듯이 젊음이 자랑은 아니지 않은가. 혼자 병원에 온 여성 노인은 아무 말없이 열쇠를 끼우고 돌리고 있었다. 문은 열리지 않았고 열쇠만 떨어뜨렸다. 열쇠를 주워서 열어 드렸다. 여성 노인은,

"고마워요. 애기 엄마!"

나는 네, 뭘요, 하고 말했다. 그 여성 노인을 보며 나는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했다. 잠시 슬펐다. 13번 방으로 가니, 한 젊은 여성이 병원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꽂은 채 대기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스크로 얼굴의 반 이상이 보이지 않지만, 그의 눈빛은 매우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아픈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접수창구에서 짜증을 내던 직원의 말과는 달리, 13번 방에서 바로 직원이 나와서 나를 호명했다. 검사를 받았다. 내 작은 유방을 오른쪽 두 번, 왼쪽 두 번 영상 촬영을 하였다. 이번 검사는 예전보다 아프지 않았다.

"괜찮아요? 불편하시죠. 조금만 참으세요. 다 되어가요."

따듯한 말 한마디에 위로와 애정이 전해져 온다.


13번 방을 나와 이젠 16번 방으로 이동. 유방 자동 초음파 촬영이 있는 곳이다. 예전에는 초음파기로 유방을 문지르면서 화면을 보았는데, 오늘은 하는 방식이 다르다. 유방을 넓은 판으로 압박하고, 그 판 속에서 무언가 누르면서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상의를 모두 탈의하고 무방비 상태로 몸을 드러내 놓고 있는 나의 자세는 정말 부끄러웠다. 병원이 아니라면 결코 드러내 놓고 싶지 않은 몸이다. 더구나 검사실은 추웠다. 불편하지만 참았다. 의료진은 괜찮으세요, 를 여러 번 물었다. 나는 여러 번 괜찮다, 고 말했다. 검사가 다 끝나고 내 소지품을 챙기는데, 의료진은 혼잣말 비슷하게 이렇게 말했다.

"저렇게 몸이 말라서 어째. 쯧!"

그 의료진은 내가 안됐어서 한 말인지 모르지만, 나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람의 몸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특히 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몸이 좋지 않아서 오는 경우다. 오랫동안 병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마른 사람이 더 많을 텐데, 그걸 상기시키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비만해서 고민인 사람도 있지만, 지병이 있어서 살이 붙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나는 의료진에게 내 기분을 말하고 싶었지만,

"감사해요. 수고하셨습니다."

공손히 인사하고 나왔다. 나의 불쾌한 감정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선한' 의도는 아니었다. 내가 그토록 착한 사람은 아니니까. 다만, 그가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도 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굳이 '나쁜'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길게 만나든, 짧게 스쳐가는 만남이든 우리는 얼마나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사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간의 자격이란 게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