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기억할 거야

by 강지영

내일모레는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날이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나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모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냈다.

"2-5반 학생과 학부모님, 안녕하세요? 강지영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오늘, 저는 퇴임을 합니다. 그간 학부모님의 정성과 협조로 우리 아이들이 무탈하게 2학년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아직도 코로나가 물러서지 않는군요. 모쪼록 학부모님과 학생들 모두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이제 저는 교단을 떠나지만 우리 아이들이 잘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옷을 갈아입고 집 밖으로 나갔다. 어제 보다는 한결 공기가 따듯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진 듯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기저기 현수막이 펄럭인다. 몇몇 사람은 손팻말을 들고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눈길을 모은다. 사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본다. 사거리를 건너니 채소 노점. 여성 노인이 도라지 껍질을 벗기고 있다. 이미 벗겨 놓은 도라지가 한 움큼은 된다. 잘 다듬어 놓은 대파도 서너 단. 잘 까놓은 마늘도 한 대접. 도라지를 까고 있는 여성 노인의 손이 거칠어 보였다. 얼굴은 굵은 주름에 구릿빛이었다. 노점 바로 옆에는 과일가게. 딸기가 한창이다. 설향 딸기, 죽향 딸기, 금실 딸기, 그리고 계란만큼 큰 딸기다. 킹스베리, 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그다음이 옷가게, 휴대폰 가게. 가장 많은 사람이 북적인 곳은 과일가게였다. 집으로 오는 길에 과일가게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지나갔다. 한참 걸어서 시청까지 걸었다. 무슨 나무인지 겨울눈이 버들강아지만 하다. 사월쯤 되면 저 겨울눈에서 잎이 나겠지.


설향 딸기를 사 가지고 집으로 왔다. 학부모에게서 문자가 와 있다. "선생님, oo가 3학년 몇 반인지 까먹었대요.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니, 세상에 그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다니. 방학식 때 나누어 준 생활 통지표에 네임펜으로 적어 주었건만. 그 생활 통지표를 잃어버렸나 보다. 그 학생을 떠올려 보았다. 세상 바쁜 일이 없던 학생이었다. 늘 느긋하고, 늘 여유롭고, 그래서 성질 급한 나의 속을 많이도 태우던 oo. 그래도 마음만은 고와서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돕겠다고 솔선했었다. 무거운 쓰레기봉투도 들어주고, 학급문고 칸도 정리하고, 늘 밝은 표정이었다. 교실에 공벌레가 있으면 잡아주었다. 교실에 거미가 들어오면 쫓았다. 요즘 도시 아이들은 조그마한 벌레도 무서워한다. 심지어 파리도 무서워 도망가는 아이도 있다. 모든 게 자연과 멀어져서 그런 것 같다. oo이는 교실에 들어온 각종 벌레를 처리해 주었다. 우리 교실은 1층이어서 여러 가지 벌레가 많이도 출몰하였다.


스물다섯 명의 얼굴이 스쳐 간다. 보고 싶다. 방학 동안 많이 자랐을 텐데... 엄마 아빠가 심야영업을 하느라 늘 지각을 하던 ~~. 공부가 하기 싫어서 책가방에 있는 책도 안 가져왔다고 꺼내 놓지도 않던 !!.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만 하던 @@.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아 늘 나의 핀잔을 받던 ##. 화장실 간다고 하고 복도에서 어슬렁어슬렁 거리기만 하던 $$. 급식실에서 편식이 심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 쉬는 시간이면 종합장에 그림만 그리던 ^^. 틈만 나면 종이접기를 하던 &&. 코로나 2년째 베트남에서 일하는 아빠를 기다리던 **. 듣고 말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있었던 ++. ++이와는 2년 동안 담임을 했는데도 마음속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쉽고 미안하다. 나는 그 학생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나는 그 학생이 하는 말을 못 알아 들었다.


세월이 흘러 흘러 먼 훗날에도 스물다섯 명 너희들의 모습을 눈이 기억할 거야. 내가 더 나이가 들어서 눈이 어두워지더라도 너희들의 발랄한 모습은, 오물오물 맛있게 밥 먹던 그 귀연 입술은, 종이꽃을 접느라 분주했던 말랑말랑한 손가락은 오래도록 생각날 거야. 얘들아, 건강하게 잘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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