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딸! 그리고 미안해

by 강지영

봄날이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부드럽다. 등을 비추는 햇볕이 따사롭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앙상했던 나뭇가지엔 겨울눈이 버들강아지처럼 자랐다. 보드라운 저 겨울눈에서 잎이 나 자라겠지. 노점상 노인 여성은 달래, 냉이, 쑥을 팔고 있다. 기다려온 봄인데 오늘은 그다지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그저 봄이 오는구나 정도의 감흥밖엔 없다. 난 달래 냉이 쑥을 좋아하지만 오늘은 사고 싶지 않다. 대신 나는 마트에 가야 한다. 카트에 무, 대파, 시금치, 콩나물, 쌈배추, 사과, 배, 대추, 밤, 북어포, 두부, 곶감 등을 담았다. 오늘이 남편 기일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박스에 담았다. 배달 요청을 한 후, 국거리 소고기와 콩나물만 들고 집에 왔다.


집에 도착해서 냉장고에 넣었다. 물 한 잔 마시는 사이에도 집에 있는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큰딸은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작은딸은 온라인 수강 중이다. 각자 자기 일에 충실하다. 나도 내 일을 해야지, 하는데 몸이 경직되어감을 느낀다. 내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 같은 뻣뻣함이 느껴진다. 가슴이 답답해 온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물컵을 마시는 손이 떨린다. 왜 또 이러지, 왜 이러는 거야. 지영아, 괜찮아. 잘 참자. 괜찮아. 괜찮아. 아무 일도 없어. 양손으로 가슴을 감싼다. 손으로 어깨를 토닥인다. 가슴이 두근댄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이 아프다. 남편이 간 지 20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이 모양이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시간을 보니, 작은딸이 학원 갈 시간이다. 온라인 수강을 마치고 학원에 가야 하니, 이른 저녁밥을 준비해야겠다. 냉장고를 보니, 어제 사다 놓은 볶음탕용 닭고기가 있다. 옳지 잘됐다. 닭고기를 살짝 씻어서 냄비에 담았다. 청주를 뿌리고 진간장을 넣는다. 매실 진액도 넣고, 고추장과 다진 마늘을 한 숟가락 넣고 양파를 썰어 넣는다. 비닐장갑을 끼고 버무린다. 물을 한 컵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5분 정도 되니, 끓기 시작한다. 대파를 썰어 넣고 주먹보다 큰 감자 네 개를 둘로 갈라 여덟 조각을 넣는다. 국자로 국물을 끼얹고 고루 섞어 준다. 고춧가루를 넣으니 먹음직스러운 닭볶음탕이 되었다. 아이들이 제 일들을 마치고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많이 진정되었다. 작은딸이 주방으로 나오더니 벌써 제사 준비하냐고 한다.

“제사 음식 아니야. 이거 먹고 학원 가야지.”

“오늘 학원 안 가려고. 학원 다녀오면 11시 반이나 되는데? 내일 언니는 출근해야 하고. 나 때문에 제사 늦어지면 어떡해.”

“원래 제사는 늦게 지내는 게 원칙이야. 그니까 걱정 말고 네 할 일 해. 네가 있어도 할 일도 없잖아. 학원 안 갈 거면 제사 음식 네가 다해.”

나는 아주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말을 하고 나니, 가슴이 더 두근댄다. 식은땀이 난다. 왜 이렇게 막말을 하나 싶었다. 딸아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건 더 속상했다. 딸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구나, 생각하니 나 자신이 야속했다. 참 못난 어른이다.

“알았어. 학원 갈게.”

“이거 닭볶음탕이니까 알아서 먹고 학원 가. 난 좀 쉬어야겠어.”

건조한 말 한마디로 상황을 종료하고 침대로 가서 누웠다. 가슴이 답답해서 누워 있기 힘들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내가 나 같지가 않다.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가 왜 이렇게 낯설지. 여기가 어디지. 현기증이 났다. 숨이 막힌다. 죽을 것만 같다. 공황장애가 시작되었다. 발작이 된 것을 알면서도 진정이 안된다. 울음이 쏟아졌다. 이불을 덮었다.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려고 빈틈없이 이불을 덮었다. 숨이 막혀 코 부분만 밖에 내놓았다. 누워 있으면 안 돼. 제사 준비해야 하는데, 이러고 있으면 안 돼. 소고기 뭇국을 끓이고,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고 일련의 일을 하려니 귀찮아졌다. 또 가슴이 점점 조여 온다. 숨이 막힌다. 조절이 안된다. 의사가 처방해 준 자나팜정(항불안제, 항우울제)을 한 알 먹었다. 진정될 때를 기다렸다. 큰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 않아도 될 전화를 나도 모르게 하고 말았다.

“언니, 나야. 잘 지냈어?”

“감기 걸렸어? 목소리가 왜 그래?”

“감기 아니야. 언니, 제사 그만 지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해? 흑흑”

“울었어? 오늘이 박서방 제사구나.”

“응, 근데 아무것도 하기 싫어. 어떡하지.”

“왜 안 그렇겠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애들은 집에 다 있어?”

“응, 그렇긴 한데 제 아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이들에게 제사 음식 하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

“네 마음 알아. 그래도 애들 아빤데... 아주 간소하게 해. 술 한잔 올리는 정도로만.”

“그렇게 해 왔어. 아주 간소하게. 그런데도 이 날만 되면 자꾸 눈물이 나. 흑흑”

“그럼, 절에 모셔 봐. 그건 작은 언니가 잘 알 테니 물어봐.”

“작은 언니는 불교 신자니까 당연히 그렇게 하라고 하겠지만, 나는 신앙심이 없어. 제사를 스님에게 떠넘기는 것 같아서 그건 싫어. 그렇게 할 순 없는 거지. 사실 제사가 문제는 아니야. 박서방이 이 세상에 없는 게 슬픈 거지. 흑흑.”

“그래. 좀 쉬면서 마음 추슬러봐. 딱해서 어째.”

“알았어. 언니. 언니 목소리 들으니까 기분이 좀 좋아졌어.”

“그래? 그럼 다행이다.”

전화를 끊고 잠시 눈을 감았다. 눈물이 귓속으로 흘러들어 갔다. 닦지 않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언니까지 마음 아프게 한 것이 또 속상하다. 언니, 미안해.


약을 먹어서인지, 언니 목소리를 들어서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자꾸만 졸음이 온다. 그래 조금 자고 일어나서 제사 준비하자.

한참을 자고 있는데, 딸아이 둘이 나를 깨운다.

“엄마, 잤어? 음식 다 했어. 와 볼래?”

“으음, 어떻게 했어?”

“이모가 와서 도와줬어. 일어날래?”

“으음, 눈이 안 떠져. 너희들끼리 지내. 미안해...”

눈이 떠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제사상을 차린 것을 보고 수고했다, 고맙다, 말을 하고 싶었는데 눈이 떠지질 않았다.

“알았어. 엄마. 더 자. 우리끼리 지낼게.”

두 아이가 나가더니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가끔 웃음소리도 난다. 이렇게 하는 건가. 아니야, 이렇게 해야지. 아마도 제사 절차에 대한 의견 교환인가 보다.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모양이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어서 일어났다. 물을 마시러 나가보니 주방과 거실이 말끔히 정리되어 있다. 아, 어젯밤에 그이가 와서 얼마나 슬펐을까. 미안해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눈이 기억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